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 신약 11인, 구약 9인 선정
신·구약 비율, 지난해 이어 비슷
히브리서 11장 13절 중복 선택해
히브리 3인, 전도서·에베소 2인
신앙 선배들, 믿음 기초해 살아
신앙, 이론 아닌 실천하는 믿음

여전히 극단적 대립과 갈등이 완화되지 않았던 2025년도 저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신학자들 20인이 ‘올해의 성경구절’을 선정하며 2025년을 진단하고 2026년 ‘더 나은 사회와 교회’를 소망했다.

교단과 교파, 연령대는 물론, 조직·성서·역사·실천 등 신학 제 분야를 망라해 원로와 신학대 총장, 주요 학회 대표 등 대한민국 신학계를 대표하는 20인이 2025년을 마무리하면서, 교수신문이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나 영국 옥스포드 사전이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올해의 성경구절’과 그 이유를 고르고 담았다. ‘희망의 2026년’을 기원하며 말씀을 고른 이들도 있었다.

‘올해의 성경구절’은 교수신문처럼 사자성어 예시 몇 가지를 제시해 객관식으로 고르게 하는 방식이 아닌, 성경 66권 모든 구절 중 ‘주관식’으로 선정하고 있다. 성경은 66권으로 그 자체가 너무 방대하고, 신학자들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기 위함이다.

‘올해의 성경구절’ 참여 신학자는 지난 2019년 6인을 시작으로 2024년 20인까지 확대돼 올해도 같은 숫자를 유지한 가운데, 7년째인 올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먼저 20인 중 구약을 선택한 신학자가 9인, 신약을 선택한 신학자가 11인으로 다시 신약의 근소한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 2019년 첫 선정 이후 매년 신약을 선택한 신학자들이 더 많았으나, 지난해 처음 구약을 11인이 골라 신약 9인을 앞선 바 있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신약과 구약이 비슷하게 선택을 받았는데, 앞으로 이 기조가 이어질지도 관심사다.

성경 권별로는 구약의 경우 2인이 고른 전도서를 제외하면 출애굽기·레위기·신명기·사사기·역대하·이사야·미가 등 다양한 구절이 선택받았다. 신약의 경우 히브리서가 3인으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고, 에베소서는 2인이었다. 이 외에 마태복음·요한복음·사도행전·고린도전서·데살로니가전서·요한일서·요한계시록 등을 한 명씩 골랐다.

둘째로 서로 연락하거나 사전 조율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지난해에 이어 같은 성경구절을 선택한 경우가 또 나왔다는 점이다. 안명준 명예교수(평택대)가 히브리서 11장 13절, 김재성 교수(국제신대 전 부총장)가 히브리서 11장 13-14절을 ‘올해의 성경구절’로 각각 꼽았다.

히브리서 11장 13절은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라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약속이 보이지 않는 상황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낸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그의 선조들의 신앙을 증언하고 있다.

F. F. 브루스(Bruce)는 히브리서 주석에서 이에 대해 “히브리서 11장에서 족장들이 약속을 받지 못한 사실은 믿음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가 종말론적으로 완성되기까지 의도적으로 유보된 성취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11장의 결론인 39-40절에서 13절의 의미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고 덧붙인다.

ESV 스터디 바이블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는 약속의 땅으로 부르심을 받고 수많은 자손을 약속받았지만, 전적으로 자신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유목민으로 살면서 이런 약속들을 순전하게 받아들였고, 거기서도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그들은 죽을 때까지 신실했다”고 전하고 있다.

해당 구절을 선택한 김재성 교수는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저 멀리 바라보면서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특히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조상들은 모두 다 믿음의 영웅들이었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만사를 믿음에 기초해 살아갔다고 증거한다”며 “오늘의 현실이 어둡고 고난과 핍박이 있지만, 믿음은 희망의 근거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확신이다. 미래에 속한 것들과 영적인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믿음으로 살면서, 모든 것을 이겨내자”고 기원했다.

안명준 교수도 “올해도 우리 삶 속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변함없이 천성을 향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며 “나그네는 잠시 머무는 세상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실제적인 신앙”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구속받은 고귀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유에 집착하는 삶이 아니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청지기”라며 “다가오는 새해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나그네이며 청지기된 삶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면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해 가자”고 소망했다.

신학자들이 이 구절을 고른 것은 결국 시국에 대한 반영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 땅의 나그네에 불과하고, ‘약속’을 바라보며 후일 생명이 다하면 돌아가야 할 하늘의 본향을 위해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돼야 함을 촉구하는 것이다.

2025 올해의 성경구절
(Photo : 대통령실) 신학자들은 정교분리 원칙의 오용과 정권의 종교에 대한 간섭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종교재단 해산’ 발언이 나온 지난 12월 2일 국무회의 모습.

다른 신학자들도 시국에 우려를 표시했다. 2026년이면 한국 나이로 93세가 되는 박조준 목사(웨이크 설립자)는 요한일서 1장 9절을 선택하면서 “작금의 현실을 돌아볼 때, 우리 심정은 마치 거친 풍랑 속에 난파당한 배 위에 있는 것과 같다. 국가와 사회 전체가 혼란과 불신으로 가득하며, 성경에 근간을 둔 자유민주주의가 뿌리채 흔들리는 현실 속, 무엇보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잘 알려진 마태복음 22장 21절을 제시한 김영한 교수(기독교학술원 원장)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정교분리’ 가르침은 국가 권력이 종교의 신성한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국가는 예배, 신앙고백, 교리, 설교, 교회행정 등 교회의 고유 영역에 간섭해선 안 된다. 교회는 국가에 대해 세금을 내고 병역의무를 다하며, 선거와 투표를 하고 뽑힌 지도자가 선정을 베풀도록 기도하며, 국가의 불의에 공공윤리 견지에서 세례 요한처럼 예언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최근 대통령의 ‘종교재단 해산’ 겁박에 대한 반박으로 보인다.

미가 2장 1-2절을 제안한 이상규 명예교수(백석대)도 “피 흘리며 쟁취한 민주주의가 도전을 받고,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도덕적·윤리적 가치가 무시되고, 불의를 행하는 자가 득세하는 불안한 사회가 되고 있다”며 “새해에는 사회가 더욱 건실해지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동성애 합법화 같은 반기독교 입법 시도가 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신교의 자유와 종교행위 자유가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사도행전 4장 18-20절을 고른 최덕성 총장(브니엘신학교)은 “하나님의 법(신앙의 법)과 실정법이 상충하면, 하나님의 법을 따름이 마땅하다”며 “대한민국에는 하루하루 시커먼 쓰나미 같은 멸망의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법치주의가 무너졌고, 간첩이 설치고 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가 제한하고 있다. 정교분리 원칙이 오독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정치 권력자와 입법부와 사법부를 향해 견제와 비판의 설교를 하지 않는 설교자는 하나님의 충직한 일꾼이 아니”라며 “하나님은 정교분리 원칙이라는 커튼 뒤에 숨어 입을 닫고 있는 설교자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 기독교 역할을 기억하라는 주문도 있었다. 박명수 명예교수(서울신대)는 “우리가 오랜 봉건사회에서 벗어난 것도, 일제에서 해방된 것도, 6.25 전쟁을 극복한 것도, 보릿고개를 이긴 것도, 민주화를 이룩한 것도 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며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호와 외에는 우리는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가적 상황에 대한 회개도 촉구했다. 정상운 명예총장(성결대)은 “하나님은 지금의 국가적 위기가 한국교회를 향한 영적 경고일 수 있음을 일깨우신다”며 “교회가 먼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두 손 들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하며 돌아올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땅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역설했다.

은퇴 후 열악한 선교지를 돌며 사역중인 서창원 박사(총신대 전 교수)는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면서 말씀을 옳게 분별할 능력도 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전달할 자질도 없는 자들이 한국이나 선교지 곳곳에 많다고 한탄하면서도, 치유할 능력도 지혜도 없는 내 자신의 무기력함과 자신과의 싸움에 지친 한 해였다”고 고백했다.

젊은 신학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웃 사랑과 분노 조절을 공통적으로 주문했다. 레위기 19장 17절을 제시한 김구원 교수(전주대)는 “2025년 한국은 무너진 형제 관계로 신음한 한 해였다. 2026년 새해는 형제를 속으로 미워하는 대신, 치열하게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에베소서 4장 31-32절을 고른 박욱주 교수(연세대)는 “오늘날 사회 전반에 만연한, 그리고 교회에까지 침투한 분노는 성경적 정당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참으로 세속적인 분노”라며 “새해에는 한국교회가 신앙과 무관한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영혼을 돌아보며 사랑하는 성결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새 희망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새해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사야 60장 1절을 선택한 민경배 석좌교수(웨이크신학원)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가치는 하나님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다”며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그 영광으로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를 비취어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요한계시록 21장 5-7절을 제안한 정성욱 교수(덴버신학교)는 “2026년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꿈꿔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나라가 강력하게 임하게 되길 기도해야 한다”며 “그때 대한민국은 치유와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한국교회 역시 새로운 회복과 부흥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학자 20인이 돌아본 2024년, 기대하는 2025년, 그리고 성경구절의 구체적 내용은 10인씩 두 차례로 나뉘어 게재되는 온라인 페이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참여 신학자들: 박조준, 민경배, 김영한, 이상규, 정일웅, 박명수, 정상운, 김재성, 안명준, 이상원, 최덕성, 황덕형, 노영상, 최대해, 서문강, 최더함, 서창원, 정성욱, 김구원, 박욱주(이상 호칭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