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위기가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비즈니스가 어려움에 당할 때, 직장을 잃었을 때, 건강이 쇠약하여졌을 때, 자녀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리고 부부의 사랑에 금이 생겼을 때, 우리는 치열한 우리의 상황을 극복할 방도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어떠한 피난처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까 기대하게 됩니다.

시편 46편은 피난처 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고라자손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세 번이나 반복하여 피난처 되심을 선포하고 있는 시편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사실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속에서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진이나, 츠나미나, 허리케인이나 산불에서도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피난처이심을 보여주는 가득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여 슬퍼하면서 기도하는 한나에게는 “사무엘”이라는 아이를 주시므로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여인 룻에게 보아스를 만나게 하심으로, 다윗의 왕가를 여는 조상이 되게 함으로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아들 압살롬의 공격으로부터 피하게 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므로, 여호사밧은 브라가 골짜기에서 적군을 물리치심으로, 아사 왕에게는 100만 구스 연합군을 쳐서 승리를 안겨주시므로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그 외에도 히스기야 왕에게는 산헤립의 18만 5천을 치시므로 피난처가 되셨고,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에게는 바빌론과 페르시아의 왕권으로부터 지켜주심으로 피난처가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피난처이십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만 하면 승리합니다. 정사나 권세나 세상 주관자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흑암이나 적신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8-39).

문제는 우리가 피난처이신 하나님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만에서 겸손으로, 갈등과 증오에서 사랑으로, 욕망과 자랑에서 섬김과 봉사로, 그리고 탐심에서 순결함으로 주를 찾아야 됩니다. 고통의 시절은 그 기간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위장된 축복”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