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한 여인은 자기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또 한 여인은 자기는 일생 이렇다 할 큰 죄는 짓지 않았지만 자질구레한 잘못은 많다고만 했습니다.
목사님은 두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덩이를 가져 오시오.” 목사는 이번에는 일생동안 이렇다 할 큰 죄를 지은 기억이 없다는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자디잔 돌멩이를 치마폭에 가득 주워 오시오.” 한참 후에 두 여인은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하여, 한 여인은 커다란 바윗돌을 낑낑거리며 옮겨 왔고, 다른 여인은 새알만한 잔 돌을 치마폭 가득 주워왔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 돌멩이들을 제 자리에 갖다 놓고 오십시오.” 큰 바윗돌을 가져온 여자는 그 돌을 어디서가지고 왔는지를 잘 알 수 있기에 다시 낑낑거리며 제 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나 새알만한 잔돌을 치마폭에 가득히 주워온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목사님이 소리쳤습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당신은 하루하루 이러저러한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죄책감 없이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짓고도 회개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큰 죄를 짓고 이렇게 통회하고 자복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을 깨닫는 것입니다!”
큰 돌이든 작은 돌이든 호수에 던지면 다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죄는 크든 작든 다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죄인임을 깊이 자각하는 사람은 은혜 아래 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가까이 있을 때에는 아직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은 아주 작은 욕심이나 나쁜 생각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서치라이트로 내 마음속을 온통 비추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를 지은 사람이 더 당당하게 큰소리를 칩니다. 그래서 교도소에 가보면 오히려 죄인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저마다 ‘나는 억울합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올 사람은 안 오고 나만 들어왔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교회도 교도소와 똑 같습니다. ‘지가 뭔데 나한테 죄인이라고 그래? 나 같이만 살아보라고 해! 내가 저 사람보다는 더 낫지 않아?’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미국은 선진들이 지켰던 철저한 신앙으로 복을 받았는데 오늘날은 왜 이렇게 세상의 미움을 받고 있습니까? 테러와 악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국이 사는 길이 무엇입니까? 힘으로 테러범을 다 소탕하면 됩니까? 빈 라덴을 죽이고 그 다음을 또 죽이고 그 다음을 또 죽이면 됩니까?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뿐입니다.
미국의 회복을 이룰 수 있는 진정한 길은 먼저 하나님 앞에 죄를 깨닫는 회개운동이 일어나 청교도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침묵하며 영적인 책임감을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시대를 이길 수 있는 뜨거운 성령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외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도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 된 나의 모습과 삶을 회개하고, 거룩과 성결을 회복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 하나님의 새 역사를 일으키는 축복의 통로로 귀하게 쓰임 받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