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말씀 11: 두날개 예배와 선교(강사: 김성곤 목사)
본문: 요한복음 4:23- 24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는 영감이 넘치는 예배와 소그룹,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교회이다. 셀 교회라는 것은 이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는 교회이다.
94년도에 풍성한교회 개척하게 되었는데 제 나이 32살이었다. 제 나름대로 훈련을 받고 아내도 훈련을 받았다. 비전이 같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를 했다.
선교단체에서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 영적 성장을 위한 지름길. 다시는 우리 교회 안에 성도는 형식적인 종교생활 않고 매일 신나는 신앙생활 하게 해줘야 겠다. 그건 양육을 통해,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다.
2002년도에 제가 첫 컨퍼런스를 했다. 건강한 교회 알고 싶어 하는 목사님 200분 모셨다. 그때 우리 교회 좌석 230석이었다. 위에는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100석이었다. 그때 성도들이 300명 출석하고 있었다. 이민 교회 100명과 부산 땅 100명, 서울 100명, 제주도 100명 상황이 다르다. 제가 목회하는 곳은 부산이다. 무당이 제일 많고 기독교 인구 적은 땅이다.
문제는 탁월한 평신도 사역자를 양육해내야 하는데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불가능했다. 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94년도 위대한 비전에 사로잡혀 시작했지만 생각대로 안됐다. 양육해도 선교단체에서 배운 대로 했는데 4개 암송하면 교회를 안 나온다. 찾아가보면 신앙생활이 이렇게 어려우면 못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어떻게 하면 군사로 세울 수 있을까? 그래서 선교단체에서 배운 것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교재를 만들었다. 만들어가며 바로 양육에 들어갔다. 내가 그때부터 강대상에서 지냈다. 부인이 밥을 강대상으로 갖고 왔다. 노회, 시찰회 모임에는 왕따였다. 핫바지 같은 평신도를 어떻게 군사로 세울 것인가 이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기도해봐야 식구 기도하고 어떻게 내 민족,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까 고민했다.
94년도 5월에 개척해서 전도하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양육을 해나가는데 뜻대로 잘 안됐다. 그리고 8월이 됐다. 그 날 참 더운 여름이었는데 남자 집사님이 목사님 점심 식사했습니까? 해서 교회 강대상에 있는데 찾아왔다. 그때는 강대상이 가나안 땅에서 가져온 포도송이가 있는 강대상이었다. 처음은 저도 전통적인 사람, 가장 변화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저는 수십 년 동안 보고 큰 것이 그거였다. 그러니까 제 변화가 제일 힘들었다. 우리는 컨셉 자체가 강대상 하나 바꿔도 이단이다. 그때는 개척 교회한다고 강대상도 큰 것 갖다 놓고 의자 뒤에 세 개갖다 놨다.
몇 달 목회를 했지만 생각대로 잘 안됐다. 사람의 변화가 훈련을 받아야 하는 거라 계획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성도는 한 20명 정도 채 안됐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낙심이 찾아왔다. 남자 집사님이 밥 먹으러 가자해서 괜찮다고 했다. 부산에서 유명한 밀면 집 가자했다. 하나님 의도가 있으시겠지 하고 자꾸 권해서 마지못해서 갔다. 주차장도 없고 골목으로 들어가고 기와집에, 비가 새는데 천막으로 막아 놨다. 20분 기다려서 방에 가서 앉았는데 에어컨도 없었다. 한여름에 선풍기 한 10년은 된 것 같다. 사람들은 2000-3000원짜리 밀면 먹으러 와서 좋은 차 타고 주차비 1000원 내고 왔더라. 먹고 바로 강대상으로 올라가서 '왜 밀면 집 가게 하셨습니까?'하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음성은 어디서든 무엇으로도 들을 수 없다. 성령께서 '김 목사야, 낙심하지 마라. 맛이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제 안에 교회 자리가 좋아야 한다는 부정적인 마음이 있었다. 이 지역은 성장할 수도 없고 유입될 인구도 없었고 저소득층이었다. 그래서 막상 시작했지만 여기서는 될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이러다가 내가 빠삐용 되는 것 아닌가 했다. 분명히 상가에서 탈출해서 교회 건축을 해야 되는데 영원히 저소득층이 사는 시장통에 있어야 하는가. 설교하면 강대상으로 바퀴벌레 싹 지나가기도 한다. 돈이 있나 주차장이 있나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할 때 밀면 집으로 인도하셔서 '맛이 있으면 된다 '하셨다.
'영적인 일품요리를 만들어라' 하는 메시지를 주셨다. 결국 교회는 요릿집이다. 풍성한교회만이 낼 수 있는 맛이 있으면 되는구나 싶었다. 맛있으면 차 몰고도 2시간도 타고 가서 먹고 온다.
그때부터 어떻게 영적인 일품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그때 내 은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강점으로 목회해야 한다. 단점 보완하려고 하지 말고 강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단점 보완할 시간 없다. '양육', '예배'에 관해 생각해보니 '예배'가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이 있는 예배를 어떻게 드릴까 우리 교회만이 낼 수 있는 영적인 맛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볼 때 예배가 뚝뚝 끊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윌로우크릭 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님 예배때 다음 순서로 넘어갈 때 5초만 끊어지면 영감이 끊어진다. 예배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돼야 된다. 예배를 1시간 20분 동안 드리는데 물 흐르듯이 흐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했다. 한번은 연극을 보려고 가는데 저 뒤에 조명 엔지니어, 연출가인 것 같은데 큐시트를 갖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이거다 했다. 예배를 이렇게 짜서 드리면 안 끊어지고 실수하지 않겠다. 그래서 기다리다 '주님 죄송합니다.'하고 갖고 와버렸다.
그래서 영감이 넘치는 예배, 맛이 있는 예배를 이렇게 드리면 싶었다. 그리고 토요일에 예배 순서자 불러 리허설 했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올리는 작품이다. '따라서 하게 했다. 그때부터 사용한 게 흐름이 중간에 끊어질 때 어떻게 하냐, 조명을 사용하게 됐다. 보수적인 교단에서 자라 조명 껐다 켰다 하는 게 인위적인 것 같았다. 허용이 안됐다. 저는 제 자신이 변화가 잘 안됐다. 전통적인 컨셉 드리는 교회에 있어서 강대상 하나 치우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그 당시 앞서가는 교회 배우기 위해 96년, 7년도에 싱가포르, 미국 교회들 다녔다. 구성원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변화라는 것 천천히 가야 한다. 변화를 수용 못하는 그룹 있을 때 천천히 가야 한다. 주님은 교회가 상하는 것 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것 있어도 분열, 분쟁 원하지 않는다. 분열, 분쟁 교회가 상하는 것이다. 교회가 토양이 다 다르다. 그 토양에 맞추어 진도를 어떻게 나갈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변화를 수용 못하는 사람을 도태시키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까지도 수용해야 한다. 저는 제 자신이 가장 변화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꼴통보수였다. 보고 와서도 어떻게 해야 될까 95년,96년도 나는 못 바꾸겠다 크리스털로 바꾸는 순간 주님 벼락 치는 것 아닌가 했다. 처음에 종 살 때 에밀레종 같은 것을 샀다. 영감을 깨트리는게 종이다 생각했다. 기름 부으심이 사라지게 하는 것 흐름이 끊어지는 것, 종소리. 어떻게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며 다음 순서로 넘어갈 것인가 아무도 가르쳐 준 사람 없다. 혼자 기도했다. 영감을 잡아주는 것 음악이다. 음악 소리의 강약을 이용했다.
저녁에 찬양예배 드리려고 하는데 개척교회라 찬양팀이 없었다. 낡은 피아노 하나 있었다. 피아노도 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기타 치는 아이도 없었다. 전공자도 없었다. 그러나 찬양팀은 만들어야 했다. 청소년 몇 명 음악성 상관없다. 일단 사람만 채우면 된다. 청년과 청소년 절반씩으로 채웠다. 기타 있다 해서 갖고 오라 했다. 가난한 교회였다. 1년 동안 신디 구경을 못했다. 갖다 놔도 칠 사람도 없다.
앉혀놓고 다윗이 수금을 치니 악신이 떠나가는 능력 찬양이 목표였다. 기도는 한 시간씩 드리고 음악성이 없으니 연습은 하나 안하나 똑같으니 안한다, 성령이 주시는 영감으로 박수치며 하자고 했다. 1시간씩 기도하고 예배에 서니 아이들이 얼굴이 빛이 난다. 몸이 50cm씩 뛰었다. 찬양은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육의 찬양, 아무 감동 없이 입술만 부르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혼의 찬양, 감정을 실어 부르는 가요, 복음송이다. 부르면 감동받는 것이다. 세 번째,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도 바울이 영으로 찬양한다 했다. 천상에 가면 영으로 찬양할 줄 믿는다. 영으로 찬양하고 영으로 기도한다. 그게 최고의 찬양이다. 영으로 기도하듯이 영으로 찬양해야 한다. 영으로 찬양하게 되면 천국인지 뉴욕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황홀한 기름 부으심이 임한다. 통성 기도할 때마다 안수해주고 해서 영이 열렸다. 그 경지까지 훈련하는데 2년 걸렸다. 어떻게 혼에서 영으로 들어가느냐, 어릴 적 연을 날려봤지요? 바람에 연줄이 팽팽하게 됐을 때 딱 끊는 것처럼 해야 한다. 영이 그때 자유하다. 내 심령이 뜨거운 경지에 올랐을 때 그때 싹 들어가 버려야 된다. 그때 영으로 드리는 찬양으로 쑥 들어가면 자유함으로 찬양하는 거다. 성령이 만지셔서 부르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하모니의 기름 부으심이 임한다. 지금도 15년이 되었지만 영감이 넘치는 예배를 어떻게 드릴까 고민하고 연구한다. 저희 교회 3년 전 건축했는데 대한민국 교회 중에는 조명이 제일 많이 있다. 왜냐하면 모든 문화의 장르를 다 소화해낼 수 있다. 조명이 없으면 문화 행사가 극적인 맛이 떨어진다. 제가 이 조명을 붙이기까지 제자신과의 싸움이 많았다. 많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했다. 음향, 영상, 조명 이 모든 것들 미디어의 신제품이 나왔을 때 첫 번째 고객이 교회라고 했다. 우리가 첨단의 미디어를 잘 활용해야 할 줄로 믿는다. 모든 것들 영상도 마찬가지다. 칙칙하면 안 된다. 지금 젊은이들 떠나가는 이유 잘 봐야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 젊은이 사고 논리 없다. 이들은 오직 하나, 느낌 오면 논리가 필요 없다. 느낌이 오면 바로 실행한다. 제 딸과 한 달 전 얘기했다. 아들은 아빠의 영감을 물려받은 것 같고 딸은 감성을 물려받은 것 같다. 네가 생각하는 감성이 뭐냐? 너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아빠의 감성은 로맨틱한 거고 우리는 feel이다. 이 딸이 이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 깊이가 없다, 철학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저 보고 느끼는 게 감성이다고 딸이 말했다. 시대가 그렇다. 느끼게 해줘야 한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시대 왜 대학생선교단체 70-80년대 캠퍼스복음화를 위해 열성적이었던 선교단체들 지금 왜 힘을 잃었나? 70-80년대 사고. 논리. 이성이 지배했다. 시대 코드를 읽지 못했다. 지금은 느끼게 해야 하는 코드다. 음향, 영상, 조명은 느끼게 만드는 도구다. 교회 예배만 계속 연구해야 한다. 우리 고객은 밖에 있는 불신자다. 고객 만족, 고객 감동, 고객 졸도. 세상 사람들이 걸고 있는 슬로건이 고객 만족, 고객 감동까지이다. 불신자가 초대돼 올 때 입구에서부터 만족해야 한다.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 어떻게 감동시킬 것인가 우리가 고객이 아니다. 밖에 있는 불신자 불러 들였을 때 좋아야 한다. 요릿집에 가도 깍듯이 인사한다. 교회 안내하는 사람 예쁜 사람이 해야 한다. 사명 가진 중직자가 하면 안 된다. 예배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 맛보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맛이 있는 예배되시기를 축원한다.
본문: 요한복음 4:23- 24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는 영감이 넘치는 예배와 소그룹,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교회이다. 셀 교회라는 것은 이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는 교회이다.
94년도에 풍성한교회 개척하게 되었는데 제 나이 32살이었다. 제 나름대로 훈련을 받고 아내도 훈련을 받았다. 비전이 같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를 했다.
선교단체에서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 영적 성장을 위한 지름길. 다시는 우리 교회 안에 성도는 형식적인 종교생활 않고 매일 신나는 신앙생활 하게 해줘야 겠다. 그건 양육을 통해,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다.
2002년도에 제가 첫 컨퍼런스를 했다. 건강한 교회 알고 싶어 하는 목사님 200분 모셨다. 그때 우리 교회 좌석 230석이었다. 위에는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100석이었다. 그때 성도들이 300명 출석하고 있었다. 이민 교회 100명과 부산 땅 100명, 서울 100명, 제주도 100명 상황이 다르다. 제가 목회하는 곳은 부산이다. 무당이 제일 많고 기독교 인구 적은 땅이다.
문제는 탁월한 평신도 사역자를 양육해내야 하는데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불가능했다. 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94년도 위대한 비전에 사로잡혀 시작했지만 생각대로 안됐다. 양육해도 선교단체에서 배운 대로 했는데 4개 암송하면 교회를 안 나온다. 찾아가보면 신앙생활이 이렇게 어려우면 못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어떻게 하면 군사로 세울 수 있을까? 그래서 선교단체에서 배운 것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교재를 만들었다. 만들어가며 바로 양육에 들어갔다. 내가 그때부터 강대상에서 지냈다. 부인이 밥을 강대상으로 갖고 왔다. 노회, 시찰회 모임에는 왕따였다. 핫바지 같은 평신도를 어떻게 군사로 세울 것인가 이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기도해봐야 식구 기도하고 어떻게 내 민족,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까 고민했다.
94년도 5월에 개척해서 전도하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양육을 해나가는데 뜻대로 잘 안됐다. 그리고 8월이 됐다. 그 날 참 더운 여름이었는데 남자 집사님이 목사님 점심 식사했습니까? 해서 교회 강대상에 있는데 찾아왔다. 그때는 강대상이 가나안 땅에서 가져온 포도송이가 있는 강대상이었다. 처음은 저도 전통적인 사람, 가장 변화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저는 수십 년 동안 보고 큰 것이 그거였다. 그러니까 제 변화가 제일 힘들었다. 우리는 컨셉 자체가 강대상 하나 바꿔도 이단이다. 그때는 개척 교회한다고 강대상도 큰 것 갖다 놓고 의자 뒤에 세 개갖다 놨다.
몇 달 목회를 했지만 생각대로 잘 안됐다. 사람의 변화가 훈련을 받아야 하는 거라 계획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성도는 한 20명 정도 채 안됐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낙심이 찾아왔다. 남자 집사님이 밥 먹으러 가자해서 괜찮다고 했다. 부산에서 유명한 밀면 집 가자했다. 하나님 의도가 있으시겠지 하고 자꾸 권해서 마지못해서 갔다. 주차장도 없고 골목으로 들어가고 기와집에, 비가 새는데 천막으로 막아 놨다. 20분 기다려서 방에 가서 앉았는데 에어컨도 없었다. 한여름에 선풍기 한 10년은 된 것 같다. 사람들은 2000-3000원짜리 밀면 먹으러 와서 좋은 차 타고 주차비 1000원 내고 왔더라. 먹고 바로 강대상으로 올라가서 '왜 밀면 집 가게 하셨습니까?'하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음성은 어디서든 무엇으로도 들을 수 없다. 성령께서 '김 목사야, 낙심하지 마라. 맛이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제 안에 교회 자리가 좋아야 한다는 부정적인 마음이 있었다. 이 지역은 성장할 수도 없고 유입될 인구도 없었고 저소득층이었다. 그래서 막상 시작했지만 여기서는 될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이러다가 내가 빠삐용 되는 것 아닌가 했다. 분명히 상가에서 탈출해서 교회 건축을 해야 되는데 영원히 저소득층이 사는 시장통에 있어야 하는가. 설교하면 강대상으로 바퀴벌레 싹 지나가기도 한다. 돈이 있나 주차장이 있나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할 때 밀면 집으로 인도하셔서 '맛이 있으면 된다 '하셨다.
'영적인 일품요리를 만들어라' 하는 메시지를 주셨다. 결국 교회는 요릿집이다. 풍성한교회만이 낼 수 있는 맛이 있으면 되는구나 싶었다. 맛있으면 차 몰고도 2시간도 타고 가서 먹고 온다.
그때부터 어떻게 영적인 일품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그때 내 은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강점으로 목회해야 한다. 단점 보완하려고 하지 말고 강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단점 보완할 시간 없다. '양육', '예배'에 관해 생각해보니 '예배'가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이 있는 예배를 어떻게 드릴까 우리 교회만이 낼 수 있는 영적인 맛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볼 때 예배가 뚝뚝 끊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윌로우크릭 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님 예배때 다음 순서로 넘어갈 때 5초만 끊어지면 영감이 끊어진다. 예배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돼야 된다. 예배를 1시간 20분 동안 드리는데 물 흐르듯이 흐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했다. 한번은 연극을 보려고 가는데 저 뒤에 조명 엔지니어, 연출가인 것 같은데 큐시트를 갖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이거다 했다. 예배를 이렇게 짜서 드리면 안 끊어지고 실수하지 않겠다. 그래서 기다리다 '주님 죄송합니다.'하고 갖고 와버렸다.
그래서 영감이 넘치는 예배, 맛이 있는 예배를 이렇게 드리면 싶었다. 그리고 토요일에 예배 순서자 불러 리허설 했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올리는 작품이다. '따라서 하게 했다. 그때부터 사용한 게 흐름이 중간에 끊어질 때 어떻게 하냐, 조명을 사용하게 됐다. 보수적인 교단에서 자라 조명 껐다 켰다 하는 게 인위적인 것 같았다. 허용이 안됐다. 저는 제 자신이 변화가 잘 안됐다. 전통적인 컨셉 드리는 교회에 있어서 강대상 하나 치우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그 당시 앞서가는 교회 배우기 위해 96년, 7년도에 싱가포르, 미국 교회들 다녔다. 구성원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변화라는 것 천천히 가야 한다. 변화를 수용 못하는 그룹 있을 때 천천히 가야 한다. 주님은 교회가 상하는 것 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것 있어도 분열, 분쟁 원하지 않는다. 분열, 분쟁 교회가 상하는 것이다. 교회가 토양이 다 다르다. 그 토양에 맞추어 진도를 어떻게 나갈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변화를 수용 못하는 사람을 도태시키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까지도 수용해야 한다. 저는 제 자신이 가장 변화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꼴통보수였다. 보고 와서도 어떻게 해야 될까 95년,96년도 나는 못 바꾸겠다 크리스털로 바꾸는 순간 주님 벼락 치는 것 아닌가 했다. 처음에 종 살 때 에밀레종 같은 것을 샀다. 영감을 깨트리는게 종이다 생각했다. 기름 부으심이 사라지게 하는 것 흐름이 끊어지는 것, 종소리. 어떻게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며 다음 순서로 넘어갈 것인가 아무도 가르쳐 준 사람 없다. 혼자 기도했다. 영감을 잡아주는 것 음악이다. 음악 소리의 강약을 이용했다.
저녁에 찬양예배 드리려고 하는데 개척교회라 찬양팀이 없었다. 낡은 피아노 하나 있었다. 피아노도 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기타 치는 아이도 없었다. 전공자도 없었다. 그러나 찬양팀은 만들어야 했다. 청소년 몇 명 음악성 상관없다. 일단 사람만 채우면 된다. 청년과 청소년 절반씩으로 채웠다. 기타 있다 해서 갖고 오라 했다. 가난한 교회였다. 1년 동안 신디 구경을 못했다. 갖다 놔도 칠 사람도 없다.
앉혀놓고 다윗이 수금을 치니 악신이 떠나가는 능력 찬양이 목표였다. 기도는 한 시간씩 드리고 음악성이 없으니 연습은 하나 안하나 똑같으니 안한다, 성령이 주시는 영감으로 박수치며 하자고 했다. 1시간씩 기도하고 예배에 서니 아이들이 얼굴이 빛이 난다. 몸이 50cm씩 뛰었다. 찬양은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육의 찬양, 아무 감동 없이 입술만 부르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혼의 찬양, 감정을 실어 부르는 가요, 복음송이다. 부르면 감동받는 것이다. 세 번째,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도 바울이 영으로 찬양한다 했다. 천상에 가면 영으로 찬양할 줄 믿는다. 영으로 찬양하고 영으로 기도한다. 그게 최고의 찬양이다. 영으로 기도하듯이 영으로 찬양해야 한다. 영으로 찬양하게 되면 천국인지 뉴욕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황홀한 기름 부으심이 임한다. 통성 기도할 때마다 안수해주고 해서 영이 열렸다. 그 경지까지 훈련하는데 2년 걸렸다. 어떻게 혼에서 영으로 들어가느냐, 어릴 적 연을 날려봤지요? 바람에 연줄이 팽팽하게 됐을 때 딱 끊는 것처럼 해야 한다. 영이 그때 자유하다. 내 심령이 뜨거운 경지에 올랐을 때 그때 싹 들어가 버려야 된다. 그때 영으로 드리는 찬양으로 쑥 들어가면 자유함으로 찬양하는 거다. 성령이 만지셔서 부르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하모니의 기름 부으심이 임한다. 지금도 15년이 되었지만 영감이 넘치는 예배를 어떻게 드릴까 고민하고 연구한다. 저희 교회 3년 전 건축했는데 대한민국 교회 중에는 조명이 제일 많이 있다. 왜냐하면 모든 문화의 장르를 다 소화해낼 수 있다. 조명이 없으면 문화 행사가 극적인 맛이 떨어진다. 제가 이 조명을 붙이기까지 제자신과의 싸움이 많았다. 많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했다. 음향, 영상, 조명 이 모든 것들 미디어의 신제품이 나왔을 때 첫 번째 고객이 교회라고 했다. 우리가 첨단의 미디어를 잘 활용해야 할 줄로 믿는다. 모든 것들 영상도 마찬가지다. 칙칙하면 안 된다. 지금 젊은이들 떠나가는 이유 잘 봐야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 젊은이 사고 논리 없다. 이들은 오직 하나, 느낌 오면 논리가 필요 없다. 느낌이 오면 바로 실행한다. 제 딸과 한 달 전 얘기했다. 아들은 아빠의 영감을 물려받은 것 같고 딸은 감성을 물려받은 것 같다. 네가 생각하는 감성이 뭐냐? 너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아빠의 감성은 로맨틱한 거고 우리는 feel이다. 이 딸이 이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 깊이가 없다, 철학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저 보고 느끼는 게 감성이다고 딸이 말했다. 시대가 그렇다. 느끼게 해줘야 한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시대 왜 대학생선교단체 70-80년대 캠퍼스복음화를 위해 열성적이었던 선교단체들 지금 왜 힘을 잃었나? 70-80년대 사고. 논리. 이성이 지배했다. 시대 코드를 읽지 못했다. 지금은 느끼게 해야 하는 코드다. 음향, 영상, 조명은 느끼게 만드는 도구다. 교회 예배만 계속 연구해야 한다. 우리 고객은 밖에 있는 불신자다. 고객 만족, 고객 감동, 고객 졸도. 세상 사람들이 걸고 있는 슬로건이 고객 만족, 고객 감동까지이다. 불신자가 초대돼 올 때 입구에서부터 만족해야 한다.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 어떻게 감동시킬 것인가 우리가 고객이 아니다. 밖에 있는 불신자 불러 들였을 때 좋아야 한다. 요릿집에 가도 깍듯이 인사한다. 교회 안내하는 사람 예쁜 사람이 해야 한다. 사명 가진 중직자가 하면 안 된다. 예배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 맛보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맛이 있는 예배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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