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이러한 권력..정부를 이 땅에 두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1. 창세기 9장에 보면 노아가 홍수를 겪고 나서 방주를 나올 때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면서 6절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권세를 두신 이유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적입니다. 그 형태가 바로 살인한 자에게 내리는 형별로서 사형집행권인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사형제도가 옳으냐 그르냐 논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번 죄를 범하면 그것이 계속 반복된 다는 것입니다. 연쇄살인범 보세요 한번 저지르면 계속 저지르게 됩니다. 그것을 막는 방법은 그러한 자들을 영원히 사회에서 제거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행해지는 올바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국가라는 기관을 통해서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개인들이 보복의 차원에 행해지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권세가 존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 목적은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십계명의 후반 원리가 바로 개인의 재산과 가정생활에 대한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훔치지 말라~~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이러한 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인간 사회는 혼란에 빠져 들게 됩니다.
세 번째 목적은 사람들 간에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1:12절에 보며는 모세가 홀로 모든 것을 심판하다가 Burn out 되자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것과 너희의 무거운 짐과 너희의 다툼을 담당할 수 있으랴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자를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두령을 삼으리라 한즉
조직적인 심판을 할 기구를 만든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송걸기를 얼마나 즐기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바로 공권력만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죄지은 자를 벌함으로서 범죄를 억제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롬 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아무리 악한 정부라도 자체 내에 범죄에 대한 기준이 없는 정부는 없습니다. 김일성이도 도적질한 사람은 처벌을 합니다. 아무리 악한 독재자였던 히틀러도 방화범에게 무죄를 선고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통치기구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자 그럼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이러한 국가에 대한 의무는 무엇이며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어떻게 "국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20절에 보며는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습니까? 네 하늘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땅에서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두 가지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시민권과 바로 이 땅에서의 시민권입니다. 말하자면 이중 국적자입니다. 그러기에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 우리는 주님이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눅20장 22절에 보며는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가이사의 것이 무엇이지요? 네 세금을 말하는 것입니다.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방의 의무이든지, 납세의 의무이던지, 참여의 의무라든지 모든 한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것은 무엇이지요? 우리의 영적인 생명 교회에 대한 헌신과 충성, 성도로서의 의무, 하나님과의 관계 그러나 우선순위는 무엇이지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우선적인 순종의 대상은 하나님이 먼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정부가 부도덕한 일을 시행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위배가 된다면 우리는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에 유신체제에서 많은 사람들을 무고히 핍박하고 국민의 권리를 짓밟았을 때 교회가 우선순위를 잘못 택하는 바람에 오늘날 많은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도 마찬가 문제였습니다. 국가가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막을 때 우리는 저항해야 합니다. 그냥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되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도 산헤드린 공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지 못하게 하자 행전 4장 13절에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순종을 권세보다 우선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세를 하나님이 세우셨어도 우선순위는 바르게 세워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크리스천과 세상 법에 관한 것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1절에 보며는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
우리가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 한다는 것은 법을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왜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합니까? 성경에는 약 4번에 걸쳐서 왜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오늘 본문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 이유는 모든 권위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무질서와 혼돈을 싫어하십니다.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는데 가장 좋은 것이 바로 법입니다. 그래서 모든 법과 질서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누구이든지 주지사가 누구이던지 우리는 그 사람과 의견을 달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자체를 싫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사람의 지위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군인들은 상관을 보면 경례를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유니폼- 계급장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 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단체든지 그곳이 교회이든 가정이든 사회이든 간에 우리는 세워진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법을 지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롬 13: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우리가 미국에 와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경찰이 참 친절 하다는 것입니다. 도로에서 펑크 난 차의 타이어를 갈아 끼워 주지를 않나 개스 떨어지면 주유소까지 태워서 갔다 오지를 않나 참 친절하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은 운전을 하고 가는데 경찰이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그런데 가슴이 덜컥 하는 것입니다. 제가 대화를 같이 가는 분과 대화에 열중하다 보니까 학교에서 스피드가 오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내가 법을 지킬 때 나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던 사람이 엄청난 파워로 나에게 제제를 가하는 것입니다. 고속도로에서 60미일로 달리면 아무런 걱정도 없습니다. 그러나 속도가 70을 넘어서면 왠지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죄의식이 슬그머니 드는 것이지요.
(롬 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우리가 범법을 행할 때 경찰은 하나님의 사지가 되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롬 13: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우리의 깨끗한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법을 준수하고 벌칙을 받지 않으려고 법을 준수하기보다는 우리의 내면의 양심의 평화와 죄의식으로 오는 정죄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IRS에 편지를 보냈답니다. 그 내용인즉 제가 몇 년 전에 세금을 띠어 먹은 적이 있는데 그 후로 죄책감에 잠이 안와서 여기 500불은 보냅니다. 추신: 이후로도 잠이 계속 안 올 경우에는 나머지를 더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양심의 자유를 가지기 위해서는 법을 지켜야 합니다.
네 번째는 베드로전서 2: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권세를 세우실 뿐 아니라 그 권세가 미칠 영역도 정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가이던, 교회이던 , 사회이던 가정이던 간에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우리의 사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법의 정신은 악을 제어 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모든 사람의 공공의 복지를 증진하는데 기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위법을 한다는 것은 바로 전도의 문을 닫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서나 디도서, 베드로서에 공통되는 단어를 꼽으라면 바로 순복이라는 단어입니다.
정부에 순복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바로 마음 자세를 ( Attitude)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조건 적인 순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국가에서 제정한 법이 하나님을 대적한다거나 도덕적인 결함이 있을 경우에 우리는 그 법을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대적을 합니까? 그 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서 오는 결과를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니엘서를 보면 잘 나와 있지 않습니까? 1장에 음식에 관한 것은 지혜를 통해서 잘 소하를 했습니다, 그러나 3장에 우상에게 절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반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친구는 그 법을 내란 왕에게 순복 합니다. 어떻게 순복 하지요~~타는 풀 무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들은 타협치 않고 그 법을 어김으로서 오는 불이익을 고스란히 감당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인 것입니다.
그래서 네 번째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디모데전서 2장 1-3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
네 번째 크리스찬의 책임은 바로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사역이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선한 사역이 우리에게 안정과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 크리스찬의 책임은 세금을 온전히 내는 것입니다.
(롬 13: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롬 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국가는 개인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으로 선을 도모합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도 정부가 "하나님이 일군이 되어 선한 일에 힘쓰는 것"(롬13:6)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위생적인 식수를 공급하는 일, 쓰레기 처리, 학교 교육, 공정한 법집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금을 속여서 적게 내거나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절세를 하는 것과 세금을 회피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지혜고 하나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철칙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금을 훔치지 말고 오히려 세금만큼 더 벌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금 내는 것을 아가와 하기 보다는 그것이 올바로 잘 쓰여지도록 우리가 감시하고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바른 소리를 낼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인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KAVA나 이런 단체에 좋은 크리스찬들이 참여를 해야 합니다.
지금 미국에 5천만 명은 미국 정부를 비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투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참정권을 올바로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위정자들이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게 하고 올바르게 우리가 낸 세금을 집행 하도록 감시를 해야 합니다. 소금은 영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 따라서 입맛이 다르겠지만 짜다는 것은 보통 어느 요리든지 소금이 2% 이상이 되면 느끼는 맛이라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서 영향력을 좌우하는 사람도 2%의 사람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이 합심하면 이 2%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단체든지 직장이든지 어디든지 이 살아있는 2%가 제 역할을 해준다면 이 사회에서 우리는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새교회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10년 후면 우리 새교회에서 이 훼드럴웨이 시장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2세들 가운데 주 하원의원이나 주 상원의원이 나오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주류 사회를 이끌 수 있는 좋은 교회 좋은 Community를 형성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1. 창세기 9장에 보면 노아가 홍수를 겪고 나서 방주를 나올 때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면서 6절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권세를 두신 이유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적입니다. 그 형태가 바로 살인한 자에게 내리는 형별로서 사형집행권인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사형제도가 옳으냐 그르냐 논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번 죄를 범하면 그것이 계속 반복된 다는 것입니다. 연쇄살인범 보세요 한번 저지르면 계속 저지르게 됩니다. 그것을 막는 방법은 그러한 자들을 영원히 사회에서 제거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행해지는 올바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국가라는 기관을 통해서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개인들이 보복의 차원에 행해지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권세가 존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 목적은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십계명의 후반 원리가 바로 개인의 재산과 가정생활에 대한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훔치지 말라~~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이러한 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인간 사회는 혼란에 빠져 들게 됩니다.
세 번째 목적은 사람들 간에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1:12절에 보며는 모세가 홀로 모든 것을 심판하다가 Burn out 되자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것과 너희의 무거운 짐과 너희의 다툼을 담당할 수 있으랴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자를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두령을 삼으리라 한즉
조직적인 심판을 할 기구를 만든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송걸기를 얼마나 즐기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바로 공권력만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죄지은 자를 벌함으로서 범죄를 억제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롬 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아무리 악한 정부라도 자체 내에 범죄에 대한 기준이 없는 정부는 없습니다. 김일성이도 도적질한 사람은 처벌을 합니다. 아무리 악한 독재자였던 히틀러도 방화범에게 무죄를 선고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통치기구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자 그럼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이러한 국가에 대한 의무는 무엇이며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어떻게 "국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20절에 보며는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습니까? 네 하늘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땅에서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두 가지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시민권과 바로 이 땅에서의 시민권입니다. 말하자면 이중 국적자입니다. 그러기에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 우리는 주님이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눅20장 22절에 보며는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가이사의 것이 무엇이지요? 네 세금을 말하는 것입니다.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방의 의무이든지, 납세의 의무이던지, 참여의 의무라든지 모든 한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것은 무엇이지요? 우리의 영적인 생명 교회에 대한 헌신과 충성, 성도로서의 의무, 하나님과의 관계 그러나 우선순위는 무엇이지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우선적인 순종의 대상은 하나님이 먼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정부가 부도덕한 일을 시행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위배가 된다면 우리는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에 유신체제에서 많은 사람들을 무고히 핍박하고 국민의 권리를 짓밟았을 때 교회가 우선순위를 잘못 택하는 바람에 오늘날 많은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도 마찬가 문제였습니다. 국가가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막을 때 우리는 저항해야 합니다. 그냥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되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도 산헤드린 공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지 못하게 하자 행전 4장 13절에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순종을 권세보다 우선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세를 하나님이 세우셨어도 우선순위는 바르게 세워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크리스천과 세상 법에 관한 것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1절에 보며는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
우리가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 한다는 것은 법을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왜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합니까? 성경에는 약 4번에 걸쳐서 왜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오늘 본문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 이유는 모든 권위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무질서와 혼돈을 싫어하십니다.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는데 가장 좋은 것이 바로 법입니다. 그래서 모든 법과 질서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누구이든지 주지사가 누구이던지 우리는 그 사람과 의견을 달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자체를 싫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사람의 지위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군인들은 상관을 보면 경례를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유니폼- 계급장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 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단체든지 그곳이 교회이든 가정이든 사회이든 간에 우리는 세워진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법을 지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롬 13: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우리가 미국에 와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경찰이 참 친절 하다는 것입니다. 도로에서 펑크 난 차의 타이어를 갈아 끼워 주지를 않나 개스 떨어지면 주유소까지 태워서 갔다 오지를 않나 참 친절하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은 운전을 하고 가는데 경찰이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그런데 가슴이 덜컥 하는 것입니다. 제가 대화를 같이 가는 분과 대화에 열중하다 보니까 학교에서 스피드가 오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내가 법을 지킬 때 나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던 사람이 엄청난 파워로 나에게 제제를 가하는 것입니다. 고속도로에서 60미일로 달리면 아무런 걱정도 없습니다. 그러나 속도가 70을 넘어서면 왠지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죄의식이 슬그머니 드는 것이지요.
(롬 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우리가 범법을 행할 때 경찰은 하나님의 사지가 되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롬 13: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우리의 깨끗한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법을 준수하고 벌칙을 받지 않으려고 법을 준수하기보다는 우리의 내면의 양심의 평화와 죄의식으로 오는 정죄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IRS에 편지를 보냈답니다. 그 내용인즉 제가 몇 년 전에 세금을 띠어 먹은 적이 있는데 그 후로 죄책감에 잠이 안와서 여기 500불은 보냅니다. 추신: 이후로도 잠이 계속 안 올 경우에는 나머지를 더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양심의 자유를 가지기 위해서는 법을 지켜야 합니다.
네 번째는 베드로전서 2: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권세를 세우실 뿐 아니라 그 권세가 미칠 영역도 정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가이던, 교회이던 , 사회이던 가정이던 간에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우리의 사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법의 정신은 악을 제어 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모든 사람의 공공의 복지를 증진하는데 기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위법을 한다는 것은 바로 전도의 문을 닫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서나 디도서, 베드로서에 공통되는 단어를 꼽으라면 바로 순복이라는 단어입니다.
정부에 순복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바로 마음 자세를 ( Attitude)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조건 적인 순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국가에서 제정한 법이 하나님을 대적한다거나 도덕적인 결함이 있을 경우에 우리는 그 법을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대적을 합니까? 그 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서 오는 결과를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니엘서를 보면 잘 나와 있지 않습니까? 1장에 음식에 관한 것은 지혜를 통해서 잘 소하를 했습니다, 그러나 3장에 우상에게 절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반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친구는 그 법을 내란 왕에게 순복 합니다. 어떻게 순복 하지요~~타는 풀 무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들은 타협치 않고 그 법을 어김으로서 오는 불이익을 고스란히 감당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인 것입니다.
그래서 네 번째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디모데전서 2장 1-3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
네 번째 크리스찬의 책임은 바로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사역이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선한 사역이 우리에게 안정과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 크리스찬의 책임은 세금을 온전히 내는 것입니다.
(롬 13: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롬 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국가는 개인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으로 선을 도모합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도 정부가 "하나님이 일군이 되어 선한 일에 힘쓰는 것"(롬13:6)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위생적인 식수를 공급하는 일, 쓰레기 처리, 학교 교육, 공정한 법집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금을 속여서 적게 내거나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절세를 하는 것과 세금을 회피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지혜고 하나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철칙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금을 훔치지 말고 오히려 세금만큼 더 벌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금 내는 것을 아가와 하기 보다는 그것이 올바로 잘 쓰여지도록 우리가 감시하고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바른 소리를 낼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인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KAVA나 이런 단체에 좋은 크리스찬들이 참여를 해야 합니다.
지금 미국에 5천만 명은 미국 정부를 비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투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참정권을 올바로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위정자들이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게 하고 올바르게 우리가 낸 세금을 집행 하도록 감시를 해야 합니다. 소금은 영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 따라서 입맛이 다르겠지만 짜다는 것은 보통 어느 요리든지 소금이 2% 이상이 되면 느끼는 맛이라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서 영향력을 좌우하는 사람도 2%의 사람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이 합심하면 이 2%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단체든지 직장이든지 어디든지 이 살아있는 2%가 제 역할을 해준다면 이 사회에서 우리는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새교회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10년 후면 우리 새교회에서 이 훼드럴웨이 시장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2세들 가운데 주 하원의원이나 주 상원의원이 나오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주류 사회를 이끌 수 있는 좋은 교회 좋은 Community를 형성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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