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것에는 “길”이 있습니다. 비행기는 항로(航路), 배는 해로(海路), 차는 차도(車道), 그리고 기차는 철도(鐵道)로 다닙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인도(人道)라고 부릅니다. 다녀야 할 길로 다니는 것을 “정도”(正道)라고 하고, 그 길을 벗어나는 것을 탈선(脫線)이라고 부릅니다. “탈선”하면 반드시 “사고”(事故)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길”을 벗어나게 되면 “벌”(罰)을 받게 됩니다. 비행기가 항로를 이탈하면 금방 전투기가 따라옵니다. 배가 길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면 곧 바로 나포(拿捕)를 당하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마다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도”(道)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것을 “도리”(道理)라고 합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만약, 군인이 자신의 도리를 벗어나 방종된 생활을 일삼고, 병영을 함부로 이탈하면, 그는 군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그 도리를 벗어나게 되면, 결국에는 이름뿐인 “무능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갖은 “꾀”를 부리고, “빽”을 써서 마침내 “단기사병”(방위병)이 된 친구가 있었습니다. 자기 딴에는 성공했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군대 행정실에서 중대장의 명령으로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군대 재산 등급 편성표”를 보게 되었습니다. 군대의 재산을 소중한 것부터 무가치한 것에 이르기까지 차례대로 정리해 놓은 도표입니다. 쌀과 무기 그리고 살아있는 현역 군인은 역시 가장 중요한 “1종란”에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현역 군인”은 한참 아래인 “10종란”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살아있는 방위병”이 바로 그 옆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죽은 군인”과 “살아있는 방위병”의 등급이 똑같았습니다.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전역을 하고 나서도, “사람이 도를 벗어나게 되면 살아도 죽은 존재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고 늘 넋두리처럼 되뇌이곤 했습니다.

사람이 도(道)를 닦는 이유는 “신”(神)이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좀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고, 감사하고, 인내하고, 도와주는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비뚤어진 자신을 바로 잡는 시간이 있어야 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를 닦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도를 닦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예배”(Worship)는 도를 닦는 대표적인 시간입니다. 한 주간 동안의 삶을 되돌아 보고 탈선되고, 타락한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바로 잡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내가 곧 길(道)이라”(요한 14:6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이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이 곧 “그리스도인이 되는 삶” 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살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은혜의 자리에 열심히 참석해서 자기를 바로 잡을 때에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나 기도회와 같은 “은혜의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은혜로운 모임들을 통해 신앙의 도(道)를 함께 배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