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솔티가 대표로 있는 미국의 북한자유연합(North Korea Freedom Coalition)은 로버트 박에 대한 인도적인 배려와 선처를 유엔에 파견된 북한 신선호 대사와 평양에 주재한 스웨덴 Mats Foyer 대사, 그리고 국제적십자위원회 Dr. Jakob Kellenberger 위원장에게 요청했습니다. 캐나다의 ‘HRNK Canada 북한인권위원회(The Council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도 캐나다 정부에 북한인권 운동가 로버트 박의 안전을 위하여 북한 정부에 신속하고도 진지하게 개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로버트 박 선교사의 마음 깊이에 있는 죽음보다 강한 순수한 동포 사랑이 한 가지를 기리어 한국에서도 로버트 박 선교사의 생명과 인권을 지켜주는 행동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제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는 주로 여기 서울에서 활동했습니다. 자신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의 하나로 여기며 그들을 돌보면서 지원하고 기도해 주며 치유하고 사랑했습니다. 자신은 북한 사람들에게서 진실한 사랑을 배웠고 그분들에게서 은혜를 받았으며 자신이 치유되었다고,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진심으로 자주 말하곤 했습니다. 북한 사람들 집에 방문하면 참으로 편안해 하고 행복해 했습니다. 또 여기 노숙자들과 길에서 구걸하시는 연약한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돌아보고 아낌없이 다 주며 사랑한 선교사입니다.

한국 교회들과 크고 작은 중보기도회에서 한국인의 회개 메시지를 전하고 북한해방 기도운동을 해왔습니다. 중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북한 사람들을 만나 눈물로 하나님 사랑을 전하고 기도를 가르치고 소망을 심어주고 세례를 베푼 선교사입니다. 북한 사람들의 그 거친 손에 직접 식량비와 의약품을 쥐어주며 더 주지 못하여 늘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북한 내에 있는 가장 연약한 자, 이 지구상에 가장 작은 자에게 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러하였기에 그가 얼마나 열망하여 그 땅을 밟았을지는 상상이 됩니다.

그는 심판의 검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검은 영적 전투를 싸우는 성령의 검, 예수 이름의 능력, 하나님 말씀이었으며 이것은 악한 영들과 싸우는 검이었습니다(에베소서 6:12-17).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는 성경 말씀이 그의 설교의 출발이었습니다. 일절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나 미움이나 심판이 아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전했고, 그랬기에 심지어 김정일의 회개를 위해,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점 때문에 탈북자 지도자들의 오해와 불만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는 김정일과 북한 지도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해 혼신을 다하여 예수 이름으로 파쇄하는 기도를 해온 사람입니다. 사력을 다하여 온 몸의 진을 빼며 온 몸을 흠뻑 적셔가며 심장을 터트리며 자신의 온 존재를 쏟아 부어 북한기도 인도를 해온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24시간 기도자였습니다. 길에서나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나 일하다가도 전화로도 북한해방 기도와 탈북민 가족들 기도를 하지 않고는 존재 이유가 없었던 그였습니다. 자기 친구들의 북한가족 기도제목이 빼곡히 적힌 리스트를 다 외우고 다녔습니다. 찢어지고 병들고 굶주리며 혹은 감옥에 갇힌 그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는 기도는 어디서나 영혼의 눈물을 동반하는 깊이였습니다. 나의 가족들 기도보다 더 깊이, 자신의 가족 기도보다 더 깊이, 그리도 깊이 그들의 이별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는 자였습니다. 북한 사람들의 심연에 남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과 고난의 기억들에 동참하며 치유하는 자였습니다.

치유자로서 그의 치유기도는 특별했습니다. 하늘의 사랑을 쏟아내는 놀라운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외모와 나이, 지위와 정상·비정상이 보이지 않는 그 영혼 사랑 앞에 녹아내리고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상에 없는 존귀한 언어로 상대방을 높여주고 축복해 주어 그의 존엄성을 회복해 주는 그런 류의 것이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동냥하는 사람이 칸 안으로 들어오면 어느새 먼저 알아보고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면서 가진 대로 바구니에 공손히 돈을 넣어줍니다. 지하철 안에서 동냥하는 사람을 지나치기도, 구제하기도 하는 일이 일상인 나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천상의 소리였습니다. 주위를 갑자기 빛으로 채우는 겸손함과 따스함과 존중이 배어든 영혼의 소리였습니다.

그의 금식 행진은 미국과 영국, 한국에서 그를 아는 지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나는 마지막에 이원론적 신앙을 설명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회개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의 금식은 사람이 결심하여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굶주림과 아사의 행진이 그로 하여금 맘놓고 먹지도 못하게 만들만큼 그의 긍휼의 깊이는 남달랐습니다. 우리는 그의 극단적인 금식 행진을 놓고 그 긍휼의 깊이를 이해하고 동참하기보다, 우리의 육신적인 안타까움의 표현으로 그를 더 힘들게 만들기만 했습니다.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입는 것에도 좋은 옷이나 더 따뜻한 옷은 자신을 위해서는 챙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양말조차 궁색했습니다. 이 생활은 미국에서부터 그가 거듭난(Born-again) 이후부터 그래왔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된 이후 그는 넘치는 기쁨으로 필요한 자, 연약한 자들에게 자신의 가진 것을 주고 또 주어온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한 노숙자 선교와 장애인 선교와 멕시코 빈민선교는 그에게 기쁨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북한선교를 위해 자신을 준비시키신 손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친구들이 챙겨주는 옷조차 그대로 탈북민들과 필요한 이들에게로 주어졌습니다.

북한인권 집회나 북한기도회를 하러 거리에 나가서 입은 옷이며 빵이며 김밥이며 음료수며 양말이며 이런 필요를 노숙자들에게 나누어주고 기도해 주는 것은 그에게 당연했고 자연스러웠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는 것보다도 더 사랑스럽게 겸손히 그들을 섬기며 그들의 존재를 높여주고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이웃사랑이 문자 그대로 가장 병들고 빈약한 자들에게와 되갚을 길 없는 자들에게 부어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붙인 별명이 ‘작은 예수’였습니다. 이렇게 사는 청년 1백명이 서울의 거리를 다닌다면 인터넷에서 맹활약하는 안티기독교 세력은 없어질 것이라고… 좌와 우가 다 동의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사회통합의 모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된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요한일서 3:18)’

그는 한국교회에 까마득한 옛 기억으로 희미해진 복음서의 예수님 말씀과 서신서의 사랑에의 권면을 그대로 21세기 서울 한가운데서 생생하게 몸으로 살다가 이 예수 사랑을 두만강 건너 북한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확신컨대 그를 조사하는 북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 이 사랑의 원자탄을 사용하사 당신의 뜻 이루소서. 그의 기도처럼 당신의 이름만이 높아지며 당신만이 영광 받으소서.”

“내 소원은 단 하나, 북한 동포들이 해방되는 것 보는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나는 인생에 다른 아무런 야망이나 개인적인 목적이 없습니다. 그 일에 힘써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그의 애절한 간청이 내 가슴에 메아리쳐 옵니다. 그는 한국인들이, 외칠 수 없는 동포를 위하여 외쳐주며 동포의 고통을 끝내기 위하여 일어나 행동해 주기를 북한에서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의 소원을 함께 이루자고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2010년 1월 3일, 강영숙(자유와 생명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