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그리스도의 사역-1)
그리스도의 사역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구속자로써 행하신 일들을 말한다. 두 부분으로 크게 나누는데,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이다. 한자어로는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라고 부른다. 그리스도는 이 두 사역을 통하여 택한 자들의 구원을 완성하셨을 뿐만 아니라 장차 있을 심판 준비를 마치셨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비유의 말씀을 따르면,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하여 알곡은 천국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와 가라지는 불에 태울 준비를 마치신 것이다 (마태복음 3장 2절, 13장 30절).

그리스도의 비하는 성육신으로부터 시작한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자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한 사람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낮아지심의 첫 단계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그러므로,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그리스도가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모든 면에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그 하나님되심을 비우시고 낮추셔서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이라고 말씀했다 (빌립보서 2장 6절-8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성자가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기 위하여 잠시 천사보다 못한 인간이 되신 것이다 (히브리서 1장 3절, 2장 9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지만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시고 “나”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얼마나 감동하게 하는 일인가!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나”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분에 넘치도록 감사한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의 이 성육신이 왕궁에서 화려하게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인생은 마굿간의 말구유, 말 밥그릇에서부터 출발했다. 인간적으로 말해도 일천하다고 할만큼 낮아지신 것이다. 그것이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시작이었다.

예수님의 고난의 삶. 이것이 그리스도의 비하의 두 번째 단계이다. 예수님의 삶은 평생이 고난의 삶이었다. 말구유에서 시작한 그리스도의 고난이 외형적으로는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말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한 주간 중에 있었던 수치스러운 사건들, 채찍에 맞으며 조롱 당했던 일들과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던 순간의 고통을 상기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이 되신 순간부터 시작한 것이다. 십자가 사건은 인간이 육체로 당할 수 있는 고통의 극한점을 외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일 뿐이다. 내면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은 사람으로 출생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온전하게 하셨다고 했다 (히브리서 2장 10절).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었지만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했다 (히브리서 5장 8절, 9절). 예수님은 모든 일에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를 짓지는 않으셨다고 했다 (히브리서 4장 15절). 죄가 편만한 세상에서 죄인들과 함께 살며 그들과 동일한 시험을 받으면서도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는 쉽게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내면적 고난은 십자가 상에서 숨이 끊어진 후부터 몸이 장사되어 무덤에 묻혀 있는 동안 그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외형적 육체의 고통은 호흡이 중단되고, 육체가 감각을 잃게 되는 순간 끝났다고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내면적인 고통은 그 때부터 최고조에 도달하고 있었다.

한글판 사도신경에는 생략된 부분이지만, 전통적 사도신경에는 “장사되시고” 다음에 “음부에 내려 가시고”가 나온다. “음부”란 물론 “지옥”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몸의 부활까지 어디에 계셨는가? 그 기간 동안에 무엇을 하셨는가?에 대하여는 성경 해석상 견해 차이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순간부터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그 순간까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이 죄에 대한 형벌로서 구원받을 자들을 대신하여 지옥의 고통을 당하신 것이라고 하는 데는 별로 이의가 없다.

음부에 내려 가셔서 지옥의 고통을 대신 당하셨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구속을 위하여 낮아지신 마지막 단계이다. 채찍에 맞아 살이 찢어져 나가고,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는 육체의 고통도 크다 하겠지만,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처럼 죽어 죄의 형벌로 받게된 지옥의 고통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영원하신 하나님,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으로써의 영광을 포기하고, 죄인들과 같은 형상을 입고 한 사람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도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신비하고 기이한 일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에 대한 형벌, 지옥의 고통을 감수하셨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을 불허한다.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하여 지옥 형벌을 대신 받으실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참으로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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