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 희경 씨가 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서문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습니다. 사랑을 한다고 할 때에는 더 더욱이 그랬습니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았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이 "너, 정말 잘 살았어? 그런데 행복했었어?"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었습니다,

그리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쉽게 끝이 났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누군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 잔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습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었고, 다음엔 웃음으로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습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았고, 오늘도 해말게 웃으며 연애를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보다 더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이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옅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인 것입니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는 말에 눈이 꽂혔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사랑이라는 이름을 외치며 살았는가? 그런데 물과 같이 다 주고도 아깝지 않은 그런 사랑을 했는가? 생각하게 합니다. 언제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하고, 자기 이기심이라는 도로를 따라 멀찌감치 도망치고자 했던 부끄러운 모습은 아니었는지를!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주신 최고의 사랑이십니다. 목숨까지 주셨으니 말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수 없이 고백했지만 나는 그 사랑의 삶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주님께서 그렇게 목숨까지 버리시면서 핏 값을 지불하시고 사주신 보배롭고 존귀한 자들을 얼마나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 주님의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조차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생각게 됩니다. 최고의 사랑은 바로 죽어가는 영혼을 건지는 일입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영혼을 향해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유죄인 것입니다. 또한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 역시 유죄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랑하는 자는 분명 행복한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