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문화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갈등의 대부분은 보수와 진보 세력 사이에서 일어난다. 또한 이것은 남북 대치 국면의 한반도 특성상, 흔히 ‘우’와 ‘좌’의 정치적 입장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한국교회 역시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논란이 첨예한 사회적 현안에서 한국교회는 자주 양분된다. 사학법 개정과 북한인권 등에서 그랬고 최근에는 소위 4대강과 한상렬 목사 문제가 구설수에 올랐다. 교회 내부적으론 이른바 ‘사회참여’ 여부가 두 그룹을 나누는 기준이다.
신학계에도 이 경계가 존재한다. 보수·복음주의 신학과 진보·자유주의 신학이 이 경계 사이에서 마주하고 있다. 이것은 각 교단의 신학적 배경으로 작용하며 모든 교회 활동에 고유의 ‘색깔’을 부여한다. 외부로 표출된 교회의 목소리가 지류(支流)라면 그 수원(水源)은 이 두 얼굴의 신학이다.
‘한국신학의 보수와 진보’는 각 진영에 속한 신학자들에게 그 신학의 정체성을 묻는 기획 인터뷰다. 각 인터뷰는 서로에게 ‘지피’(知彼)이자 ‘지기’(知己)가 될 것이다. 먼저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박형용 박사에게 보수신학을 물었다. 그는 박윤선, 김명혁 목사 등과 함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한 대표적 보수신학자다. 개념상 다소 차이가 있으나 보수·복음주의 신학은 보수신학으로, 진보·자유주의 신학은 진보신학으로 통칭했다.
“보수신학엔 확고한 규범 있어… 결코 폐쇄적이지 않다”
-보수신학의 개념부터 알고 싶다.
“넓은 개념이다. 성경을 보는 관점, 구원에 대한 해석 등 다양한 면에서 그 특징을 설명할 수 있겠다. 일단 보수라는 말 자체가 그렇듯, 전통적으로 이것을 지지하는 신학자들은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또한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는 입장이며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났음을 받아들인다. 이런 교리들을 지키자는 것이 바로 보수신학, 보수주의다.”
-진보신학과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하나님 중심적이냐 사람 중심적이냐다. 보수신학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셨고 구원과 죄 등 모든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께 달렸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을 창조하셨다는 게 이 사고의 전제다. 그러나 진보신학은 그 이면에 인본주의가 개입된다. 많은 경우에서 사람의 판단이 앞서는 경우를 본다.”
-보수의 다른 말인 ‘수구’(守舊)에는 종종 부정적 이미지가 따른다.
“기독교에는 성경이라는 변하지 않는 규범이 존재한다. 이것은 항상 그대로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규범이 흔들리면 그것은 이미 규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신학은 이 규범을 지키고자 한다. 그래서 이론과 교리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때론 약점이 되기도 한다. 유연하지 못하고 답답하다는 게 보수 비판에 있어 주를 이룬다. 한편에선 이론과 교리를 고수하면서도 실상 그것을 어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수구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들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물론 진보신학에도 약점이 있다. 생활과 상황에 치우친 나머지 교리와 원칙에 대한 민감함이 덜하다. 그렇다고 보수와 진보가 같은 크기의 약점을 갖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약점을 보완할 여지에 있어 그나마 보수가 진보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본다. 확고한 규범이 있기 때문이다. 흔들려도 규범이 있기에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 진보는 개별적 상황에선 보수보다 유연할 수 있으나 자칫 넘지 말하야 할 선까지 넘을 소지가 있다.”
-보수신학은 창조적 발상에 있어 다소 폐쇄적이지 않은가.
“보수신학자, 아니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고백한다. 인류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 존재하면서 지금까지 그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그 과정을 보면 가히 눈이 부실 정도다. 모든 것이 창조적 발상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파괴되었나? 아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보수신학이 창조적 발상에 폐쇄적이라는 생각도 이와 같은 논리에서 반박이 가능하다. 규범과 원칙 안에서 얼마든지 창조적인 생각들이 논의될 수 있다. 성경은 창조적인 것들로 넘쳐난다. 사실 이런 비판의 이면에는 모든 상황에서 규범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행태가 숨어있다.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고수하려는 입장에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짓는 보수신학의 그것이 창조적 발상을 억제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보수신학을 폐쇄적이라고 하는 건, 유독 민감한 주제에 있어 그 논의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가령 종말론과 같은.
“그렇지 않다. 성경에는, 특히 데살로니가 전서 4장에는 구체적인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뿐만 아니라 매장마다 예수 강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결론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날을 모르는게 맞다. 만약 누군가 안다면 그의 삶이 얼마나 흐트러지겠나. 내가 알았다면 지금 이렇게 인터뷰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이 땅에서 제대로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그 날을 알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보수신학은 종말에 벌어질 현상에 대해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진보와 손 잡을 수도, 등 돌릴 수도 있다”
-보수신학이 교단의 정치적 입장과 맞물려 그 정파성을 드러낼 때도 있다.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비근한 예로 기독교 대통령이 뽑히면 그의 국정운영에 대한 교단들의 평가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으면 될 수 없는 직책이기에 대통령이 속한 교단이 그를 더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의 대부분 교회는 장로교이고, 이들은 보수신학의 일종인 개혁신학을 지지한다. 그러나 예배라든지 기타 교회 활동에는 오순절적 요소가 많다. 개혁신학이 외면 당한 것인가.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대표되는 오순절적 영향이 한국교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장로교회가 개혁신학을 외면한 것으로 볼 순 없다. 개혁신학의 부족한 부분을 오순절 교회가 채워줬다고 보는 게 옳다. 개혁신학이 교회의 예배 등에서 거룩성과 예전적 요소를 강조하다보니 신앙인들의 감정을 살피는 것에 소홀했다. 이것은 개혁신학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일면, 연약한 인간의 부족함 때문이다. 어느 시대건 한 교리적인 입장이 신앙인들의 삶에 접목돼 크게 영향을 미치다가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그 약점이 드러나면 그것을 보완하는 새로운 시도가 나타난다.”
-개혁신학을 말할 때 칼빈을 빼놓을 수 없다. 마치 예수를 따르듯 개혁주의자들이 맹목적으로 칼빈만을 좇는다는 비판도 있다.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 아니다. 칼빈도 사람이기에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칼빈이 성경의 진리를 가장 잘 설명했기에 그를 따르는 것이다.”
-보수신학을 한 것에 후회를 느껴본 적은 없나.
“나는 보수신학, 그 중에서도 개혁신학을 따르는 사람들 중 하나다. 개혁신학이 성경의 교훈을 제대로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죄인의 실존과 구원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이것을 깨닫고 그 죄적 삶에서의 구원을 고민하다 만난 학문이 바로 개혁신학이다. 이것을 공부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최고의 예우를 해주셨다는 걸 알았다. 이걸 알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하나님의 사랑에 부합하지 못하는 내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진보신학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교집합의 영역을 넓힐 수 있나.
“규범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손을 잡을 수도, 등을 돌릴 수도 있다. 부활이 없다는 사람, 동정녀가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느냐는 사람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박형용 박사는
서경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웨스터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주도했던 보수 신약학자로 이후 이 학교 총장과 한국복음주의신학대학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08년 지금의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했다. 92년부터 3년간 서울 문정동 예원교회를 담임하면서 목회 경험을 쌓기도 했다.
한국교회 역시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논란이 첨예한 사회적 현안에서 한국교회는 자주 양분된다. 사학법 개정과 북한인권 등에서 그랬고 최근에는 소위 4대강과 한상렬 목사 문제가 구설수에 올랐다. 교회 내부적으론 이른바 ‘사회참여’ 여부가 두 그룹을 나누는 기준이다.
신학계에도 이 경계가 존재한다. 보수·복음주의 신학과 진보·자유주의 신학이 이 경계 사이에서 마주하고 있다. 이것은 각 교단의 신학적 배경으로 작용하며 모든 교회 활동에 고유의 ‘색깔’을 부여한다. 외부로 표출된 교회의 목소리가 지류(支流)라면 그 수원(水源)은 이 두 얼굴의 신학이다.
‘한국신학의 보수와 진보’는 각 진영에 속한 신학자들에게 그 신학의 정체성을 묻는 기획 인터뷰다. 각 인터뷰는 서로에게 ‘지피’(知彼)이자 ‘지기’(知己)가 될 것이다. 먼저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박형용 박사에게 보수신학을 물었다. 그는 박윤선, 김명혁 목사 등과 함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한 대표적 보수신학자다. 개념상 다소 차이가 있으나 보수·복음주의 신학은 보수신학으로, 진보·자유주의 신학은 진보신학으로 통칭했다.
“보수신학엔 확고한 규범 있어… 결코 폐쇄적이지 않다”
-보수신학의 개념부터 알고 싶다.
“넓은 개념이다. 성경을 보는 관점, 구원에 대한 해석 등 다양한 면에서 그 특징을 설명할 수 있겠다. 일단 보수라는 말 자체가 그렇듯, 전통적으로 이것을 지지하는 신학자들은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또한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는 입장이며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났음을 받아들인다. 이런 교리들을 지키자는 것이 바로 보수신학, 보수주의다.”
-진보신학과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하나님 중심적이냐 사람 중심적이냐다. 보수신학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셨고 구원과 죄 등 모든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께 달렸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을 창조하셨다는 게 이 사고의 전제다. 그러나 진보신학은 그 이면에 인본주의가 개입된다. 많은 경우에서 사람의 판단이 앞서는 경우를 본다.”
-보수의 다른 말인 ‘수구’(守舊)에는 종종 부정적 이미지가 따른다.
“기독교에는 성경이라는 변하지 않는 규범이 존재한다. 이것은 항상 그대로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규범이 흔들리면 그것은 이미 규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신학은 이 규범을 지키고자 한다. 그래서 이론과 교리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때론 약점이 되기도 한다. 유연하지 못하고 답답하다는 게 보수 비판에 있어 주를 이룬다. 한편에선 이론과 교리를 고수하면서도 실상 그것을 어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수구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들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물론 진보신학에도 약점이 있다. 생활과 상황에 치우친 나머지 교리와 원칙에 대한 민감함이 덜하다. 그렇다고 보수와 진보가 같은 크기의 약점을 갖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약점을 보완할 여지에 있어 그나마 보수가 진보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본다. 확고한 규범이 있기 때문이다. 흔들려도 규범이 있기에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 진보는 개별적 상황에선 보수보다 유연할 수 있으나 자칫 넘지 말하야 할 선까지 넘을 소지가 있다.”
-보수신학은 창조적 발상에 있어 다소 폐쇄적이지 않은가.
“보수신학자, 아니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고백한다. 인류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 존재하면서 지금까지 그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그 과정을 보면 가히 눈이 부실 정도다. 모든 것이 창조적 발상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파괴되었나? 아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보수신학이 창조적 발상에 폐쇄적이라는 생각도 이와 같은 논리에서 반박이 가능하다. 규범과 원칙 안에서 얼마든지 창조적인 생각들이 논의될 수 있다. 성경은 창조적인 것들로 넘쳐난다. 사실 이런 비판의 이면에는 모든 상황에서 규범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행태가 숨어있다.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고수하려는 입장에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짓는 보수신학의 그것이 창조적 발상을 억제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보수신학을 폐쇄적이라고 하는 건, 유독 민감한 주제에 있어 그 논의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가령 종말론과 같은.
“그렇지 않다. 성경에는, 특히 데살로니가 전서 4장에는 구체적인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뿐만 아니라 매장마다 예수 강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결론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날을 모르는게 맞다. 만약 누군가 안다면 그의 삶이 얼마나 흐트러지겠나. 내가 알았다면 지금 이렇게 인터뷰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이 땅에서 제대로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그 날을 알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보수신학은 종말에 벌어질 현상에 대해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는 보수신학을 선택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것이 죄인의 실존과 구원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송경호 기자 | |
-보수신학이 교단의 정치적 입장과 맞물려 그 정파성을 드러낼 때도 있다.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비근한 예로 기독교 대통령이 뽑히면 그의 국정운영에 대한 교단들의 평가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으면 될 수 없는 직책이기에 대통령이 속한 교단이 그를 더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의 대부분 교회는 장로교이고, 이들은 보수신학의 일종인 개혁신학을 지지한다. 그러나 예배라든지 기타 교회 활동에는 오순절적 요소가 많다. 개혁신학이 외면 당한 것인가.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대표되는 오순절적 영향이 한국교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장로교회가 개혁신학을 외면한 것으로 볼 순 없다. 개혁신학의 부족한 부분을 오순절 교회가 채워줬다고 보는 게 옳다. 개혁신학이 교회의 예배 등에서 거룩성과 예전적 요소를 강조하다보니 신앙인들의 감정을 살피는 것에 소홀했다. 이것은 개혁신학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일면, 연약한 인간의 부족함 때문이다. 어느 시대건 한 교리적인 입장이 신앙인들의 삶에 접목돼 크게 영향을 미치다가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그 약점이 드러나면 그것을 보완하는 새로운 시도가 나타난다.”
-개혁신학을 말할 때 칼빈을 빼놓을 수 없다. 마치 예수를 따르듯 개혁주의자들이 맹목적으로 칼빈만을 좇는다는 비판도 있다.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 아니다. 칼빈도 사람이기에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칼빈이 성경의 진리를 가장 잘 설명했기에 그를 따르는 것이다.”
-보수신학을 한 것에 후회를 느껴본 적은 없나.
“나는 보수신학, 그 중에서도 개혁신학을 따르는 사람들 중 하나다. 개혁신학이 성경의 교훈을 제대로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죄인의 실존과 구원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이것을 깨닫고 그 죄적 삶에서의 구원을 고민하다 만난 학문이 바로 개혁신학이다. 이것을 공부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최고의 예우를 해주셨다는 걸 알았다. 이걸 알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하나님의 사랑에 부합하지 못하는 내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진보신학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교집합의 영역을 넓힐 수 있나.
“규범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손을 잡을 수도, 등을 돌릴 수도 있다. 부활이 없다는 사람, 동정녀가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느냐는 사람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박형용 박사는
서경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웨스터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주도했던 보수 신약학자로 이후 이 학교 총장과 한국복음주의신학대학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08년 지금의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했다. 92년부터 3년간 서울 문정동 예원교회를 담임하면서 목회 경험을 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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