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에 사람들은 인생의 삶을 거칠고 때로는 고요한 수평선을 달리는 배와 같다고 비유를 한다. 이처럼 인생은 살면서 어려움과 기쁨의 양면을 다 맛보고 사는데 그중에 사람들이 어려운 고통의 순간들이 부닥치게 되면 자신의 환경에 대해 불평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배가 넓고 먼 바다를 향해 달려 가는데 거칠은 폭풍의 파도가 불어 오는 것이 두려워서 선장이 배의 키를 돌리려 하다가 양 쪽에서 불어오는 맞 바람과 파도의 물결이 힘이 없는 배의 옆면을 강하게 때려 배가 파선하여 그 배를 탄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하게 되는 것과 같다. 선장이 목적지를 향해 먼 바다를 향해 달려 가려고 마음 먹었다면 폭풍속에서라도 견고한 닻을 이용하여 두려움을 뚫고 파도타기를 즐겨야 할 것이다. “삶의 어려운 난관을 즐기며” 목적을 이끄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가 있다. 철학자 니체는 “삶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남을 수가 있다고 했다. 요즘 이민 사회에서 유행하는 말들 중에 “이제는 더 이상 미국에서 못 살겠다.” “그래도 한국이 미국 보다 더 낫다” 는 생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과 처한 환경을 극복하지 못해 한국으로 역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대해 살아가지만 그곳이 나의 삶의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해 줄 것이라 생각하여 역 이민을 가는데 삶의 어려움은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내 민족과 한국어만 사용하며 살아가는데도 적응하지 못하여 미국에 다시 돌아오지도 한국에 더 이상 머물 수도 없게 되는 국제미아가 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동전은 양면이 있지만 우리 인간은 동전 양면처럼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단순한 생각으로 모든일을 너무나 쉽게 결정하고 그 생각한 것을 번개처럼 빠르게 행동으로 옮겨 엄청난 실수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인생을 “모 아니면 도”로 보는 일들이 이민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모습들이 교회나 가정 안에서 하나의 풍조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에서도 목사와 성도간의 관계형성에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너무나 쉽게 등을 돌리고 또 다른 교회를 찾아 발걸음을 여기 저기로 옮기면서 부정적인것과 불신을 갖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게된다. 가정에서도 먹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조금만 어려우면 남편과 아내가 쉽게 화(火)를 내고 부부관계에서도 멀어질 뿐 아니라 마음속에 쓴뿌리를 심어 매사에 불평 불만을 하게 되어 종국에는 사랑으로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데 자기 중심적인 이해관계로 문제를 찾으려 하고 그 타협점이 보이지 아니하면 종국에는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자녀들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와 아픔을 주게된다.
가정이나 삶에 어려움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즐겨야 할 것이다. 2010년 2월 5-6일 이틀 동안에 미국 워싱턴DC를 비롯해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 주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 도시 기능이 마비될때 어느 방송사에서 시민들에게 권고 하기를 “세기의 폭설, 피할 수 없으면 맘껏 즐겨라.” 는 것이었다. 이 말은 많은 시민들이 엄청나게 내린 눈으로 차량운행이 불가능해지고, 정전사태가 속출해 추운 겨울 밤을 보내야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차분하게 대설사태에 대처하면서 길거리에서는 대규모 즉석 눈싸움은 물론 스키타기,썰매타기, 설경을 즐기고 있었다. 그것을 본 어느 한 방송 기자가 시민들이 폭설속에서도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행복하게 보였기 때문에 방송에 그들의 모습을 담고 방송을 보는 시민들에게 한 말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제설작업이 부실 했다”느니, “시장과 지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느니 하는 비판성 보도는 전혀 내보내지 않은채, 적설량과 시민들의 반응, 향후대책 등을 사실 중심으로 전하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모습이 선진문화가 보여준 하나의 좋은 모습이지만 이것을 삶 속에 적용해 본다면 이것은 분명 어려운 현실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움에 뛰어 환희에 이르러”라고 말한 베토벤의 고향곡9번의 4악장에 나오는 “환희”에관한 가사를 보면 “오 친구여 이 곡조보다 더 한 것이 없으리! 더욱 희망찬 노래를 부르세 더 즐겁고 즐겁게,즐겁게! 환희여….태양이 떠오른다 기뻐하여라, 천국의 영광스런 계획속에, 형제여 달려가라, 그리고 승리의 영웅이 되어라. 모든 사람들은 서로 포옹하라! 온 세상 위한 입맞춤을!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주가 있으니. 억만의 인민들이여, 무릎을 끓겠는가? 인생의 삶을 살면서 “행복이라는 가치추구”를 향해 달려 가지만 때로는 이런 것들을 시야에서 놓치는 경우가 분명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있게된다. 그럴때면 지금까지 쏟아 부은 노력들이 부메랑처럼 치명적인 충격으로 변해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면 더 이상 도전적인 삶을 살려고 하지 않게 된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들은 다 문제 없이 사는데 나만 어렵다고 집착하게 되는데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각기 하나 하나의 문제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된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삶의 환경을 조정하고 축복을 주시는 일들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37절과 38절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니라 하시니” “구원과 삶의 기쁨의 축복”은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서만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고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일들인데 이것을 함축적으로 표현 한다면 “주어진 삶을 즐겨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어려움을 즐겨라”일 것이다. 당신이 처한 환경에서 조금만 벗어나 생각을 하게 된다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뿐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미래에 기쁨의 소망을 가져다 줄 것이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대해 살아가지만 그곳이 나의 삶의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해 줄 것이라 생각하여 역 이민을 가는데 삶의 어려움은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내 민족과 한국어만 사용하며 살아가는데도 적응하지 못하여 미국에 다시 돌아오지도 한국에 더 이상 머물 수도 없게 되는 국제미아가 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동전은 양면이 있지만 우리 인간은 동전 양면처럼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단순한 생각으로 모든일을 너무나 쉽게 결정하고 그 생각한 것을 번개처럼 빠르게 행동으로 옮겨 엄청난 실수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인생을 “모 아니면 도”로 보는 일들이 이민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모습들이 교회나 가정 안에서 하나의 풍조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에서도 목사와 성도간의 관계형성에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너무나 쉽게 등을 돌리고 또 다른 교회를 찾아 발걸음을 여기 저기로 옮기면서 부정적인것과 불신을 갖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게된다. 가정에서도 먹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조금만 어려우면 남편과 아내가 쉽게 화(火)를 내고 부부관계에서도 멀어질 뿐 아니라 마음속에 쓴뿌리를 심어 매사에 불평 불만을 하게 되어 종국에는 사랑으로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데 자기 중심적인 이해관계로 문제를 찾으려 하고 그 타협점이 보이지 아니하면 종국에는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자녀들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와 아픔을 주게된다.
가정이나 삶에 어려움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즐겨야 할 것이다. 2010년 2월 5-6일 이틀 동안에 미국 워싱턴DC를 비롯해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 주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 도시 기능이 마비될때 어느 방송사에서 시민들에게 권고 하기를 “세기의 폭설, 피할 수 없으면 맘껏 즐겨라.” 는 것이었다. 이 말은 많은 시민들이 엄청나게 내린 눈으로 차량운행이 불가능해지고, 정전사태가 속출해 추운 겨울 밤을 보내야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차분하게 대설사태에 대처하면서 길거리에서는 대규모 즉석 눈싸움은 물론 스키타기,썰매타기, 설경을 즐기고 있었다. 그것을 본 어느 한 방송 기자가 시민들이 폭설속에서도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행복하게 보였기 때문에 방송에 그들의 모습을 담고 방송을 보는 시민들에게 한 말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제설작업이 부실 했다”느니, “시장과 지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느니 하는 비판성 보도는 전혀 내보내지 않은채, 적설량과 시민들의 반응, 향후대책 등을 사실 중심으로 전하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모습이 선진문화가 보여준 하나의 좋은 모습이지만 이것을 삶 속에 적용해 본다면 이것은 분명 어려운 현실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움에 뛰어 환희에 이르러”라고 말한 베토벤의 고향곡9번의 4악장에 나오는 “환희”에관한 가사를 보면 “오 친구여 이 곡조보다 더 한 것이 없으리! 더욱 희망찬 노래를 부르세 더 즐겁고 즐겁게,즐겁게! 환희여….태양이 떠오른다 기뻐하여라, 천국의 영광스런 계획속에, 형제여 달려가라, 그리고 승리의 영웅이 되어라. 모든 사람들은 서로 포옹하라! 온 세상 위한 입맞춤을!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주가 있으니. 억만의 인민들이여, 무릎을 끓겠는가? 인생의 삶을 살면서 “행복이라는 가치추구”를 향해 달려 가지만 때로는 이런 것들을 시야에서 놓치는 경우가 분명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있게된다. 그럴때면 지금까지 쏟아 부은 노력들이 부메랑처럼 치명적인 충격으로 변해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면 더 이상 도전적인 삶을 살려고 하지 않게 된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들은 다 문제 없이 사는데 나만 어렵다고 집착하게 되는데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각기 하나 하나의 문제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된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삶의 환경을 조정하고 축복을 주시는 일들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37절과 38절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니라 하시니” “구원과 삶의 기쁨의 축복”은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서만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고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일들인데 이것을 함축적으로 표현 한다면 “주어진 삶을 즐겨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어려움을 즐겨라”일 것이다. 당신이 처한 환경에서 조금만 벗어나 생각을 하게 된다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뿐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미래에 기쁨의 소망을 가져다 줄 것이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