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신년을 맞이해 세대교체, 교회연합, 2세 사역, 부흥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들고 시카고 지역 목회자 40인을 만난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시카고 한인교회의 여론을 수렴하고 한인교회의 미래와 나아갈 바를 조명하고자 함이다. 40인 인터뷰는 시카고 교계의 발전을 위한, 가능한 모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세, 목회자의 교단적 배경, 목회 연수 등에 관계없는 순으로 게재된다.

열다섯번째 인터뷰는 어바나에 소재한 예수사랑감리교회 윤국진 목사다.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하고 26살에 게렛신학교로 유학와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트리니티신학교에서 선교학 박사(D.Miss.)를 마쳤다. 20년간 시카고 지역에서 목회하며 제자 훈련과 청년 지도자 양성에만 몰두해 왔다. 청년 사역에 비전을 두고 일리노이대학 어바나-샴페인에 교회를 개척해 10여년만에 성도 2명에서 현재 3백명 가까이 부흥했다. 10년 청년 목회에 50명의 중년 성도도 생겼고 250명은 학생이다. 윤 목사는 “이젠 어떻게 하면 교회가 부흥하는지 알게 됐지만 그게 덫이 되어 사역의 발목을 잡더라”며 “진정한 제자 양성이 나의 꿈이고 비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안주할만한데도 다시 한번 청년 사역의 꿈을 불태우며 시카고로 올라와 스코키에 예수사랑감리교회를 개척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이것이 누구를 정죄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고민하자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거듭 말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유학 생활부터 시카고 지역에 비교적 오랜 기간 계시며 목회하셨습니다. 20년동안 한인교회는 어떻게 변화되어 발전돼 왔나요?

한인교회는 한인사회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민사회는 교회에서 시작해 교회로 끝납니다. 과거의 한인교회에는 거룩한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한인사회를 끌어안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고 많은 목회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한인교회는 존속될 것인지, 한인교회의 언어는 무엇이 될지, 한인교회는 당시 한인타운이었던 로렌스에 머물러야 할지, 교외로 나가야 할지, 지금 생각하면 다소 촌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이런 주제를 놓고 고민하는 가운데 늘 한인교회의 나아갈 바를 모색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고민들이 사라졌습니다. 교회는 “한인사회의 일은 다른 한인단체가 하겠거니” 생각하고 한인단체들도 “이제 교회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한인들의 아픔을 싸안기보다는 자기 교회를 성장시키는 일에만 몰두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컨텐츠가 있지만 사명감을 잃어 버렸고 한인단체들은 사명감에는 불타지만 컨텐츠가 없습니다.

-그럼 교계가 할 수 있는 건설적 고민거리가 있을까요? 저희는 지금까지 교회 연합, 2세 문제, 목회자 공석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이미 여러 분들과 나눈 바 있습니다.

그것들도 이 지역 교회가 고민해야 할 주제입니다. 또 한가지 더하자면 유학생, 내지는 한국어가 더 편한 1.5세인 한어권 청년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이 지역에서 청년부 전도사부터 목회를 시작하면서 20년간 청년들이 복음으로 변화되면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를 경험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 이민와 정체성 혼란을 겪는 데다가 부모들은 경제적 문제로 너무 바빠 그들을 케어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니 너무나 큰 변화와 혼란 속에서 자살 충동 혹은 우울증을 겪습니다. 이들과 밤새 성경공부 하고 제자훈련을 하면서 이들의 인생이 얼마나 변화되는지 확인했습니다. 어른들은 바뀌어도 별로 표시가 안나는데 이 청년들은 인생 자체가 바뀝니다. 저는 코스타 대회에 90년부터 참석해 19년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유학생으로서 참석한 것이었는데 벌써 공동대표까지 됐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정말 이 사역이 귀한 일이고 민족을 바꾸는 일이란 것을 실감합니다.

제가 어바나-샴페인으로 내려 갈 때 기도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킬 기드온의 3백 용사를 주십시오”였습니다. 적어도 내 사역이 3백명의 제자를 훈련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10년을 사역하니 제자훈련을 받은 성도가 3백명을 넘어섰습니다. 최근까지 386명이 제자훈련을 마쳤습니다.

- 한어권 청년들에 한인교회가 주목을 하고 있나요?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2세들보다 더 소외된 층이 이들이 아닌가 합니다.

LA의 몇몇 대형교회들이 한어권 청년들에 주목하면서 큰 부흥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한어권 청년들은 노력하고 투자한만큼 반드시 결실하는 존재들입니다. 그 파급효과가 인정받으면서 이제 전임 사역자들이 세워지고 부흥이 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시카고 지역의 한어권 청년 사역은 부차적 사역으로 취급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담당 사역자가 늘 바뀝니다. 연속성이 없고 사역자가 바뀔 때마다 청년들이 흩어집니다. 아마 2세 목회 같은 열정으로 한인교회가 한어권 청년에 투자했다면 상황이 달라지고 한인교회 자체가 달라졌을 것인데 아쉽습니다.

-왜 한어권 청년들에게 그런 소외 현상이 생겼을까요?

우선, 한어권 청년들은 교회 장로나 권사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표현이 그렇지만 아무래도 자기 자녀의 일이 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내 자녀가 영어권에 속해 있는데 그곳에 전도사가 지금 없다 해 보십시오. 당장이라고 헌금으로 뭐하는지 당회에 책임을 묻고 전도사를 청빙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어권은 자기 자녀들이 아니니 아무래도 관심을 덜 갖고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한어권을 잘 키우면 이들을 주일학교 교사로 쓸 수도 있고 이들이 결혼하고 정착하면 장년이 되고 교회의 일꾼이 되는데도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해 주목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어권 청년들을 교회에서 거추장스런 존재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한국어를 함께 쓰니 교회에서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이 내려질 때, 곧장 한국어로 비판합니다. 청년 때는 돈이 없으니 헌금도 많이 못합니다. 교회는 자신들의 결정대로 하길 바라지 바른 소리 하는 청년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게다가 자기 자녀들도 아니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제 관점에서 2세 문제는 다음 문제입니다. 한국교회가 2세를 살리려고 한다면 소외된 1.5세들인 한어권 청년을 잡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소명을 주고 “이곳이 너의 교회다. 네가 책임져야 한다. 2세, 3세를 네가 품어라”라고 해야 합니다. 2세를 품는 일에 1세들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1.5세들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조금만 희생하면 영어를 할 수 있고 문화적 적응도 가능합니다. 한인교회는 교회에서 영어를 사용하면 그게 최고인 줄 알고 무슨 유세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정서에서 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던 1.5세들이 마음이 돌아서 버립니다.

제 자녀도 2세입니다. 그러나 저는 목회자만큼은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인교회가 가진 능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2세 교회를 분립해 주어도 몇 년 지나면 시들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일까요? 자신들이 세운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우물을 파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1세가 살아 있을 때만 유지되고 지켜내질 못합니다.

2세 교회에 물론 중요한 비전이 있지만 2세 교회가 다민족 사역이나 미국 사역으로 나아갈 때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미국교회 백인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한인교회가 하겠다는 겁니까?”, “우리 민족은 잘 돌보면서 다른 민족을 이제 돌보겠다는 겁니까?” 다른 민족들이 우리 한인교회를 볼 때 뭐라고 하겠습니까? 우리 민족 신경은 그만 쓰고 당신들 한인이나 잘하세요”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너희가 한인교회의 미래다”라고 한 마디만 해 주면 자신의 생명을 맞바꾸려 할 청년들을 밖으로 떠돌게 소외시키면서 타민족 사역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미국교회에 가 보면 한국말이 더 편한 한인 청년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저 역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전 이것을 깨달았기에 이들은 위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전 이런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들을 끌어안고자 했습니다.

▲윤국진 목사는 자신이 개척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전하며 한 명을 주님의 제자로 키우는 일이야말로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사역이라고 강조했다. ⓒ 김준형 기자
-2명으로 시작해 10여년만에 3백명이 되기까지 어려움이 많으셨을텐데, 무슨 노하우라도 있습니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노하우입니다. 지금은 안 보여도 울며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됩니다. 저는 학원목회가 울며 씨를 뿌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만큼 분명하게 이익이 남는 것이 없습니다. 건물도 소용없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건물을 아무리 웅장하게 지어도 유럽교회처럼 텅텅 빕니다. 사람을 키우는 것에 답이 있습니다.

청년들이라 키워내면 다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가서도 그들은 후원자가 되고 청년선교에 헌신하는 동역자가 됩니다. 제가 가장 기쁜 일은 우리 교회 출신들이 평신도로서 청년부장이나 청년부에 헌신하는 집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 곳곳에 흩어져서 같이 청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저도 어바나에서의 학원목회를 마치고 시카고로 올라 와 청년 제자를 양성할 교회를 개척하고자 할 때 여러 곳에서 청빙이 들어 왔습니다. 청빙받아 가면 조금은 더 편할 수 있지만 내가 길러낸 제자들을 향해 나름 보여주어야 하는 게 있어서 다시 개척을 결심했습니다.

-지금 또 다른 개척은 조금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네. 무모하다 할만큼 용기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수록 래디컬해 집니다. 이제 저의 자녀들도 대학에 가야 하는데 다시 개척이니 하나님 외엔 맡길 곳이 없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힘으로 가야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목회 철학을 자녀들과 나누고 함께 고민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제가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래야만 변화되니까 어쩔 도리가 없지요. 내가 믿는 바에 인생을 걸지 않으면 누구보고 인생을 걸라고 하겠습니까?

생명을 걸고 제자를 안 키우고 주일날 사람만 많이 모이게 하는 것은 결국 저에게 덫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자 훈련이 저의 일입니다. 완악한 사람이라도 말씀이 깊이 들어가니 그 바쁜 유학생들이 시간을 내서 공부하고 인생이 정리가 되고 헌신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목숨을 거는 것은 옵션이 아닙니다. 프로그램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 그렇게 중요하다면, 한인교회에 1.5세나 한어권 청년들을 위한 운동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한인교회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이 일입니다. 제가 기도하고 소원하는 바는 우리 교회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청년이 새로워지고 교회가 활력을 얻고 총체적으로 부흥되는 모습이 보여져서 많은 교회들이 이 사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말만으로는 안됩니다.

조선 선교를 시작했던 선교사들도 대학생 때 헌신하고 졸업 후에 곧장 나온 사람들입니다. 은퇴 후에 선교사로 나오는 것도 좋지만 젊을 때 선교지에 가야 물불 안가리는 열정으로 선교할 수 있고 10년, 20년 뒤에는 그 나라의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한인교회의 선교는 부업처럼 됐고 이미 이루어진 선교지를 매니지 하는 정도입니다.

- 지금 청년사역에 집중할 수 없는 교회들의 현실적인 면도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대부분 목회자들이 이런 사역을 전문 사역으로 보기보다는 일종의 경험 정도로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현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교회 재정이 부족해 청년부 전도사 한명을 청빙하기도 힘든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담임목사 수준으로 대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보람은 느껴도 현실적으로 신분에 대한 보장이 되지 않을 때 본인들은 전문성을 못 느낍니다. 그러니 경력을 쌓는 차원에서 해 보는 게 되고 전문성이 축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평신도들을 청년 사역자로 훈련하려고 합니다. 우린 이들을 보낼 때 큰 교회 가지 말고 작은 교회로 가서 봉사하라고 합니다. 평신도들은 자기 돈을 내면서 사역합니다. 이들이 주일에만 하지 말고 좀더 전문성을 갖고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시카고 교계의 분열 현상이나 연합 정신 부족 현실은 어떻게 보십니까?

좀 복잡합니다. 큰 교회는 작은 교회를 염두에 두어야 하고 작은 교회는 큰 교회가 연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잘 안됩니다. 교인들이 이동하면서 어제는 우리 교인이 내일은 다른 교인이 돼 있으니 연합이 되기 쉽지 않습니다. 시카고에서 오래 목회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큰 교회로 갓 청빙되어 온 신임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도 하고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연합 사역에 헌신적으로 뛰어드는 일을 못미덥게 보는 그런 시각도 있습니다. 시카고 교계의 어른들이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고 연합을 위해 노력해 주셨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큰 교회가 연합에 나서야 하는 줄 알지만 작은교회일지라도 존경받는 어른이 왜 없겠습니까?

-20년 전 시카고는 어떠했나요?

그때는 가족적 분위기가 컸습니다. 모일 곳도 제한돼 있었고 청년들이 갈 곳도 교회 밖에 없었습니다. 70년대 중반에 이민오셔서 교계를 지켜 오신 분들이 계셔서 교계가 좀 안정적이었습니다. 서로 교회 크기나 성도 수에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했습니다. 교계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신앙을 풍성하게 해 주었고 교회를 더 열심히 섬기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큰 교회는 작은 교회를, 작은 교회는 큰 교회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작은 교회는 큰 교회 목회자를 신임이라고 무시하고, 큰 교회는 작은 교회가 작다가 무시합니다.

지금은 한인교회들이 너무 겉멋이 들었습니다. 미국 대형교회들을 성장 모델로 삼으면서 교회만 성장하면 모든 것이 용서됩니다. 반대로 교회가 성장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분이라도 용서받지 못합니다. 20년 전 한인교회는 성장에 목을 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즐겁고 아름답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성장에 목을 매는데도 성장되긴 커녕 축소만 됩니다. 내 교인을 빼앗겼다 생각하고 저 자리는 내가 갈 자리인데 저 사람이 갔다고 생각하니 이런 경쟁적 구조 속에서 필요없는 경쟁과 반목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막상 은퇴하고 나면 다 아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서로 목회자들이 동료 의식을 갖고 각자 자리에서 서로를 인정하며 섬기면 얼마든지 연합이 가능할 것입니다.

-네. 맞는 말씀입니다.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요즘 교인들은 말씀에 목말라 합니다.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맞는지 확인하고자 목마릅니다. 자신들도 말씀대로 살고는 싶은데 그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목마릅니다. 우리 이민목회자들은 이민목회를 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존경받아야 하고 격려받아야 합니다. 저는 급한 일부터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갈 곳 없는 1.5세, 한어권 청년들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돌보는 사역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제가 한명의 제자를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성도들도 저의 부족한 모습이지만 이 모습에 확신을 갖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