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에피소드는 익명성을 위해서 당사자들의 신분과 이름, 상황 등은 각색이 되었음을 알림)
남편 이정찬씨는 오늘도 ‘잡친 기분’으로 출근을 해야 했다. 어김없는 아내와의 말다툼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부부간에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내와는 대화를 할 때마다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 때가 없었다. 중요한 문제이든 사소한 문제이든 상관없이 그러했다. 차라리 대화를 하지 않으면 낫겠다고 생각하여 웬만한 대꾸조차 하지 않기로 하자 이제는 대꾸도 안하고 사람을 더 무시한다고 성에 받친 아내의 고성을 듣는다.
결혼생활을 한 지가 15년 쯤 되었으면 부부란게 서로를 많이 알고 더 이해해 주는 상대라 기대할 만 한데 오히려 그 반대라니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씨는 아내와 사소한 것들을 가지고 다투는 일이 정말 지겹다고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런 부부생활의 일상을 계속해 가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심각하게 들기 시작했다. 아내 성심씨도 남편이 자기를 무시하고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가 성의없다는 불평을 늘상했다. 분명히 한국말을 하는 데 ‘말이 도대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심씨는 말하는 화법이 늘 감정적이고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대화를 할 때마다 시작과 종결을 반드시 자기가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 내용은 조리에 잘 맞지 않았다.
반면 남편 정찬씨는 논리적이고 늘 분석적이었다. 아내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때로는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과장하여 무리한 말들을 할 때는 더 이상 대화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늘 그랬다. 결혼 초기에는 나름대로 노력을 하며 사랑하는 감정으로 웬만히 넘어갔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 이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부부간에 혹은 중요한 관계당사자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일로 인해서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느 정도의 수위의 차이냐의 문제일 뿐 실상 우리 모두가 겪는 일들이기도 하다. 정찬씨 부부가 이혼까지 심각하게 고려하게된 의사소통의 문제는 실제 드러난 문제점들과 함께 내면적인 생각의 문제들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들을 생각해야만 한다.
우선 서로의 대화의 스타일과 방법이 현저히 달라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을 경험해 왔다. 물론 단순히 의사소통의 스타일이 다르다고해서 반드시 문제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나 그 다른 차이가 호환되지 못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 아내 성심씨는 20대 초반부터 가져온 ‘학력 콤플렉스’를 만회하기 위해 의식, 무의식적으로 타인들을 대하고 대화하는 데 있어 논리보다는 감정에 호소하고, 자기의 대화내용을 어필하기 위해 과장을 하거나 실제보다 과한 강조의 표현들을 해왔다.
대화를 자기가 주도하려는 생각도 ‘열등감’을 감추거나 보상하기 위한 일종의 ‘보상심리’의 발로였다. 같은 이유로 고학력자인 남편과 결혼하긴 했으나 그에 비해 자신이 모자르다는 생각 또한 여전하여 이제까지의 부부간의 대화와 관계가 오히려 시간이 가며 더욱 나빠진 상황이 되었다. 합당치 않게 그리고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남편의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생각과 표현의 방식과는 충돌이 되고, 이해도, 수용도, 소통도 없는 다툼의 대화들만을 쌓기에 이르른 것이다.
사려깊고 경험많은 상담자나 사역자라면, 문제의 근원 중 하나인 성심씨의 ‘열등적 자아인식’을 극복하는 일을 도울 수 있고, 표현방법의 전환의 노력과 기술들을 연습하게 하거나, 남편의 아내 이해와 필요한 수용과 더욱 효울적이고 존중하는 대화의 기술들을 익혀 실천하게 하면 지금까지 하던 소위 ‘대화 스타일의 충돌 (conflict of communication style)’ 과 건강치 못한 ‘관계의 댄스 (relational dance)’를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고 이로 말미암아 매일 말다툼으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문제들이든지 그 이면에는 이유가 있고, 이 이유들을 정확히 알고 나면 그것들에 적절한 해결 방법들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묵은 문제들이고 익숙한 잘못들이라면 시간과 노력을 더 요구하게 되겠지만 상황을 개선하여 보다 적응이 가능한 결과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이라는 그릇 속에 어떤 가치관들과 생각들을 담고 있는 존재인가? 그리고 그걸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표현하고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모양새를 가꾸는 데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과 걸맞지 않게, 우리의 속사람, 우리의 인격을 가꾸는 데에는 놀라우리만치 인색하고 있지는 않은가? 행여 내 안에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속물근성’이나 기피인물이 될 만한 표나는 특징들은 없는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고 섭생에 주의 하는 것처럼, 인격을 도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바르고, 효율적이고, 공평하고 상호적인 의사소통을 하기위해 어떤 노력을 하거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중일까?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걸까?
[이규현 컬럼] 장애적인 의사소통
전인건강, 건강한 가정 회복을 위한 캠페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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