지난 10일 고향선교회가 마련한 자리에서 탈북자들이 생생하게 전한 북한의 현실은 우리 생각보다 더욱 참혹했다.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배고픔과 고역, 혹독한 고문과 부당한 처형으로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한 탈북자는 강단에 올라서자마자 얼마 전 두만강을 건너다 북한 국경수비대에 붙잡혀 수용소로 끌려간 딸을 언급하며 결국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했다.

북한에서는 오늘도 어떤 이유에서 건 김정일 공산 정권에 반항하는 자, 기독교를 믿는 자들을 수용소로 보내는 만행이 자행되고 있었다. 또한 그동안 대한민국과 디아스포라 한인들이 보낸 '대북지원'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은 배고픔을 이겨내며 스스로 생존할 수밖에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여섯 자녀 가운데 4명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다 못해 아버지가 두만강을 넘어 양식을 구해오다 북한군에 붙잡혀 죽고, 부모님마저 굶어 죽어 두 딸만 데리고 탈북 했다는 여성. 그의 증언은 북한의 아사 현실이 너무나도 일반화 됐음을 말해줬다.

탈북자들은 백성이 처참한 모습으로 굶어 죽는데도 10억 달러가 들어가는 핵실험을 강행하고 자신의 친위부대를 만드는데 급급한 김정일은 더 이상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 주민들은 백성을 죽음으로 내모는 김정일 부자에게 더 이상의 기대는 없으며, 국가 수뇌부에서도 분열조짐이 일어난 것이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한 증언자는 북한의 붕괴시기에 대해 3년이라는 구체적인 기한을 제시하며, 탈북자 10만 명 시대는 북한 정권 붕괴와 통일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북한 주민을 위한 실질적 지원은 외면한 채, 허울 좋은 명목으로 평양을 향해 자금을 대고 있는 한인교계를 향해 “그 자금을 통해 유지되는 김정일 공산정권 때문에 죽어가는 북한 백성을 바라보라면서 대북지원을 중지 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탈북자들을 이어서 “지금도 북한 지하 교회와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 보급되는 성경과, 라디오, 대북 풍선을 통해 받은 전단지, 대한민국 드라마 등을 통해 일어나는 각성운동에 힘을 실어 달라”고 말했다. 대북선교에도 공신력 있는 단체 선정과 면밀한 검증이 필요함 하다는 말이었다.

▲좌부터 자녀 4명, 남편, 부모가 세상과 이별하고 어린 두 딸을 데리고 탈북한 H 집사, 얼마전 북에 남겨진 딸이 두만강을 건너다 붙잡혔다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 C 씨, 망명을 기다리다 중국공안에 잡혀 옥살이 끝에 북송됐다 재 탈북한 A자매, 탈북자 북송을 반대하며 중국대사관 앞에서 14일간 단식했던 조진혜 자매ⓒ김브라이언 기자

-이하는 요덕 수용소에서 탈출한 강철환 기자 증언 녹취

김정일 후계구도를 비판하다 요덕 수용소에 수감

저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북한 사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제주도 사람으로 4.3 사건 주도자로 일본으로 도망가 살았고, 할아버지가 조총련의 핵심 간부였다. 할머니는 북한으로 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노동당 간부까지 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공로로 가족은 평양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았다. 9살까지는 북한에서 최고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넘어가는 후계구도를 비판했다가 온 가족이 요덕수용소로 끌려갔다. 이후 10년간 수용소에서 살았다.

먹을 것이 떨어지자 쥐가 시체를 먹고,
살이 오른 그 쥐를 수용소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은 김 부자의 폭정 아래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 북한에서는 300만 명이 굶어 죽었는데..수용소에서 겪은 참상은 다 말할 수 없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바닥에 떨어진 것이라면 모두 주어먹었다. 사람들이 주워 먹어서 수용소 쥐들이 먹을 것이 없어졌다. 그럼 쥐들이 주변에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가 무엇이겠는가? 시체다. 쥐들이 시체를 먹기 시작했다. 그럼 살이 오른 쥐를 사람이 잡아먹는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상황이다.

나는 수용소에서 세 번을 죽을 뻔 했다. 영양실조 가운데 강제 노역을 하다가 피부가 상하고 배가 불룩 튀어나오며 살이 뼈에 바싹 붙는 경험을 했다. 수용소에서 어린 시절 내가 파묻은 시체만 300구가 넘는다. 사람 죽는 것이 일상화된 곳, 그곳이 수용소다. 겨울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죽는다. 얼어 죽고 굶어 죽는다. 그럼 산기슭에 대충 파묻는데, 봄에 땅이 녹으면서 죽은 시체들이 다시 나온다. 매년 봄에는 그 시체를 다시 파 공동 매장하는 일이 주어진다.

북한 90년대 중반 붕괴됐어야
왜 김정일 정권이 망하지 않았나?


북한은 90년대 중반 붕괴 됐어야 했다. 그런데 북한이 망하지 않았다. 97년도에 북한의 최고학자로 김일성의 측근이었고 그의 아들 김정일의 스승이던 황장엽 선생이 망명했다. 북한을 가장 잘 아는 황 선생이 망명 당시 북한은 3년을 못 버틴다고 했다. 황 선생은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망명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황 선생은 연금 상태에 들어갔다. 강연도 못한 채 외부 출입이 차단됐다. 10년 동안 황 선생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살았을 것이다.

왜 김정일 정권이 망하지 않았나? 남한이 망하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이전 지난 10년간 정부차원에서 100억 달러의 지원을 했고, 민간지원까지 포함하면 140억 달러가 북한 김정일에게 들어갔다. 김정일은 그 돈을 가지고 지난 10년 동안 실험 한 번에 5억 달러가 드는 핵실험을 2번 감행했다. 수 맡은 미사일 배치와 특수전 병력을 대한민국 해병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다 망한 정권이 다시 살아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김정일의 남한 병참화 야욕 때문이다. 김정일의 수호 군사 유지와 남한을 적화 통일 시키려고 도와준 것이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에 와서 종북주의자들이 이렇게 많은 지 놀라
남한에 있는 종북주의자들이 더 문제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 정부에 달러와 쌀 한 톨 주지 않은 것은 정말 잘 한 것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뿐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과도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북한은 지금 갈 때가 없다. 2009년도 화폐개혁을 했는데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북한 주민들이 두 번 통곡했는데 김일성 사망 때 한 번 울고, 다른 한번이 화폐개혁 때다. 북한 주민들은 국가가 책임지지 않아도 각자 살아가는 시스템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을 돕겠다는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정권 유지에 사용 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 내에서 정부를 비난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세력의 핵심에 있는 종북주의자들이다.

지금은 우리가 통일을 준비해야 할 시기

올해 김정일이 중국에 세 번 러시아에 한 번 방문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김정일은 경제지원이 아닌 중국에서 개발한 최신 전투기를 사러간 것으로 확인됐다. 연평도 도발 이후에 대한민국 전투기가 발진 했을 때 김정일은 경악했고, 전투기 필요성을 절감했다. 백성들의 배고픔은 예전부터 안중에도 없는 것이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은 중국이 북한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은 김 부자가 없는 북한을 생각하고 있다. 중국식 사회주의를 통해 북한에 영향을 끼치려고 하고 있다. 김정일 세력과 반대세력과 나뉘고 있는데 그것 역시 중국 정부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이다.

현재 필요한 것은 북한 체제하에서 고통 받는 주민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북한에 들어가 사진 찍고 돈을 주는 것은 북한 주민 돕는 것이 아니라, 김정일 정권 유지하는 것이다. 캐나다 한 교회에서 평양과기대를 위해 40만 달러를 지원했다. 과기대는 군사 대학의 부족으로 김정일이 대안으로 세운 학교인데 거기에 속아 많은 교회들이 엄청난 돈을 쏟고 붓고 있다.

우리는 무엇으로 북한을 복음화 할까? 라디오만 있으면 극동방송을 북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다. 라디오를 북한에 보내자는데 는 도와주지 않으면서 과기대에는 몇 백억씩 도와주고 있다. 기독교를 학살하고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정권에는 돈을 가져다주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라디오를 보내는 것은 아깝다는 것인가? 탈북자 구명 사업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탈북자 망명은 북한 사회를 일깨우고 자유를 가져오는 올바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