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어떻게 하면 귀신을 쫓을 수 있나요? 귀신을 쫓아도 안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영적인 현상이 일어날 때 성령의 역사와 귀신이 하는 일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A) 제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거의 30년 쯤 전의 일입니다. 제가 신학생으로서 섬기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일 새벽에 꿈을 꿨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낮예배가 끝나고 난 후 교회 좌석을 정돈하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예배실에서 다 나가고 난 후였는데, 한 여자 성도님 한 분이 좌석에 앉아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다가가서 왜 안가시고 자리에 계속 앉아계시냐고 여쭸습니다. 그 분은 배를 웅켜 잡고서는 고통스런 얼굴로 제게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시는 게 아닙니까. 저는 그 분을 모시고 또 몇 분의 여자 성도님들과 함께 아래층의 기도실로 내려갔습니다. 잠시 찬송을 부른 후 그 성도님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그분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헐떡이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러운 영(귀신)이 떠날 것을 명했습니다. 그러자 힘없이 옆으로 쓰러지면서 마치 죽은 듯이 들어 누웠습니다. 찬송을 한두 절 부르고 난 후 일어나시라고 했더니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아팠던 배가 하나도 아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꿈이었습니다.
저는 잠에서 깨어 이상한 꿈도 다 있다 하고 생각하면서 주일 아침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그날 낮예배가 끝나고 조용해진 예배실을 제가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런! 꿈에서 보았던 그 성도님이 바로 그 자리에 앉아계신 것이 아닙니까? 저는 순간 머리털이 쭈삣 솟는 듯 했습니다만, 침착하게 다가가서 왜 안 가시냐고 물었고, 그 성도님은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제게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후의 일은 꿈에서 본 그대로의 일이 전개되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저의 삶 속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저는 아무에게나 더러운 영을 축출하는 기도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미리 감동을 주시거나 지시를 하실 때에는 반드시 이를 순종합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 곧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는 표적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28
마찬가지로 사도들이 사역하던 초대교회 때는 더러운 영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출하는 성령의 사역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더러운 영들이 쫓겨나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중요한 표적중의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기사와 이적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 있게 전파되어갔습니다. 오늘날도 더러운 영을 축출하는 사역은 선교나 전도 현장은 물론 교회 내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사역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무조건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고 해서 더러운 영이 다 떠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도 받는 사람이 더러운 영을 끌어안고 있을 때는 더러운 영이 떠나질 않습니다. 더러운 영을 끌어안고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냐구요? 그것은 예를 들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을 때, 죄악에 대한 집착이나 연민 등에 빠져있을 때, 이런 경우들은 더러운 영을 끌어안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이런 문제를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의 보혈로 정결케 됨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쉽게 더러운 영이 축출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겉으로만 봐서는 성령의 역사와 더러운 영의 역사를 구분하기 힘듭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은 오른 쪽 귀에 음성을 주시고 악령은 왼 쪽 귀에 속삭인다고 말하는데, 이런 말은 전혀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는 헛된 말입니다. 그러면 성령과 귀신의 영향은 어떻게 다를까요? 이에 대한 분별을 함에 있어서 김영한 교수는 그의 글을 통해 유익한 자료를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영적 사역을 하는 자의 가르침이 성경 말씀과 전통 교리에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언제나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증거하지만, 사단의 영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셋째, 성령의 역사는 교회를 세우지만 사단의 역사는 교회를 파괴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받는 자는 교회에 덕을 세우고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게 됩니다.
넷째, 성령의 능력과 마술(魔術)의 차이는 그것의 목적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성령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나타나지만, 마귀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다섯째, 성령의 능력은 새사람이 되게 하지만 사단의 능력은 불법의 종으로 만듭니다.
여섯째, 도덕적 영적 열매를 보고 그 영적 출처를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선한 열매를 맺고 미혹의 영은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일곱째, 성령의 역사는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 체계를 갖지만, 사단의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신자의 인격을 변화시켜 자기 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합니다(김영한, “성령의 역사인가, 사단의 미혹인가”).
이상과 같은 김 교수의 분별법은 영적 현장에서 나타나는 현상만을 보고 표적의 진정성을 판단하기는 곤란하다는 데 강조점이 있습니다. 오히려 영적인 능력을 체험한 장의 삶에 나타나는 결과와 열매를 보아야 제대로 분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악령의 역사는 언제나 복음과 교회를 방해하지만,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교회에 덕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A) 제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거의 30년 쯤 전의 일입니다. 제가 신학생으로서 섬기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일 새벽에 꿈을 꿨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낮예배가 끝나고 난 후 교회 좌석을 정돈하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예배실에서 다 나가고 난 후였는데, 한 여자 성도님 한 분이 좌석에 앉아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다가가서 왜 안가시고 자리에 계속 앉아계시냐고 여쭸습니다. 그 분은 배를 웅켜 잡고서는 고통스런 얼굴로 제게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시는 게 아닙니까. 저는 그 분을 모시고 또 몇 분의 여자 성도님들과 함께 아래층의 기도실로 내려갔습니다. 잠시 찬송을 부른 후 그 성도님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그분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헐떡이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러운 영(귀신)이 떠날 것을 명했습니다. 그러자 힘없이 옆으로 쓰러지면서 마치 죽은 듯이 들어 누웠습니다. 찬송을 한두 절 부르고 난 후 일어나시라고 했더니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아팠던 배가 하나도 아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꿈이었습니다.
저는 잠에서 깨어 이상한 꿈도 다 있다 하고 생각하면서 주일 아침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그날 낮예배가 끝나고 조용해진 예배실을 제가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런! 꿈에서 보았던 그 성도님이 바로 그 자리에 앉아계신 것이 아닙니까? 저는 순간 머리털이 쭈삣 솟는 듯 했습니다만, 침착하게 다가가서 왜 안 가시냐고 물었고, 그 성도님은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제게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후의 일은 꿈에서 본 그대로의 일이 전개되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저의 삶 속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저는 아무에게나 더러운 영을 축출하는 기도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미리 감동을 주시거나 지시를 하실 때에는 반드시 이를 순종합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 곧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는 표적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28
마찬가지로 사도들이 사역하던 초대교회 때는 더러운 영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출하는 성령의 사역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더러운 영들이 쫓겨나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중요한 표적중의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기사와 이적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 있게 전파되어갔습니다. 오늘날도 더러운 영을 축출하는 사역은 선교나 전도 현장은 물론 교회 내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사역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무조건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고 해서 더러운 영이 다 떠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도 받는 사람이 더러운 영을 끌어안고 있을 때는 더러운 영이 떠나질 않습니다. 더러운 영을 끌어안고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냐구요? 그것은 예를 들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을 때, 죄악에 대한 집착이나 연민 등에 빠져있을 때, 이런 경우들은 더러운 영을 끌어안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이런 문제를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의 보혈로 정결케 됨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쉽게 더러운 영이 축출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겉으로만 봐서는 성령의 역사와 더러운 영의 역사를 구분하기 힘듭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은 오른 쪽 귀에 음성을 주시고 악령은 왼 쪽 귀에 속삭인다고 말하는데, 이런 말은 전혀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는 헛된 말입니다. 그러면 성령과 귀신의 영향은 어떻게 다를까요? 이에 대한 분별을 함에 있어서 김영한 교수는 그의 글을 통해 유익한 자료를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영적 사역을 하는 자의 가르침이 성경 말씀과 전통 교리에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언제나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증거하지만, 사단의 영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셋째, 성령의 역사는 교회를 세우지만 사단의 역사는 교회를 파괴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받는 자는 교회에 덕을 세우고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게 됩니다.
넷째, 성령의 능력과 마술(魔術)의 차이는 그것의 목적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성령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나타나지만, 마귀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다섯째, 성령의 능력은 새사람이 되게 하지만 사단의 능력은 불법의 종으로 만듭니다.
여섯째, 도덕적 영적 열매를 보고 그 영적 출처를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선한 열매를 맺고 미혹의 영은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일곱째, 성령의 역사는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 체계를 갖지만, 사단의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신자의 인격을 변화시켜 자기 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합니다(김영한, “성령의 역사인가, 사단의 미혹인가”).
이상과 같은 김 교수의 분별법은 영적 현장에서 나타나는 현상만을 보고 표적의 진정성을 판단하기는 곤란하다는 데 강조점이 있습니다. 오히려 영적인 능력을 체험한 장의 삶에 나타나는 결과와 열매를 보아야 제대로 분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악령의 역사는 언제나 복음과 교회를 방해하지만,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교회에 덕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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