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독교 역사상 유래없는 부흥을 일군 한국 교회. 부흥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의 하나로 ‘새벽기도’를 꼽는다. 본지는 미주한인교회의 부흥을 염원하며 부흥의 바람을 일으킬 새벽 기도회 현장을 찾고, 은혜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스물 여섯번째로 찾은 곳은 뉴욕대한교회(월~토 오전 6시)다. 김전 목사가 시무하는 이 교회는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를 표어로 하며, ‘예배, 전도, 봉사, 화목, 기도, 사랑’이 김 목사의 목회철학이다.
뉴욕대한교회는 김전 목사와 5명의 은퇴목회자들이 매일 한명씩 돌아가며 새벽기도회 말씀을 전하고 있다. 12월 6일은 박문근 목사가 시편 19편을 본문으로 ‘삼면에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시편 19편
1절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2절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절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절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절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7절 여호와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절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쁳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발게 하도다
9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절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나이다
12절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절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절 나의 반석이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다음은 설교 말씀이다.
영광이라는 용어는 하나님께만 돌리는 말입니다. 지구상의 수십억의 사람들이 지식과 지혜를 짜내고 큰 힘을 낸다 할지라도 우주의 한 귀퉁이도 파악하지 못할 것이고, 무소부지한 하나님 앞에서 양자와 분자 그리고 인간도 있다가 없어지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 하나님께 감히 영광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입니다.
우리는 다만 살도록 환경을 조성해준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영죽게된 인생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우리는 예배 드릴때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드릴 뿐입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의 앞에 엎드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고 만물의 뜻대로 지음을 받았나이다 라고 고백 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의 장막을 거두셨습니다. 신령한 눈을 가지고 하늘 나라의 성도를 예비하는 성도는 땅에 살도록 환경을 조성하신 것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자연을 보지만 모든 이들이 우리와 같은 영안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에서 보고 말합니다. 천체를 보면서 학문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와 질서를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을 보며 경제적인 가치가 얼마인가를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영안을 가진 성도는 똑같은 세계를 볼 때 그 하늘과 그 태양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솜씨에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영안이 떠졌는데 삐뚤어지게 떠졌습니다. 태양을 보면 태양신, 달을 보면 달신 산을 보며 산신 합니다. 일본에서는 천왕을 살아있는 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본에는 8백만이나 되는 신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왜 우상을 섬깁니까?. 마음 속의 탐욕 때문에, 마음이 삐뚫어져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권력의 우상이 있습니다. 모두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나옵니다.
로마1장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질 사람들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 같은대서 벗어나서 똑바른 신령한 눈을 가지고 해를 보고 하늘을 보십시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까!. 로마서 11장 35, 36절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다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은 우준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꿀과 송이 꿀보다 답니다.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연의 질서와 자연 속에서 솟아나는 신비한 광채를 통해서 하나님의 무소부지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꿈과 환상과 이상으로 말씀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때론 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또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육신을 입고, 말씀으로 성령께 감화 강동시키시며 새하늘과 새땅을 말씀으로 온 우주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쓰여진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이라, 혹은 홀리 바이블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시편 19편에서는 증거, 교훈, 도, 계명, 규례 등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확실하며 정결해서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성뿔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쓰고, 이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고 살면 하나님의 상이 크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이 왜 하나님을 경배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이 때론 지혜가 부족해서 미혹 받았다 다시 바로 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은 성도들에게 정신차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중상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짓입니다. 도덕적인 길을 걷도록 하는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바른 삶의 길을 걷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세번째로 나는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의 양심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인 양심을 인간 속에 넣어주셨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인격이 형성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형상으로 교제하게 하십니다. 그러한 소중한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마치 갓난 아이와 같이 가식이 없고 벗어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아이의 양심과 같았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가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는 도덕률이 번쩍이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9~20절에 이같이 확실한 양심이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흑백색으로 식별하지 못하는 색맹의 양심이 있는가 하면 모든 색을 구분하는 양심도 있습니다. 양심은 우리 속에서 소리쳐 외칩니다. 이렇게 양심은 인증하고 시인하고 단죄하고 부인합니다. 하지만 소경 같은 양심은 범죄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먹으면 죽는 독약인지 구분을 못합니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양심을 24시간 하나님 앞에 고정 시켜놓고 한점 부끄러움 없는 양심의 길을 걸을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 믿습니다.
또 더럽혀지지 않은 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면 아름다운 축복된 삶을 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도들의 삶이 삼면으로 된 프리즘 같이, 프리즘의 삼면에 나타내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 되길 바라는 것이 옳습니다.
스물 여섯번째로 찾은 곳은 뉴욕대한교회(월~토 오전 6시)다. 김전 목사가 시무하는 이 교회는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를 표어로 하며, ‘예배, 전도, 봉사, 화목, 기도, 사랑’이 김 목사의 목회철학이다.
뉴욕대한교회는 김전 목사와 5명의 은퇴목회자들이 매일 한명씩 돌아가며 새벽기도회 말씀을 전하고 있다. 12월 6일은 박문근 목사가 시편 19편을 본문으로 ‘삼면에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시편 19편
1절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2절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절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절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절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7절 여호와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절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쁳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발게 하도다
9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절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나이다
12절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절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절 나의 반석이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다음은 설교 말씀이다.
영광이라는 용어는 하나님께만 돌리는 말입니다. 지구상의 수십억의 사람들이 지식과 지혜를 짜내고 큰 힘을 낸다 할지라도 우주의 한 귀퉁이도 파악하지 못할 것이고, 무소부지한 하나님 앞에서 양자와 분자 그리고 인간도 있다가 없어지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 하나님께 감히 영광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입니다.
우리는 다만 살도록 환경을 조성해준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영죽게된 인생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우리는 예배 드릴때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드릴 뿐입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의 앞에 엎드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고 만물의 뜻대로 지음을 받았나이다 라고 고백 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의 장막을 거두셨습니다. 신령한 눈을 가지고 하늘 나라의 성도를 예비하는 성도는 땅에 살도록 환경을 조성하신 것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자연을 보지만 모든 이들이 우리와 같은 영안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에서 보고 말합니다. 천체를 보면서 학문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와 질서를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을 보며 경제적인 가치가 얼마인가를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영안을 가진 성도는 똑같은 세계를 볼 때 그 하늘과 그 태양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솜씨에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영안이 떠졌는데 삐뚤어지게 떠졌습니다. 태양을 보면 태양신, 달을 보면 달신 산을 보며 산신 합니다. 일본에서는 천왕을 살아있는 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본에는 8백만이나 되는 신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왜 우상을 섬깁니까?. 마음 속의 탐욕 때문에, 마음이 삐뚫어져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권력의 우상이 있습니다. 모두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나옵니다.
로마1장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질 사람들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 같은대서 벗어나서 똑바른 신령한 눈을 가지고 해를 보고 하늘을 보십시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까!. 로마서 11장 35, 36절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다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은 우준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꿀과 송이 꿀보다 답니다.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연의 질서와 자연 속에서 솟아나는 신비한 광채를 통해서 하나님의 무소부지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꿈과 환상과 이상으로 말씀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때론 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또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육신을 입고, 말씀으로 성령께 감화 강동시키시며 새하늘과 새땅을 말씀으로 온 우주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쓰여진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이라, 혹은 홀리 바이블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시편 19편에서는 증거, 교훈, 도, 계명, 규례 등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확실하며 정결해서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성뿔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쓰고, 이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고 살면 하나님의 상이 크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이 왜 하나님을 경배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이 때론 지혜가 부족해서 미혹 받았다 다시 바로 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은 성도들에게 정신차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중상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짓입니다. 도덕적인 길을 걷도록 하는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바른 삶의 길을 걷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세번째로 나는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의 양심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인 양심을 인간 속에 넣어주셨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인격이 형성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형상으로 교제하게 하십니다. 그러한 소중한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마치 갓난 아이와 같이 가식이 없고 벗어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아이의 양심과 같았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가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는 도덕률이 번쩍이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9~20절에 이같이 확실한 양심이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흑백색으로 식별하지 못하는 색맹의 양심이 있는가 하면 모든 색을 구분하는 양심도 있습니다. 양심은 우리 속에서 소리쳐 외칩니다. 이렇게 양심은 인증하고 시인하고 단죄하고 부인합니다. 하지만 소경 같은 양심은 범죄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먹으면 죽는 독약인지 구분을 못합니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양심을 24시간 하나님 앞에 고정 시켜놓고 한점 부끄러움 없는 양심의 길을 걸을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 믿습니다.
또 더럽혀지지 않은 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면 아름다운 축복된 삶을 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도들의 삶이 삼면으로 된 프리즘 같이, 프리즘의 삼면에 나타내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 되길 바라는 것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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