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스바치
용돈을 요구하던 커커스 바치
체펠 마을에 커커스라고 불리는 60여세 가까운 홀로 사는 키가 작은 집시가 있었다. 체펠 주민들은 그를 부를 때에 커커스 바치(삼춘)라고 불렀는데 “바치”는 이웃의 어른들이나 가족 중에 존경의 의미로 부르는 존칭으로 모두가 그렇게 불렀다. 그는 가족도 없이 혼자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살았는지는 가족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가 없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음에도 아이 유모차 크기의 작은 바퀴달린 박스를 끌면서 시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하고 고철이나 폐지를 팔아 이웃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도 하면서 살고 있었다.

집시선교 현장에 와서 첫 번째로 집시선교 사역을 체펠 마을에서 시작하였으니 그를 만난 것은 어느덧 5년이 넘은 듯싶다. 5년 전에 만났던 그의 모습은 늘 허름하기 그지없는 옷차림에 가끔은 술에 취해 있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날 예배를 드릴 때에는 늘 기다렸던 것처럼 예배에 빠짐없이 동참하였다. 어떤 때에는 어디에서 술을 한잔 했는지 얼굴이 불그스레한 모습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는 설교자를 위해 회중 앞에 작은 의자를 준비하는데 그는 무슨 의지인자 개의치 않고 늘 그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곤 하였다. 그래도 예배에 동참하는 모습이 귀해 보여서 앞에 설교자를 위해서 준비해둔 의자에 앉아도 상관하지 아니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곤 하였다.

예배를 마치고 나면 예배에 동참했던 모든 사람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를 향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손가락 두 개를 펴면서 약간의 용돈을 요청하였다. 우리는 그가 무엇 때문에 요청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의 요청에 냉정하게 거절을 하지 못하고 그 돈으로 담배 사서 피우지 말고 빵을 사서 먹으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200포린트(1,200-1,300천원 남짓) 정도를 손에 쥐어주면 감사하다는 표현으로 “에기시게드레”(건강하세요) 하면서 흡족한 모습을 보였다.

호텔 공사장에서 철근을 훔치던 것을 발견하고…
커커스를 보면 조금 미안해하는 마음이 있다. 아마도 한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어느 토요일 오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창문을 통해서 밖을 무심결에 내다보니 앞에서 있는 호텔 부속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토요일 오후라서 모두 작업을 마치고 거리는 한적한 가운데 가만히 보니 그가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창밖을 내다보면서도 “왜 코코스가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유심히 살펴보니까 공사장에 있는 길고 묵직하게 보이는 혼자서 들기에 버거운 철근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는 공사장 펜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젊은 집시에게 철근을 넘겨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뭔가를 성취했다는 그러한 모습으로 철근을 앞뒤에서 들고서 어딘가를 향해서 급히 가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히 커커스하고 호텔 공사장하고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데 그가 가지고 나오는 철근은 절도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그가 혼자서 생각하기는 힘이 들었을 것 같고 다른 젊은 집시의 꾐에 빠져서 함께 철근을 훔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저렇게 철근을 훔쳐서 팔아버린다면 뒤돌 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 것 같아 급히 호텔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몇 분 전에 집시 두어 명이 공사장에서 철근을 들고 나왔는데 그들을 찾아 철근을 회수하라고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호텔 당직자들이 급히 밖으로 나가서 멀리 가지 못한 이들을 찾아 철근을 회수해서 다시금 공사장으로 갖다 놓게 되었다.

그날 오후 체펠 마을을 방문했더니 그 자리에 커커스가 있었다. 혹시 별일 없었냐고 물었더니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하기에 호텔에서 철근을 가지고 나오는 모습을 봤고 내가 호텔로 전화를 해서 철근을 다시금 제자리로 되돌려놓게 되었다고 하면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조금 미안해하고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늘 변함없이 우리를 반가와 하였고 예배 시간에는 자기 자리를 지키곤 하였다.

▲성경공부에 동참해서 말씀을 듣고 있는 코코스 바치
새 운동화에 담긴 우정을 팔아버린 커커스
그러던 중에 지난해에 신학교 동창 목사님이 집시선교를 위해서 새 운동화 50켤레를 화물로 보내 주었다. 새 운동화를 선물 받고서 누구에게 가장 먼저 선물을 할까 생각하는 중에 집시 노인 분들이나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헌 옷과 같은 구제품은 나이가 드신 분들에게도 드리기는 했지만 운동화는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쉽게 구입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헌 신발을 구제품으로 드린 적이 없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생각나는 분들이 라찌 형제의 아버지, 혼자 사는 빌라 그리고 커커스의 얼굴이었다. 돌아오는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면 선물을 나눠줄 계획이었다.

이윽고 주일이 왔다. 우선 체펠 마을에서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선물로 받은 운동화를 생각했던 대로 한 분씩 나눠주었다. 라찌 형제의 아버지, 혼자 사는 빌라, 그리고 커커스 등으로 순서대로 선물을 나눴는데 새 운동화를 받아 들고는 너무들 좋아하였다. 이분들에게 새 운동화는 어쩌면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앞으로도 이분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새 운동화를 사는 일은 없을 테니 또한 마지막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 역시 동창 목사님의 수고로 인해서 보내주신 새 운동화를 나누면서 나누는 이나 받아 든 이 모두 동일한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새 운동화를 나눠주고 체펠 마을을 나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커커스바치가 새 운동화를 팔았어요!” 하는 것이었다. 나오던 길을 멈추고 다시금 커커스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니 그가 많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에게 조금 전에 주었던 새 운동화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새 운동화를 팔지 않았냐고 물으니까 팔지 않았다고 정색을 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다시 운동화를 가져오라고 하니까 가져오지를 못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500포린드(약 3,000원 정도)에 팔았다는 것이었다.

평생에 한 번도 자신을 위해서 신었던 기억도,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 누구보다도 먼저 운동화를 선물했는데 불과 몇 분 만에 운동화를 팔아먹었다고 생각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커커스에게 “당신은 운동화를 판 것이 아니라 내 우정을 팔았다”고 했더니 참으로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 놓고는 체펠 마을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집시마을을 떠난 커커스…추위에 동사, 안타까움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체펠 마을 예배시간에 커커스를 볼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그를 찾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는 아마도 커커스가 미안함 때문에 예배에는 동참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다시금 나오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종종 체펠 마을에 갔을 때에 길가에서 그를 만났을 때에 다시금 예배에 나오라는 몇 마디의 대화가 전부였다. 그 역시 우리에게 예전처럼 몇 푼의 용돈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에 한 동안 커커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물어보니 누군가가 몇 십 킬로 떨어진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사라고 해야 자신의 몸과 평소에 고철이나 파지를 줍기 위해 끌고 다녔던 바퀴가 달린 박스가 전부 일 테지만 그는 그렇게 집시마을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 뒤에 그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지난겨울, 그와 한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사람이 체펠 마을을 방문하였기에 “커커스가 잘 있느냐”고 물었더니 소식을 듣지 못했냐고 물으면서 “술을 마신 뒤에 겨울 추위에 얼어 죽었다”는 것이었다. 커커스가 얼어 죽었다는 소식에 한 동안 정신이 멍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기억들과 그의 지난 삶을 생각해 보니까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금년이 그에게 만 60세가 되는 해라고 하였다.

매너리즘에 빠진 선교의 현자 돌아보는 계기
커커스가 죽고 난 후에 선교현장에서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세어보니 만 5년이 넘었다. 체펠 마을에서 늘 반복되는 선교사역이기에 또한 늘 함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정말로 진지하게 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헤어질 사람이었다면 그의 영혼을 위해서 좀 더 진지하게 복음을 전했어야 했는데 하는 주님께 죄스러운 마음과 그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또한 나 역시 선교사로서의 메너리즘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커커스의 죽음을 통해서 주님께서 맡기신 선교사역을 위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는 말씀을 마음에 되새겨본다

Rev. Choi, Young & Anna (최 영 & 양 안나)
주소: 3950, Sarospatak, Cominius Ut 24, Hungary
전화: 36-47-311-193, 36-70-544-7141(핸드폰)
이메일: usmcy@hanmail.net/ usmcy@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