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인간의 노동은 물론 자연과 생명, 생태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고 하셨는데, 칼빈이 자연과 생태에 말한 몇 가지 자료만을 가지고 그가 그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까?”

“제네바에서 칼빈은 무수한 생명을 죽였습니다. 신앙인으로서 그의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나요?”

“오늘날 한국교회의 사회참여에 있어서 특정 이들과의 정파적 연대가 교회의 대사회적 공신력의 추락으로 직결되는 원인 중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특정 이들과의 정파적 연대를 해선 안 된다는 말인데,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학생들의 질문은 거침이 없었다. 19일 오전 한국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장영일 박사)에서는 ‘한국교회와 사회적 성화’를 주제로 6개 신학대학원이 참석한 학술제(NCCK 선교훈련원 주최)가 열렸다. 장신대를 비롯해 감신대, 한신대, 구세군사관학교, 성공회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학생들은 교수들의 발제가 끝나자 질문들을 쏟아냈다. 이날 발제는 장신대 최윤배 교수(조직신학, 한국칼빈학회 회장)와 장신대 임성빈 교수(기독교윤리, 기윤실 공동대표)가 맡았다.

▲최윤배 교수는 이날 발제를 통해 칼빈의 사회참여에 대해 ‘중간의 길’ 영성을 강조했다.
먼저 최 교수는 ‘칼빈의 사회적 성화-영성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사회 참여와 관련한 칼빈의 영성을 분석했다.

최 교수는 칼빈의 영성을 ‘중간의 길’(via media)을 통해 ‘하나님의 질서’(ordo Dei)와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영성으로 정의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구현과 관련해 칼빈은 당시 크게 두 진영과 논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칼빈과 재세례파, 그리고 칼빈과 로마 가톨릭과의 논쟁을 통해 칼빈의 사회적 영성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최 교수는 “재세례파를 비롯한 열광주의자들은 성령의 이름으로 교회의 직제나 정부의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영성주의적 과격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려고 했다”며 “여기에 반대한 칼빈은 성령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도구와 수단을 사용하실 수 있다고 변증했다”고 했다. 그리고 “칼빈은 그 도구와 수단의 대표적인 것으로 ‘교회와 국가’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로마 가톨릭은 성령을 배제하고 교회나 직제 자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코자 했다”며 “이에 칼빈은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측면과 종말론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 이 두 진영 사이에서 칼빈은 중간의 길의 방법을 선택했다”고 했다.

따라서 ‘중간의 길’은 “‘우선 사람에게는 이중의 통치가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영적인 통치로서 여기서는 양심이 경건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통치로서 여기서는 인간으로서 또 시민으로서 사람 사이에 유지해야 할 여러가지 의무를 배운다’는 칼빈의 말로 요약된다”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최 교수의 발제가 끝난 후 참석한 신대원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제네바를 통치하며 칼빈이 행했던 폭력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비롯해 칼빈을 마치 예수화하는 몇몇 칼빈주의자들의 행태에 대해, 칼빈은 국가에 대한 비판과 협력을 어떻게 조율했는지에 대해, 5백년 전 칼빈의 영성이 현대에도 여전히 동일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질문들은 학생들의 진지한 신학적 고민들을 담고 있었다.

칼빈학회 회장이기도 한 최 교수는 “칼빈이 살던 시대와 지금을 단순 비교할 순 없다. 당시에는 이단에 대한 처벌이 훨씬 가혹했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오히려 칼빈은 이단에게 다가가 회개를 촉구하는 등 관대함을 보이기도 했다”, “칼빈은 중간의 길이라는 영성을 통해 국가 정치에 관여했으나 때로 국가가 기독교 가치에서 벗어난 길을 택했을 땐 당시의 공무원 계층을 통해 그것을 제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등 성심껏 답변하며 칼빈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도왔다.

임성빈 교수의 논문 제목은 ‘한국교회의 신뢰, 현황과 전망-사회적 성화의 과제를 중심으로’였다. 임 교수는 한국교회가 대사회적 신뢰를 잃어버린 이 시점에서 신뢰의 회복을 위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찰했다.

▲임성빈 교수는 “한국교회가 윤리적 탁월성을 확보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며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지금 한국교회는 민족주의적이라는 도전, 반지성주의적이라는 도전, 반문화적이라는 도전 아래 있다”면서 “한국교회가 이러한 오명을 벗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윤리적 탁월성의 확보와 만인제사장설에 입각한 신학정립과 실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결국 한국교회의 신뢰 회복과 증진은 신앙인의 신앙인다움과 교회의 교회다움으로부터 시작되며 마무리되는 과제이다. 물론 더욱 지혜로운 책임의 수행을 위해 정확한 사회분석이 필수적이다”며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신앙인들의 만인제사장으로서의 사역 활성화와 시민사회 안의 교회로서의 자각을 필요로 한다”고 한국교회의 사회적 성화에 대한 그의 입장을 정리했다.

임 교수의 발제 후에도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질문을 통해 토론의 장을 열었다. 그 중에는 사회 이슈에 관한 교회의 정당적 입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비롯해 교회가 반드시 대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만 하는지, 교회와 사회와의 소통이 자칫 기독교의 절대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에 임 교수는 “교회가 신뢰 회복에 최종 목적을 둬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이고 나아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일이다. 사회로부터의 신뢰는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가 바로 섰을 때 따라오는 것이다. 다만 교회가 사회에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선 이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교회가 정파적 연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방적 연대는 자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와 정파 간 연대는 각 이슈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사회는 그러한 교회의 태도에 신뢰를 보낼 것이다”는 등의 답변을 이어가며 학생들과의 깊이 있는 대화를 가졌다.

이날 학술제에 참석한 감리교신학대학교 김홍기 총장은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가진 신학대학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공통된 주제로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뜻깊은 일”이라며 “이번엔 장신대 교수님들이 발제했지만 다음 번엔 감신대, 성공회대, 연신원 등 다양한 신학적 스펙트럼을 가진 대학의 교수님들이 발제를 맡아 한국 신학의 발전을 이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처음으로 열린 학술제는 앞으로 매년 열릴 계획이며 학술제 후에는 체육대회를 개최해 신학대학원간 화합과 일치를 도모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