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없는 인생이 축복된 삶일까요 ? 고난 없는 인생이 평탄하고 복 받은 삶인가 하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집안에 사정이 있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로 졸업한 학생입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데, 초등학교 아이들과 자주 다투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 학생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같은 수준으로 놀아주려고 일부러 그러는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주변 선생님들 말씀이 장난으로 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겁니다. 그 아이들과 똑같은 수준 같더라는 겁니다. 설마 설마 하며 지켜봤더니, 정말 대학생이 초등학생과 똑같은 수준으로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 학생이 조금 모자란가 ? 성격장애가 있는가 ? 생각해보니, 이 학생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을 하면서, 중고등학교에서 흔히 남자들이 경험하는 다툼들, 그리고 그 속에서 서로 조정하고 화해하고 인간관계의 방법과 해결을 찾아가는 과정을 배우지 못한겁니다.

‘아이들끼리 싸우는 것도 다 필요한 거구나.’ 분명하게 알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다투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회생활 하면서, 가정에서 서로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겁니다. 그러나 갈등 자체의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조정하고 화해하면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고난은 그런겁니다. 실패는 그런겁니다. 우리의 인격을 성숙하게 하고 단련하고 인격을 만들어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지고 만들어가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을 피할수도 없지만, 피해서도 안되는 겁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일들도 많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생애에 뒤를 돌아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지나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을 때 형들에게 배신감에 떨었을 겁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누명에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 억울함에 눈물흘렸을 겁니다. 그러나, 애굽의 총리가 되고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자신 앞에 엎드렸을 때, 요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았습니다. 이거였구나. 우리 가족을 우리 민족을 살리시려 나를 보내셨구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형들을 조장해서 요셉을 팔도록 한건 아니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를 움직이셔서 요셉을 감옥에 넣도록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조차도, 그런 악 조차도 선으로 바꾸셔서 원래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대로 이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속에서 요셉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형통이라’고 말씀합니다. 무명의 청교도중의 한 분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갔으나 누구와 함께 갔는지는 알았다.’ 너무 멋질 글 아닙니까 ? 하나님은 무작정 떠나라고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언제나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언제나 베푸는 사람일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종살이를 하면서, 심지어 지하감옥에서조차도 주변의 분위기를 바꾸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기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대충 시간을 보내며 지낼수 없었습니다. 삶의 고난이 자신을 흔들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더욱 적극적으로 오늘에 해당하는 일들에 충실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책에서 보면 여주인공 스칼렛이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억척스러운 삶을 살게됩니다. 그때 마을의 한 노파가 이렇게 충고합니다.“너의 역경이 여성다움을 빼앗아 가지 않도록 조심해라”. 여러분에게 닥친 고난이 여러분의 크리스챤 다움을, 신앙의 여유와 품위를 빼앗아 가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크리스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우리는 예정된 승리를 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