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법이 죄를 만든다는 말이 미국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에서 형법 관련 범죄 규정이 증가하면서 법규를 몰라 처벌받는 선의의 범법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형법 범죄 관련 규정이 늘어가는 과정에서 미국 형법의 중요한 근간 중 하나인 범죄 의도 입증 원칙이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법 체계가 따르는 영국의 관습법에는 사법 당국이 법 위반자의 범죄 행위는 물론 범죄 의도까지 입증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절도의 경우 법 위반자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행위 자체와 물건이 다른 사람 소유였다는 알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사법 당국이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1790년대 미 의회에서 통과된 형법에 규정된 범죄는 20여 개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현재는 4천500개로 늘어났다. 연방 규칙에 있는 수천 개의 형사 범죄 관련 조항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방정부의 형법 범죄 규정이 늘어나면서 자신은 알지도 못한 채 법을 어길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27일(현지시간) 전했다. 알래스카주의 시트카에 사는 원주민 웨이드 마틴이 그런 경우다. 마틴은 사냥한 해달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범죄자가 됐다. 해양포유동물보호법은 알래스카 해안의 원주민은 사냥할 수 있고 사냥한 동물을 원주민이 아닌 사람에게 팔 때는 수제품 형태로 만들어서 판매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마틴은 자신의 사냥한 해달을 산 사람이 알래스카 원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고 결국 유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법 당국은 마틴이 법을 어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필요가 없었다.
정치권과 학계는 형사 범죄 관련 법 규정이나 규칙의 증가와 함께 범죄 의도 입증이 완화되는 경향을 우려하고 있다. 판사 출신인 미 공화당의 루이 고머트 하원의원은 "지난 6년 동안 의회에서 동료 의원들과 이 문제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다"면서 "범죄 의도 입증을 요구하지 않는 법규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버지니아대학의 앤 콜린 법학과 교수는 "모든 사람이 형법전을 알지 못한다"면서 "범죄 입증 원칙이 약화하면 많은 사람이 잠재적으로 법 위반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