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이민교회 사역자들을 돕기 위해 창립한 코딤(KODIM, Korean Diaspora Ministry)은 지난 10월 2차 서부지역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코딤은 세미나와 멘토링을 통해 이민신학을 바르게 정립할 수 있도록 돕고 사역자들이 목회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분야별 강의를 요약, 기획연재 한다.-편집자주-
1963년 Western Michigan University 강당에서 Dr. 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주일 11시는 미국에서 가장 인종 차별이 심한 때 “the most segregated hour in this nation” 라고 말했다. 우리가 상상 하는 것처럼 그 시간은 바로 주일 예배 시간이다.
그보다 얼마 전인 1955년에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선교사 출신인 교회 성장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도날드 맥가브란이 Homogenous Unit Principle (HUP) 을 이야기 하며 “사람들은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로 같은 동질성을 가지고 예배 드리기를 선호한다” 는 현상에 근거해 HUP를 교회 성장의 중요한 요소로 만들었다 (도날드 맥가브란의 Bridges of God 이라는 책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러 면으로 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교회 성장학의 두 번째 리더라 할 수 있는 피터 와그너는 이것을 널리 전파했다.
맥가브란 자신은 본인의 이론이 얼마나 다음 세대에 영향력을 줄 것을 예견하고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HUP 는 교회 성장학의 절대적인 요소로 자리 매김을 했고, 아직도 특히 백인 교회들은 이것을 열심히 마케팅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것이 미국교회 마켓팅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미국 전형적인 도시에서 백인 중심의 대형교회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래도 이해는 가지만 (좋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허물기 힘든 배경을 이해하는 면에서), 오랫동안 선교지에 몸담고 있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왜 선교사들의 부족한 언어와 제한된 문화의 이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20세기에 그처럼 heterogeneous (다른 인종,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가진) 선교사들을 통해 선교의 불을 일으키셨는가?” 란 질문에 하나님 앞에 올바로 답변해야 할 것이다.
맥가브란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던 그것을 교회 성장의 한 정당한 요소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 재미를 톡톡히 봤다. 놀랍게도 미국에서1960년에 출석교인 2,000명이 넘는 대형 교회는 불과 16개였다. 그러나 2005년 현재 출석 교인 2,000명이 넘는 대형교회는 무려 1,210개로 늘어났다. 교회 성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증거하며 교회는 당연히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맥가브란의 HUP 요소만으로 교회가 그렇게 대형화 되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듯이 그 수많은 미국 대형 교회들의 대표적인 교회들은 모두가 아예 백인 중심이거나 흑인 중심이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질성 집단이 주를 이룬 나라에서는 특별한 비판 거리가 되지 않겠지만, 다민족으로 모인 Melting Pot인 미국 사회에서 종종 “교회는 가장 인종 차별이 심하며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편협한(intolerant) 집단” 이라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곤 한다. 복음 전도의 문을 막는 비판 요소를 제공한 셈이다.
마틴 루터킹의 선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화 되고 있다 (물론 짐 심발라의 New York Brooklyn Tabernacle, Erin McManus의 Mosaic Church, 데이빗 기본스의 New Song 등의 좋은 다민족 교회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맥가브란의 HUP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재 HUP를 교회성장의 한 요소로 사용하여 성장한 교회들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었는지 의심이 든다.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 백인은 백인끼리 모여 교단을 만들고 선교하고, 흑인은 흑인끼리 모여 교단을 만들고 선교하고,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모여 교단을 만들고 선교한다. “끼리 끼리”는 잘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시는 것 같다. 아니 성경적으로 보면 확실히 그렇지 않다. 심지어 이민을 와서도 우리는 늘 한국 사람끼리 모인다. 필자에게도 그런 모습이 당연히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벨탑 사건 이후에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징벌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의 죄 성 (by sinful nature) 가운데 나온 현상에 기인한 우리의 분리성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맥가브란의 HUP를 받아 들였고, 그 중에 전형적으로 그것을 적용한 사람 중에 하나가 빌 하이벨스와 릭 워렌 이다 (필자는 릭 워렌과 빌 하이벨스의 악영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비판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놓치는 그들의 훌륭한 점들도 있다). 빌 하이벨스는 책에서 밝히듯이 교회를 개척하면서 20-40대 백인 중상층을 타겟 그룹으로 했다.
우리 같으면 영어도 부족하고 문화도 다른 이질감이 많으니까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 한국 사람을 core group으로 삼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시카고에서 수많은 인종들이 모여 있는 그런 다민족 기회의 도시에서 과연 하나님은 백인들만을 위한 대형 교회를 원하셨을까?
사실 몇 년 전에 빌 하이벨스는 Christianity Today에서 이점을 시인하고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다고 후회 했다. HUP 같은 이론을 목회 초창기부터 교회 성장의 원동력으로 사용했던 것을 “I was too naive, 내가 너무 순진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 다민족 교회로 되 돌이키기에는 교회가 체질적으로 너무 백인화 되어 있다는 면을 여러 다민족 대담자들 앞에서 고백했다. 그래 이제 와서 후회라도 하며 다민족들을 리치 아웃하려는 시늉을 한다면 그래도 빌 하이벨스는 다른 콧대 높은 백인 대형 교회 목사들보다는 열린 사람인 듯 싶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HUP 는 인간의 죄 성에 근거한 나타나는 현상이지 그것을 교회 성장의 원리로 적용하는 것은 대단히 비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형성될 때 Homogenous Unit (동질성 집단으로 모이는) 으로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역자가 그것을 의도적으로 교회 성장의 숫자적인 생각으로 목회에 적용하면 편협적인, 그리고 때론 인종 차별적인 목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교의 역사 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성경적인 교회는 어느 부류의 어떤 문화의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 때문에 교회의 성장이 더디 다고 하더라도 그런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라는 신념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교회 성장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다운 영적 질적 성장이라고 믿어야 한다.
우리는 마케팅이나 전략이전에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본질의 모습이 무엇인가 늘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늘 교회 위에 있는 하나님 나라라는 좀 더 수준 높은 관점에서 목회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이 질문은 “교회가 예수님의 DNA를 가졌느냐”로 귀결된다.
예수님은 우리와 신분이 다른 분이다. 사용하시는 언어도 문화도 다른 분이다. 죄인 된 우리와 전혀 어울리시지 않는 분이다. 그러나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 6-7).”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Cross culture 하셨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때로는 더딘 일이고, 때로는 비판받는 일이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인지 스스로 보여 주셨다. 그런데 그런 DNA를 갖고 있는 교회 공동체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무한한 다민족 선교의 기회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느 한 대형 교회의 예를 들어) 재정 1,500만 불에 1년에 20명 침례주고 99% 백인 출석을 자랑한다면 과연 교회가 예수님의 DNA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풀러 신학교의 선교학자 챨스 밴행겐은 God’s Missionary People 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곳이므로 모든 사람을 교회로 들어올 수 있도록 초청하고 불러들이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 “교회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되어질 때 그 몸은 보편성을 가진 모습을 드러낸다 (엡 3: 1-13)”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 1995: 74-75).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2절은 줄곧 암송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러나 그 다음구절은 잘 잊는 듯하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자들이니라.” 우리가 이 땅에 살아나가면서 갖고 있는 우리의 한계점들, 문화, 언어, 인종 같은 것이 분명히 존재 하지만, 우리가 본질적으로 그것을 뛰어 넘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라면 우리는 어떤 면으로 보나 예수님이 하신 cross culture 를 날마다 시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3절” 이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Homogenous Unit Principle 은 오직 예수 DNA 이다. 이민 교회의 성장이 더디고 환경이 힘들더라도 힘내시기 바란다. 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한 지붕아래 있는 지역 교회들이다. 능력도 다르고, 달란트도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르다. 그러나 교회의 섬기는 리더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DNA, 곧 성육신의 피를 바탕으로 모든 부류의 다양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하겠다. 그것이 피부 색깔이 다른 다민족들이든, 문화가 다른 다양한 이민 사회속의 한국 사람들이든, 마음을 넓게 열고 “오직 예수” “Jesus-genous Unit Principle” 을 갖고 복음을 외치자.
나와 피부 색깔과 문화가 다른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올 때 천국 잔치의 기쁨은 배가 되고, 교회는 예수님의 DNA 가 더 해 질 것이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DAN를 가진 교회인가? 교회 성장 학자 Mark Dever 가 말했듯이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백보좌 심판 앞에서 우리 목회자들을 엄문 하실 것이다. Got Jesus’ DNA?
1963년 Western Michigan University 강당에서 Dr. 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주일 11시는 미국에서 가장 인종 차별이 심한 때 “the most segregated hour in this nation” 라고 말했다. 우리가 상상 하는 것처럼 그 시간은 바로 주일 예배 시간이다.
그보다 얼마 전인 1955년에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선교사 출신인 교회 성장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도날드 맥가브란이 Homogenous Unit Principle (HUP) 을 이야기 하며 “사람들은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로 같은 동질성을 가지고 예배 드리기를 선호한다” 는 현상에 근거해 HUP를 교회 성장의 중요한 요소로 만들었다 (도날드 맥가브란의 Bridges of God 이라는 책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러 면으로 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교회 성장학의 두 번째 리더라 할 수 있는 피터 와그너는 이것을 널리 전파했다.
맥가브란 자신은 본인의 이론이 얼마나 다음 세대에 영향력을 줄 것을 예견하고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HUP 는 교회 성장학의 절대적인 요소로 자리 매김을 했고, 아직도 특히 백인 교회들은 이것을 열심히 마케팅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것이 미국교회 마켓팅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미국 전형적인 도시에서 백인 중심의 대형교회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래도 이해는 가지만 (좋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허물기 힘든 배경을 이해하는 면에서), 오랫동안 선교지에 몸담고 있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왜 선교사들의 부족한 언어와 제한된 문화의 이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20세기에 그처럼 heterogeneous (다른 인종,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가진) 선교사들을 통해 선교의 불을 일으키셨는가?” 란 질문에 하나님 앞에 올바로 답변해야 할 것이다.
맥가브란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던 그것을 교회 성장의 한 정당한 요소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 재미를 톡톡히 봤다. 놀랍게도 미국에서1960년에 출석교인 2,000명이 넘는 대형 교회는 불과 16개였다. 그러나 2005년 현재 출석 교인 2,000명이 넘는 대형교회는 무려 1,210개로 늘어났다. 교회 성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증거하며 교회는 당연히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맥가브란의 HUP 요소만으로 교회가 그렇게 대형화 되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듯이 그 수많은 미국 대형 교회들의 대표적인 교회들은 모두가 아예 백인 중심이거나 흑인 중심이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질성 집단이 주를 이룬 나라에서는 특별한 비판 거리가 되지 않겠지만, 다민족으로 모인 Melting Pot인 미국 사회에서 종종 “교회는 가장 인종 차별이 심하며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편협한(intolerant) 집단” 이라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곤 한다. 복음 전도의 문을 막는 비판 요소를 제공한 셈이다.
마틴 루터킹의 선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화 되고 있다 (물론 짐 심발라의 New York Brooklyn Tabernacle, Erin McManus의 Mosaic Church, 데이빗 기본스의 New Song 등의 좋은 다민족 교회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맥가브란의 HUP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재 HUP를 교회성장의 한 요소로 사용하여 성장한 교회들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었는지 의심이 든다.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 백인은 백인끼리 모여 교단을 만들고 선교하고, 흑인은 흑인끼리 모여 교단을 만들고 선교하고,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모여 교단을 만들고 선교한다. “끼리 끼리”는 잘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시는 것 같다. 아니 성경적으로 보면 확실히 그렇지 않다. 심지어 이민을 와서도 우리는 늘 한국 사람끼리 모인다. 필자에게도 그런 모습이 당연히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벨탑 사건 이후에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징벌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의 죄 성 (by sinful nature) 가운데 나온 현상에 기인한 우리의 분리성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맥가브란의 HUP를 받아 들였고, 그 중에 전형적으로 그것을 적용한 사람 중에 하나가 빌 하이벨스와 릭 워렌 이다 (필자는 릭 워렌과 빌 하이벨스의 악영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비판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놓치는 그들의 훌륭한 점들도 있다). 빌 하이벨스는 책에서 밝히듯이 교회를 개척하면서 20-40대 백인 중상층을 타겟 그룹으로 했다.
우리 같으면 영어도 부족하고 문화도 다른 이질감이 많으니까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 한국 사람을 core group으로 삼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시카고에서 수많은 인종들이 모여 있는 그런 다민족 기회의 도시에서 과연 하나님은 백인들만을 위한 대형 교회를 원하셨을까?
사실 몇 년 전에 빌 하이벨스는 Christianity Today에서 이점을 시인하고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다고 후회 했다. HUP 같은 이론을 목회 초창기부터 교회 성장의 원동력으로 사용했던 것을 “I was too naive, 내가 너무 순진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 다민족 교회로 되 돌이키기에는 교회가 체질적으로 너무 백인화 되어 있다는 면을 여러 다민족 대담자들 앞에서 고백했다. 그래 이제 와서 후회라도 하며 다민족들을 리치 아웃하려는 시늉을 한다면 그래도 빌 하이벨스는 다른 콧대 높은 백인 대형 교회 목사들보다는 열린 사람인 듯 싶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HUP 는 인간의 죄 성에 근거한 나타나는 현상이지 그것을 교회 성장의 원리로 적용하는 것은 대단히 비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형성될 때 Homogenous Unit (동질성 집단으로 모이는) 으로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역자가 그것을 의도적으로 교회 성장의 숫자적인 생각으로 목회에 적용하면 편협적인, 그리고 때론 인종 차별적인 목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교의 역사 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성경적인 교회는 어느 부류의 어떤 문화의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 때문에 교회의 성장이 더디 다고 하더라도 그런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라는 신념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교회 성장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다운 영적 질적 성장이라고 믿어야 한다.
우리는 마케팅이나 전략이전에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본질의 모습이 무엇인가 늘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늘 교회 위에 있는 하나님 나라라는 좀 더 수준 높은 관점에서 목회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이 질문은 “교회가 예수님의 DNA를 가졌느냐”로 귀결된다.
예수님은 우리와 신분이 다른 분이다. 사용하시는 언어도 문화도 다른 분이다. 죄인 된 우리와 전혀 어울리시지 않는 분이다. 그러나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 6-7).”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Cross culture 하셨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때로는 더딘 일이고, 때로는 비판받는 일이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인지 스스로 보여 주셨다. 그런데 그런 DNA를 갖고 있는 교회 공동체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무한한 다민족 선교의 기회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느 한 대형 교회의 예를 들어) 재정 1,500만 불에 1년에 20명 침례주고 99% 백인 출석을 자랑한다면 과연 교회가 예수님의 DNA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풀러 신학교의 선교학자 챨스 밴행겐은 God’s Missionary People 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곳이므로 모든 사람을 교회로 들어올 수 있도록 초청하고 불러들이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 “교회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되어질 때 그 몸은 보편성을 가진 모습을 드러낸다 (엡 3: 1-13)”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 1995: 74-75).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2절은 줄곧 암송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러나 그 다음구절은 잘 잊는 듯하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자들이니라.” 우리가 이 땅에 살아나가면서 갖고 있는 우리의 한계점들, 문화, 언어, 인종 같은 것이 분명히 존재 하지만, 우리가 본질적으로 그것을 뛰어 넘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라면 우리는 어떤 면으로 보나 예수님이 하신 cross culture 를 날마다 시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3절” 이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Homogenous Unit Principle 은 오직 예수 DNA 이다. 이민 교회의 성장이 더디고 환경이 힘들더라도 힘내시기 바란다. 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한 지붕아래 있는 지역 교회들이다. 능력도 다르고, 달란트도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르다. 그러나 교회의 섬기는 리더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DNA, 곧 성육신의 피를 바탕으로 모든 부류의 다양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하겠다. 그것이 피부 색깔이 다른 다민족들이든, 문화가 다른 다양한 이민 사회속의 한국 사람들이든, 마음을 넓게 열고 “오직 예수” “Jesus-genous Unit Principle” 을 갖고 복음을 외치자.
나와 피부 색깔과 문화가 다른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올 때 천국 잔치의 기쁨은 배가 되고, 교회는 예수님의 DNA 가 더 해 질 것이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DAN를 가진 교회인가? 교회 성장 학자 Mark Dever 가 말했듯이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백보좌 심판 앞에서 우리 목회자들을 엄문 하실 것이다. Got Jesus’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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