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들과 제자들이 옷을 벗어 길에 깔아놓고 옆에 있던 야자나무의 잎을 따서 흔들며 예수그리스도의 일행을 맞는다. “호산나 다윗의 왕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군중들의 외침은 하늘을 찌르고 땅을 흔들만한 뇌성(雷聲)과 같았다.
수백 년간 메시야를 기다리며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슥 9:9)을 성취하기 위해 준비한 나귀주인의 정성과 “주가 쓰시겠다”하는 그 말 한마디에 조상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메시야가 지금 자신의 어린나귀를 사용하시겠다는 말로 알고 기다리던 메시야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지금까지 소중히 아끼던 재산을 기꺼이 내어준 어린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모든 예루살렘 백성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으며 그동안에 쌓였던 피로를 씻고 하루를 보낸다.
다음날 아침 일찍(월요일) 성전으로 향하다가 배가 고픈 예수그리스도는 옆에 있는 무화가 나무를 본다. 본래 두 번 열매를 맺는 무화가 나무의 첫 열매가 열리는 계절에 열매가 없음을 보고 꾸짖는 예수님, 첫 열매가 열리지 아니하면 두 번째 열매가 열리지 않는 무화가 나무의 특성을 아시고 이미 무화과나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을 아시고 행한 행동이시다. 이를 지켜보던 제자들은 자신들의 열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을까?
예수그리스도의 꾸짖는 말씀 한마디에 무화과나무는 그 자리에서 말라버린다. 이렇게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한지도 3년이나 지났는데 오늘처럼 무서운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제자들이 웅성거리며 예루살렘성전에 다다른다.
성전에 들어가니 왁자지껄하다.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파는 자들이 자리하여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레 소리를 지르며 손님을 맞이한다. 이를 본 예수그리스도는 화를 내시며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상과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타락한 종교지도자들과 상인들 간의 유착(癒着)된 고리를 끊고, 예배하는 거룩한 곳의 회복을 원하셨던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거룩한 성전의 주인이 되고, 성전의 머리가 됨을 만천하에 공표한 사건이 되었다. 옆에 있던 제자들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자신들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모신 거룩한 전이 되어야 하는데, 저들과 같이 타락하고 더러운 것이 가득한 상태의 육으로 주님을 모시고자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어제의 일을 기억하는지 “호산나! 호산나!” 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일행을 따라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바리새인들은 어린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꾸짖고 성전에서 내어 쫓으려 한다. 그들의 생각에는 어린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노래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어린이들이 노래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이들을 꾸중하고 어린이들과 함께 자리한 예수그리스도는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에 성경을 읽어보라시며 자리를 떠나 성 밖의 베다니에서 하루를 지내신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두 번째 날(화요일)을 맞이하게 된다. 첫날부터 그랬듯이 예수그리스도는 공생애의 일정보다 더 바빴다. 성전에 이르러 모여 있는 군중들과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따져 뭇는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마 21:23)
예수그리스도의 단호한 말씀으로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대답을 회피함으로 세 가지 비유를 들어 그들을 책망(責望)한다.
두 아들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하는데 큰아들은 대답하고 가지 아니하고, 작은 아들은 싫다고 하고 나중에 가서 일한다면 누가 아비의 뜻대로 행한 것이냐? 당연히 작은 아들임을 밝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너희보다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31)며 경고한다.
이어서 포도원을 만들고 각종 기계들로 완벽하게 구비하여 세를 놓고 타국에 간 주인이 세출을 계산하러 종들을 보내니 그들을 때리고 죽인 것을 알고, 더 많은 종들을 보냈는데도 그들을 모두 죽인 것을 보고 주인의 아들을 보냈는데도 그를 잡아 죽인 것을 이야기 하며 주인이 나중에 직접 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을 때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다른 농부에게 세를 줄 것임을 밝힌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쓰여 있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시 118:22,23)하는 말씀으로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는 말씀을 하신다.
또한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임금이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풀고 종들을 보내어 청한 사람들을 오라고 하지만 오기를 싫어하고, 다른 종들을 보냈는데도 오히려 자기 길로 가며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임을 알고 임금이 노하여 그 동네를 불사르고 살인자들을 모두 죽인 후에 사거리 길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청하여 잔치에 오게 한다.
청함 받은 이들은 오히려 잔치에 오지 않고 길에 지나는 나그네는 초청받고 잔치에 참여한 것을 말씀하시며 그래도 예복을 준비하지 않은 손님은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으로 쫓아 낸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라는 말씀으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또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자들에게 교훈을 남겨 주셨다.
이렇게 예루살렘 입성 후 둘째 날(화요일)이 유대종교지도자들과의 논쟁으로 분주히 가고 있는 동안 유다의 반역이 이루어지고 예수그리스도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며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경고하신다. 이 말씀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모두 무너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이슬람사원인 황금돔이 자리하고 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5)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
이와 같이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의 징조를 설명하시고 모두가 깨어있기를 원하시며 율법에 사로잡혀 있기보다는 실천하는 삶을 요구하며 분주한 하루를 마감하셨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셋째날(수요일)이 되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잡아 죽일 방책을 꾸미는 동안 예수그리스도와 제자들은 베다니에 있는 한센씨병을 앓고 있는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셨다. 이때 한 여자가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제자들이 일제히 소리지르며 여자를 예수님에게서 떨어지게 한다. 이 때 한 제자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막 14:5)하며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꾸짖으며 깨진 병을 보며 아까워한다. 그도 그럴것이 삼백 데나리온이면 젊은 청년이 1년을 벌어 저축해야 할 만큼 값비싼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며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마 26:10)하시며 그 여인을 칭찬하시고 스스로 후에 자신이 죽어 장사(葬事)되실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알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칭찬하며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막 14:9)하시며 오히려 제자들에게는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막 14:8)는 말씀을 남기며 하루를 마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내리며 그 첫 번째로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하신 것을 우리는 모두 기억한다. 내가 가장 먼저, 내가 가장 소중하게, 내가 가장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어떤 이는 사랑하는 아내(남편)라 할 것이요. 어떤 이는 자녀(아들,딸,손자,손녀)라 할 것이요. 어떤 이는 부모라 할 것이요. 어떤 이는 자신이 즐기는 취미라 할 것이요. 어떤 이는 특기라 할 것이요. 어떤 이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장 먼저, 가장 소중하게, 가장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것이 하나님보다 우선인가? 아니면 하나님 다음인가?
만약에 하나님보다 우선이라면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깨뜨릴 수 있는가?
유대종교지도자들과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성전에서 사고파는 이들과 결탁하여 상납 받고 매매행위를 묵인한 사건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첫 번째 열매 없는 싹수(?)를 보고 꾸짖은 예수그리스도의 의중은 알 수 있는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며 종려주일로부터 삼일간의 행적을 따라갔는데도 그분의 뜻과 그분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과연 그분의 흘리신 피로 구원받은 백성인지 스스로 의심해 자신을 점검 해봐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죽기 전에 내가 가진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을 깨뜨리자. 내가 죽기 전에 내가 가진 가장 아끼고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을 깨뜨려 주님 앞에 드리자.”다짐하며 Part-time으로 헌신하기 보다는 Full-time으로 헌신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실 것임을 알고 실천하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나 자신과 모든 크리스천에게 청해본다.
“가만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막 14:6)
뉴욕비전교회 김연규 목사.
수백 년간 메시야를 기다리며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슥 9:9)을 성취하기 위해 준비한 나귀주인의 정성과 “주가 쓰시겠다”하는 그 말 한마디에 조상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메시야가 지금 자신의 어린나귀를 사용하시겠다는 말로 알고 기다리던 메시야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지금까지 소중히 아끼던 재산을 기꺼이 내어준 어린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모든 예루살렘 백성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으며 그동안에 쌓였던 피로를 씻고 하루를 보낸다.
다음날 아침 일찍(월요일) 성전으로 향하다가 배가 고픈 예수그리스도는 옆에 있는 무화가 나무를 본다. 본래 두 번 열매를 맺는 무화가 나무의 첫 열매가 열리는 계절에 열매가 없음을 보고 꾸짖는 예수님, 첫 열매가 열리지 아니하면 두 번째 열매가 열리지 않는 무화가 나무의 특성을 아시고 이미 무화과나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을 아시고 행한 행동이시다. 이를 지켜보던 제자들은 자신들의 열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을까?
예수그리스도의 꾸짖는 말씀 한마디에 무화과나무는 그 자리에서 말라버린다. 이렇게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한지도 3년이나 지났는데 오늘처럼 무서운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제자들이 웅성거리며 예루살렘성전에 다다른다.
성전에 들어가니 왁자지껄하다.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파는 자들이 자리하여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레 소리를 지르며 손님을 맞이한다. 이를 본 예수그리스도는 화를 내시며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상과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타락한 종교지도자들과 상인들 간의 유착(癒着)된 고리를 끊고, 예배하는 거룩한 곳의 회복을 원하셨던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거룩한 성전의 주인이 되고, 성전의 머리가 됨을 만천하에 공표한 사건이 되었다. 옆에 있던 제자들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자신들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모신 거룩한 전이 되어야 하는데, 저들과 같이 타락하고 더러운 것이 가득한 상태의 육으로 주님을 모시고자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어제의 일을 기억하는지 “호산나! 호산나!” 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일행을 따라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바리새인들은 어린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꾸짖고 성전에서 내어 쫓으려 한다. 그들의 생각에는 어린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노래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어린이들이 노래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이들을 꾸중하고 어린이들과 함께 자리한 예수그리스도는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에 성경을 읽어보라시며 자리를 떠나 성 밖의 베다니에서 하루를 지내신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두 번째 날(화요일)을 맞이하게 된다. 첫날부터 그랬듯이 예수그리스도는 공생애의 일정보다 더 바빴다. 성전에 이르러 모여 있는 군중들과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따져 뭇는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마 21:23)
예수그리스도의 단호한 말씀으로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대답을 회피함으로 세 가지 비유를 들어 그들을 책망(責望)한다.
두 아들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하는데 큰아들은 대답하고 가지 아니하고, 작은 아들은 싫다고 하고 나중에 가서 일한다면 누가 아비의 뜻대로 행한 것이냐? 당연히 작은 아들임을 밝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너희보다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31)며 경고한다.
이어서 포도원을 만들고 각종 기계들로 완벽하게 구비하여 세를 놓고 타국에 간 주인이 세출을 계산하러 종들을 보내니 그들을 때리고 죽인 것을 알고, 더 많은 종들을 보냈는데도 그들을 모두 죽인 것을 보고 주인의 아들을 보냈는데도 그를 잡아 죽인 것을 이야기 하며 주인이 나중에 직접 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을 때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다른 농부에게 세를 줄 것임을 밝힌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쓰여 있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시 118:22,23)하는 말씀으로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는 말씀을 하신다.
또한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임금이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풀고 종들을 보내어 청한 사람들을 오라고 하지만 오기를 싫어하고, 다른 종들을 보냈는데도 오히려 자기 길로 가며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임을 알고 임금이 노하여 그 동네를 불사르고 살인자들을 모두 죽인 후에 사거리 길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청하여 잔치에 오게 한다.
청함 받은 이들은 오히려 잔치에 오지 않고 길에 지나는 나그네는 초청받고 잔치에 참여한 것을 말씀하시며 그래도 예복을 준비하지 않은 손님은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으로 쫓아 낸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라는 말씀으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또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자들에게 교훈을 남겨 주셨다.
이렇게 예루살렘 입성 후 둘째 날(화요일)이 유대종교지도자들과의 논쟁으로 분주히 가고 있는 동안 유다의 반역이 이루어지고 예수그리스도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며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경고하신다. 이 말씀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모두 무너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이슬람사원인 황금돔이 자리하고 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5)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
이와 같이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의 징조를 설명하시고 모두가 깨어있기를 원하시며 율법에 사로잡혀 있기보다는 실천하는 삶을 요구하며 분주한 하루를 마감하셨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셋째날(수요일)이 되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잡아 죽일 방책을 꾸미는 동안 예수그리스도와 제자들은 베다니에 있는 한센씨병을 앓고 있는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셨다. 이때 한 여자가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제자들이 일제히 소리지르며 여자를 예수님에게서 떨어지게 한다. 이 때 한 제자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막 14:5)하며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꾸짖으며 깨진 병을 보며 아까워한다. 그도 그럴것이 삼백 데나리온이면 젊은 청년이 1년을 벌어 저축해야 할 만큼 값비싼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며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마 26:10)하시며 그 여인을 칭찬하시고 스스로 후에 자신이 죽어 장사(葬事)되실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알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칭찬하며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막 14:9)하시며 오히려 제자들에게는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막 14:8)는 말씀을 남기며 하루를 마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내리며 그 첫 번째로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하신 것을 우리는 모두 기억한다. 내가 가장 먼저, 내가 가장 소중하게, 내가 가장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어떤 이는 사랑하는 아내(남편)라 할 것이요. 어떤 이는 자녀(아들,딸,손자,손녀)라 할 것이요. 어떤 이는 부모라 할 것이요. 어떤 이는 자신이 즐기는 취미라 할 것이요. 어떤 이는 특기라 할 것이요. 어떤 이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장 먼저, 가장 소중하게, 가장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것이 하나님보다 우선인가? 아니면 하나님 다음인가?
만약에 하나님보다 우선이라면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깨뜨릴 수 있는가?
유대종교지도자들과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성전에서 사고파는 이들과 결탁하여 상납 받고 매매행위를 묵인한 사건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첫 번째 열매 없는 싹수(?)를 보고 꾸짖은 예수그리스도의 의중은 알 수 있는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며 종려주일로부터 삼일간의 행적을 따라갔는데도 그분의 뜻과 그분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과연 그분의 흘리신 피로 구원받은 백성인지 스스로 의심해 자신을 점검 해봐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죽기 전에 내가 가진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을 깨뜨리자. 내가 죽기 전에 내가 가진 가장 아끼고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을 깨뜨려 주님 앞에 드리자.”다짐하며 Part-time으로 헌신하기 보다는 Full-time으로 헌신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실 것임을 알고 실천하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나 자신과 모든 크리스천에게 청해본다.
“가만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막 14:6)
뉴욕비전교회 김연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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