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독교 역사상 유래없는 부흥을 일군 한국 교회. 부흥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의 하나로 ‘새벽기도’를 꼽는다. 본지는 미주한인교회의 부흥을 염원하며 부흥의 바람을 일으킬 새벽 기도회 현장을 찾고, 은혜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열여섯번째로 찾은 교회는 뉴욕수정교회(월~토 5시 30분)다. 황영송 목사가 시무하는 이 교회는 ‘주여 하늘의 문을 열어 주옵소서’를 표어로 하며, ‘사랑이 있는 교회, 섬김이 있는 교회, 사역이 있는 교회, 차세대를 위하는 교회’가 교회 비전이다. 황 목사는 1.5세로 세인트 존스대학을 졸업하고 드루신학교에서 M.Div를 수료했다.

11월 22일 황 목사는 고린도전서 8장 1절부터 3절까지를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황 목사는 ‘나는 복음의 지식을 제대로 사용하는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절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다음을 설교 말씀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지식보다 '사랑’을 앞세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에는 복음을 제대로 깨우친 사람들, 즉 우상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과 우상에 제사를 드리는 것은 복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고린도에 복음을 제대로 아는 이들로 인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잘 아는 이들이 우상의 음식을 먹음으로 믿음이 적은 자들을 고려치 않았고, 우상의 음식을 먹음으로 이들에게 덕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초신자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지 않고 교회의 전통과 하나님을 잘 아는 이들에 의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고린도 교회의 아픈 문제는 오늘의 교회 문제와 동일 선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알았고 그것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복음에 대한 지식을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동일하게 알아야할 것이 복음의 지식입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복음의 참 지식을 몰라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칠일 안식교는 예수가 오심으로 은혜의 법 아래 있다고 했는데 아직도 구약의 법을 쫓고 있기에 문제가 될 소지가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건 때문에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만약 우리가 구약의 법을 따른다면 토요일에 예배 드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한 분이 이제 모든 것을 완성하셨기에 그분 한 분을 모시고 살면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더욱 악한 것은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신앙적 지식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으로 평생을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광대한 분인데, 지식이 좀 있다고 신앙적 체험을 다 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지 못하는 신앙의 무례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독단적인 인물로 변합니다. 바른 성경의 지식이 삶의 척도가 되어야 하는데 독단적으로 변질된다는 겁니다.

2절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고린도 교회 몇몇 교회들이 복음에 대해 안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다 안 것은 아닙니다. 복음의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우리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1차적으로 복음은 성도들에게 주신 것이지만 고린도 교회 성도는 자유를 자신의 권리인 마냥 살아 전혀 덕을 세우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초신자들에게 자랑을 하려고, 성숙함을 나타내려고, 엉뚱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봅니다. 믿음이 약한 이들을 위해 조심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복음의 지식을 하나님을 가리는데 사용했습니다. 내가 주를 더 오래 믿었다는 것 때문에 혹시 신앙이 연약한 자들에게 내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의 지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잘 사용했는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만약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러한 태도가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바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3절에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이웃 사랑에 마음이 있었다면 성급하게 복음의 자유만을 누리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먼저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자로서 우리에게 복음을 통하여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유가 있다 할지라도 나를 통하여 교회가 덕을 봐야하고 본을 봐야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해야함을 믿습니다.

우리가 주를 믿고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곳에는 그러한 모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입술, 말입니다. 참된 지식은 사랑에 의해 통제될 때에 아름다운 결실을 가져옵니다.

오늘의 삶도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영광되게 하고, 모든 것을 감싸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것을 다 한다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