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의 한 아랍 여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휴대폰에 적힌 문자 메시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남편이 보낸 문자 메시지 내용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Inti talaq” ‘나는 당신과 이혼한다’는 내용이다. 비록 남편이 자신에게 화 났을 지라도 이럴 수는 없다고 여인은 생각한다. 문자 메시지를 받기 전, 여인은 전화로 남편과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평범한 가정의 부부처럼 이들 부부도 전화로 말다툼을 한 것이다. 여인은 남편의 계속 되는 거친 말에 전화를 끊었고 이후 계속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로 남편과 더 다투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여인에게 도착한 문자 메시지였다.

이슬람 사회에 이혼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 남편이 아내에게 “나는 당신과 이혼한다”는 말을 세 번 반복하면 이혼은 성립된다. 6세기 이후 이슬람 세계에서 ‘아내의 얼굴을 마주보며 이혼을 선언했던 것’과는 달리 휴대폰 문자 메시지 기능을 이용하여 이혼을 선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휴대폰 문자 메시지 기능을 이용하여 이혼을 통보한 첫 번째 사례는 말레이시아에서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한 이슬람 남자가 아내에게 휴대폰 문자로 이혼을 선언했을 때 이슬람 율법 학자들은 ‘이것은 율법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말레이시아 남편에게 벌금을 선고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첫 번째인 휴대폰으로 이혼을 통보한 사실을 두고 이것이 율법적 효력이 있는 지에 대한 법 해석을 하는 중이다.

나라와 사회, 종교의 관습에 따라 이혼에 대한 해석은 큰 차이가 있다. 이혼에 대한 유대 관습은 어떠며, 또 성경은 이혼에 대해서 그리고 부부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정리한다.

이혼에 대한 유대 관습에 따르면, 이혼은 남편만 선언할 수 있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을 선언할 수 있는 근거는 신명기 24:1절에 기초한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그러나 여기에 기록된 이혼 규정은 매우 모호하다. 그래서 유대 랍비들은 위의 내용을 해석하는데 많은 논쟁을 거듭해 왔다. 1세기 율법 해석에 자유로웠던 랍비 힐렐은 ‘남편은 어떤 이유로도 이혼이 가능하다’고 해석하였다. 남편은 아주 사소한 문제로도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데, 만약 아내가 요리를 잘 못하거나 또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좋아해도 이혼할 수 있었다. 시라 25:26절에는 만약 남편이 보기에 아내가 순종적이지 않으면, 그녀와 이혼할 수 있다.

이혼의 형식은 매우 간단했다. 남편이 결혼식 때에 선언한 것과 반대로 말하면 된다: 그녀는 더 이상 내 아내가 아니며 나는 더 이상 그녀의 남편이 아니다. 주전 6세기 이후 엘레판틴의 유대 남자들은 이혼할 경우 증인들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나는 내 아내와 이혼한다.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나는 그녀(아내)를 미워(싫어)한다는 말이다. 앗시리아의 법전에 남편은 이혼을 선언할 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녀를 거부한다. 또는 그녀는 더 이상 내 아내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로 이혼을 선언했던 것과 달리 이스라엘, 메소포타미아, 엘레판틴에서 남편은 이혼 증서를 작성하였다 (신 24:1, 3, 사 50:1, 렘 3:8). 이혼 증서를 작성하므로 아내는 남편과 이혼하고 또 이후에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 (신 24:2). 가장 오래된 이혼 증서는 유대 광야의 와디 무라바아트 (wadi Murabba’at)에서 발견되었다. 그 이혼 증서는 주후 2세기 바르 코크바 반란 때 유대 열심당원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이혼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하여 남편에게는 거의 제한이 없었다. 남자가 결혼하여 여자에게서 처녀의 흔적을 보지 못하였다고 증언하면, 남자는 그 여자를 즉시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증언이 사실이면, 처녀의 증표가 없는 여자는 돌로 죽임을 당하였다 (신 22:21). 그러나 만약 남자가 증언한 ‘여자에게서 처녀의 흔적으로 보지 못하였다’는 말이 거짓이면, 그 남자는 평생에 아내와 이혼할 수 없었다 (신 22:13-19). 그리고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강간하였으면, 그 남자 역시 평생 그 여자를 버리지 못했다 (신 22:28-29).

남편으로부터 이혼당한 아내는 재혼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그러나 첫 번째 남편은 아내를 다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신 24:3-4, 렘 3:1). 다윗은 사울의 딸 미갈을 아내로 맞이하였다가 미갈은 후에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의 아내가 되었는데, 다윗은 미갈을 다시 아내로 받아들였다. 그 이유는 다윗은 미갈과 이혼하지 않았고 미갈은 본래 다윗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삼상 18:20-27, 25:44, 삼하 3:13-16).

유대 관습에서 남자와는 다르게 여자는 이혼을 주장할 수 없었다. 1세기 당시 헤롯의 누이 살로메는 일방적으로 남편에게 이혼 증서를 주고 남편 코스타바(Kostabar)을 쫓아 보냈는데, 이것은 당시 유대 법에 위배되었다. 만약 복음서에 흔적이 있는 대로‘아내가 이혼 증서를 주고 남편을 버렸다’면 그것은 유대 관습이 아닌 이방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막 10:12). 여자가 이혼을 선언한 것은 유대 관습이 아니다. 엘레판틴의 유대인 공동체는 이방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아내가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남편은 적절한 이혼 문구를 선언하므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이혼할 경우에도 남편은 아내에게 이혼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주어야 했다. 보상은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함무라비 법전에 아내는 남편에게서 잘못을 발견했을 때에만 사법 기관의 결정에 따라 이혼할 수 있었다. 앗시리아의 법전에, 남편은 아무런 보상 없이 아내를 버릴 수 있었다.

비록 구약 성경에 이혼에 대한 금전적 조건은 없지만, 엘레판틴의 결혼 계약에 따르면 아내를 버린 남편은 결혼할 때에 지불했던 모하르(mohar)를 돌려달라고 할 수 없었다.

이혼에 대하여 거의 제한이 없었던 유대 남자들은 과거에 이혼을 얼마나 자유롭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혼에 자유로웠던 유대 관습과는 달리 성경은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부부의 책임을 다할 것을 강조한다 (잠 5:15-19). 말라기는 ‘결혼은 두 사람이 한 인격이 되는 것이며, 남편은 아내를 향한 결혼 서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말 2:14-16). 예수님 역시 말라기 선지자와 같은 어조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 (마 19:1-9, 마 5:31-32). 예수님은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한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마 19:8).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고 아내를 버리라 하였지만, 본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본래는 그렇지 않지만 (문자적 의미는,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였고, 그 잘못된 이해에 기초하여 유대인들은 이혼에 대해 자유롭게 행동했던 것이다.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결론이시다: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마 19:9).

이런 이혼 규정에 대한 유대적 관습을 알고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면, 그 여인은 불량한 여인이 아니라 남자로부터 잦은 버림을 받았던 불쌍한 여인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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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