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 장사익은 1949년생이니 올해 예순둘이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늙은이로 요즘 한창 인터넷 카페를 달구는 기인 가객(歌客)이다.
그는 늘 희디 흰 한복차림으로 무대에 오른다. 좀 격식을 차려야 할 공연에는 두루마기를 입는 정도이다. 그는 수염을 깎지 않는 털복숭이에 상고머리지만 얼굴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소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14번이나 직업을 바꾸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정착 할 수 없었다.
결국 장고를 치던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사물놀이패에서 태평소를 불고 다녔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고향마당에 핀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영감으로 써내려간 시 찔레꽃이 그의 후반 인생을 바꾸게 되고 늦깍기 가수로 데뷔해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다.
그의 찔레꽃은 이렇다.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날았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이 찔레꽃이 한국의 가곡(歌曲)이 되어 가는 것은 한국인의 한(恨)을 풀어주는 노래인 까닭일 것이다. 남사당패처럼 떠돌아 다니는 자신의 신세를 한하며 한없이 울던 그에게 떠오른 영감으로 써내려간 시 찔레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의 타이틀은 국악인이나 그의 입에서 판소리가 나오기를 기대하였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뽕짝 가수도 아니며 더구나 가곡을 부르는 테너나 바리톤도 아니다.
그의 노래는 그저 한을 부르고 설움을 달레는 음유시인의 피 토하는 절규일 뿐이다.
구태여 그에게 타이틀을 붙인다면 한의 소리꾼이요 설움의 가객(歌客)이라고나 할까?
그의 노래는 너무나 맑아서 그의 삶자체를 그대로 투영하는 활동사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이의 몸짓은 요란하지 않되 가사를 전달하는 동작으로는 그만이다.
그런데 나는 그가 부른 “봄날은 간다”가 찔레꽃보다 더 좋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하는 다분히 신파조이지만 그 안에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가락이 있는 이 노래를 그만큼 청승맞게 부르는 이는 다시 없다.
그러나 그의 청승은 이내 희열의 카타르시스를 선물하는 대반전이 있다. 그가 천부적인 소리꾼임을 세상은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그 자신도 알지 못했으니 세상이 알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찔레꽃이 먼저 알아보았던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는 법이다. 찔레꽃이 알아본 장사익아 부럽다. 아! 나는 누가 알아봐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