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연합감리교회(담임 최성남 목사)가 교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청되는 익명의 블로그에 대해 교회를 비방한다는 이유로 강력범죄 처벌법인 ‘RICO’법으로 소송을 제기, 이를 둘러싸고 최성남 목사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의견이 갈려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교회의 현안을 다루는 교회소식지인 ‘생명샘’에 원로 나구용 목사에게 보내는 편집장의 편지가 공개적으로 게재돼 주목된다.

지금까지 최성남 목사를 반대하는 교인들의 의견이 인터넷상에 게재된 바 있으나 최성남 목사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교인이 교회사태의 원인을 지적하는 공개적 서한을 띄운 것은 처음이다. 이 글은 이번 교회사태가 나구용 원로목사가 성도들에게 후임목회자에게 적극 충성하라는 권면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것에 이번 교회사태의 원인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본지는 생명샘 편집장의 글 전문을 게재한다.

떠난 자리가 아름다워야 합니다-임혜기 권사
(나목사님께 드리는 편지)

이 가을의 날씨부터 알려드리려 합니다. 세상 풍경 속의 나무들은 이제 계절의 순리를 겸손히 받아들여 단풍들 채비가 한창입니다. 하늘은 푸르고 청명하고 햇살은 백금처럼 반짝입니다.

뉴욕의 아름다운 시월을 기억하시겠지요. 고국에서의 생활은 보람있고 즐거운 나날이었기를 바랍니다. 신학생을 가르치러 가시면서 목사님은 가장 고치고 싶은 것이 권위로 굳어진 한국 목사들의 허세라고 하셨지요. 그 가르침을 장차 목사가 될 제자들에게 잘 전하셨는지요?

목사님은 권위로 목이 굳어있는 분이 정녕 아니었지요. 목사님의 소탈함, 많은 아량, 그리고 명랑한 품행은 저희들에게 존경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셨지요.

목사님.

그러나 지금 그러한 칭송을 위해 이 편지를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님을 향해 이 글을 쓰는 것이 무모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허나 면책이 숨은 사랑보다 낫다는 잠언 구절을 발견하며 편지 띄울 용기를 얻었습니다. 목사님이 떠나신 자리가 아릅답지 않기 때문입니다.

떠나실 때 저는 개인적인 편지를 목사님께 드린 일이 있습니다. 처음이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여 쓴 편지였고 한번도 나선 적이 없지만 목사님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설교 속에서 언어가 되어 전달되지 못한 행간의 메시지도 읽으며 은혜받았다는 고백도 했습니다. 목사님도 답신을 주셨습니다. 프린트된 편지에 친필로 임권사 생각을 하면 항상 조용히 도와주는 고운 모습이라고 덕담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소중한 목자와 신자로 남아야 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닙니다. 목사님을 사랑하여 이끌던 천 여명의 순한 양 무리와도 그렇게 남아야 했습니다.

떠난 자리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은 떠난 사람의 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퇴장이 훌륭해야 한다는 것은 떠나는 자의 의무를 말하기도 합니다. 목사님은 감사와 칭송의 화려한 은퇴식으로 명예롭게 퇴장을 하셨지만 그 후에 저희를 버렸습니다. 후임목사와 등진 것이 아니고 교회와 교인을 버린 것입니다.

지도자가 바뀌면 시스템도 변화할 것이고 이를 따라 교직자와 직분자는 새 목사에게 충성하며 믿음을 다하라는 분명하고 선한 지시를 남기지 않은 것이 목사님의 실수입니다. 그것이 잘못입니다. 불만하는 자들이 찾아오면 순종과 충성! 결코 다른 길은 없다. 라는 당연한 말을 남기시고 침묵해야만 했습니다.

아, 그렇게 하셨다면 얼마나 멋진 목사님으로 남으셨을까요!

원로목사 이름에서 빼달라고 조른 것은 정말 옹졸한 결정이었습니다. 4 반세기 동안 한 울타리에서 주님을 섬기던 정든 교인들을 다시는 안보겠다는 적극적인 미움이 그렇게 크셨는지요? 그건 우리가 알던 나목사님이 정녕 아닙니다.

목사님은 우리 교인들의 사랑과 관용을 잘 아십니다. 오래 전 나 목사님께서 처음 부임하셨을 때 우리는 목사님을 따뜻하게 맞이했지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하와이 휴양을 가시도록 주선했으며 전 교인이 목사님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목사님께서 받아오신 모든 사랑을 후임 최목사님도 받을 수 있도록 저희 부족한 교인을 가르치고 훈화했어야 정녕 퇴임목사의 귀감이 되셨을 것입니다.

나 목사님이 처음 등장하셨을 때도 어찌 백퍼센트의 관객이 무대에 매료되었겠습니까? 저는 그 당시 교회를 떠난 교우들을 기억합니다. 원하는 교회와 목사를 찾아 말없이 떠난 분들이 지금은 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믿음 생활을 잘 하는 모습을 봅니다. 목자가 싫은데 흔들어보려는 목적을 위해 교회에 남는다면 이미 믿음의 교우가 아닙니다. 본인들에게도 괴로움이 될 것입니다.

목사님, 저희 교회가 지금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굳건히 자리잡는 듯 합니다. 빈 자리를 속속 채워주시는 주님의 손길도 느낍니다. 우리들은 메말라 있던 가슴에 성령님이 자리잡는 역사를 체험합니다. 다만 무조건 반가워야 할 교우들 중에 예배를 드리려고 왔는지 사태를 살피려고 왔는지 겉돌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을 뿐입니다.

불법 블러그에 대해 들으셨는지요. 어떤 글이 올랐는지 아시는지요. 그런 불쾌한 일들이 생겨 교회 주위를 흘러야 마땅할 행복한 기류를 가로막는 독소를 만들었습니다. 신의를 앞세워 고려의 왕조만 편들려는 전임 목사의 충신들도 아닙니다. 그들도 최목사님을 처음에는 열렬히 환영했으니까요.

친구와 동조해야 하는 의리, 취미삼아 초록이 되고 싶은 동색의 오락적 저항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타당성을 전임 목사님을 끼고 목사님을 이용할 뿐입니다. 이런 아름답지 못한 상황에 목사님은 큰 힘을 보태셨습니다. 맑은 물을 혼탁하게 하는데 침묵하신 것은 동조이기 때문입니다.

천부당. 억울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죄송합니다.
맞다. 내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게 잘못이 있다는 생각을 하셨다면 해결책도 생각해 보십시오. 목사님을 사랑하는 교우들이 실족하지 않고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건 교회의 소란이 목사님 탓이라고 지적하여 굳이 상처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직도 개선할 수 있는 여지와 목사님의 선한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사님을 섬긴 26년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목사님 험담을 했던 적이 없다고 자랑한 편지 구절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런 제가 공개적으로 목사님 탓을 했습니다. 글을 쓸 때는 용감한 통뼈로 착각하는지라 지금 공연한 괭가리를 울리는 것 같아 벌써 후회가 됩니다. 허나 안 써도 후회할 것 같아 편지를 드립니다.

한국의 단풍이 아무리 곱더라도 수십년 보아온 팔리세이드의 장관 만큼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랜 세월 사랑을 주고받던 교회와 교인들이 무의미한 풍경이 아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