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러 페일린(Palin, 47) 알래스카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존 매케인 후보의 ‘뜻밖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다. 미 대선 하늘에 혜성처럼 등장한 페일린이 몰고온 효과가 대단한 수준이다.

페일린은 일단 공화당 역사상으로는 최초이고, 미국 역사상으로는 두번째 여성 부통령 후보라는 점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잃어야 했던(?)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어올 수도, 또 매케인 후보의 라이벌인 버락 오바마 후보보다도 3살이나 젊다는 점에서 올해로 72세를 맞이한 매케인의 연령상 약점을 보완하며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까지 움직일 수도 있다.

그동안 부통령 후보 예상 명단에 이름 한 번 거론되지 않던 정치적 무명인의 깜짝 데뷔라는 점도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어,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세간의 시야에서 잠시 사라진 듯했던 공화당이 전당대회에 앞서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도 한몫 하고 있다. 오바마가 어느 정도 전망됐던대로, 자신의 부족한 정치적·외교적 경험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조지프 바이든(Biden) 델라웨어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하고 발표했을 때보다 한층 더 큰 반향이다.

복음주의권에 큰 반향… “신뢰성 확인됐다”
“페일린, 복음주의가 요구하는 전 조건 충족”


▲지난 29일(현지시각) 존 매케인(McCain) 후보가 부통령 후보로 새러 페일린(Palin) 알래스카 주지사를 지명한 뒤, 페일린 후보가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www.johnmaccain.com

결과적으로 매케인의 선택이 현명했다는 것은 복음주의권에서만은 이미 분명해지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페일린 효과’는 그가 대선 승리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할 지지 기반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 놓았다.

매케인에게 반신반의하던 공화당의 핵심 지지 기반 보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페일린의 지명 이후 그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 복음주의 운동의 핵심 인사 제임스 돕슨 박사는 최근까지도 공화당의 이단아로 불려왔던 매케인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려 왔지만, 오바마의 ‘급진적’ 자유주의 성향 때문에 매케인을 고려에 넣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페일린의 지명 이후 포커스온더패밀리(FOTF)의 창립자인 돕슨 박사는 마침내 매케인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페일린은 공화당의 보수주의 기반을 확실히 안심시킬 수 있는 뛰어난 선택”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난 두 대선의 킹메이커 중 한 명이었던 돕슨 박사는 또한 “매케인의 이번 선택은 그가 연방대법원 판사 임명에 대해 했던 약속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보수주의자)에게 줬다”고 덧붙였다.

페일린은 확실히 보수 복음주의가 백악관에 바라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인물이다. 5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인 그녀는 10대에 하나님의성회(AG)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당시 담임목회자였던 폴 릴리(Riley) 목사는 페일린과 그 가족이 모두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해 왔다고 밝힌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교내 기독교운동선수회 리더를 맡기도 했으며, 지금은 오순절하나님의성회(PAG) 교단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페일린은 대다수의 보수 복음주의자들과 공통의 견해를 갖고 있다. 그녀는 올해 대선의 복음주의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결혼과 낙태에 반대한다. 특히 낙태 문제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 명백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녀는 막내아들이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임신 기간에 알았지만 끝내 출산을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다운증후군 태아를 가진 산모 10명 중 9명이 낙태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낙태에 반대하는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 줬다.

한 가지 더 복음주의자들의 눈길을 끌 경력은, 그녀가 미국 교계와 정계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창조론-진화론 논쟁에 있어서도, 스스로를 창조론 교육의 지지자라고 뚜렷이 밝혀 왔다는 것이다. 공개 토론석상과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더 명확히 밝힌 그녀의 견해는, 주 교육당국이 커리큘럼에 창조론을 필수 과목으로 포함시키도록 강제하지는 않겠지만 생명에 기원에 대한 유일한 이론이 진화론일 수는 없으며, 교육의 영역에서 두 이론 모두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통령 누구인가’=‘매케인이 누구인가’
SBC 목회자 80%가 “부통령 후보에 따라 매케인에 투표”


▲매케인 후보 내외와 페일린 후보 가족이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보내고 있다. 페일린 후보는 자신의 막내아들이 다운 증후군이 있다는 걸 임신 시기에 알고도 낙태를 선택하지 않았다. ⓒwww.johnmaccain.com

낙태와 동성결혼에는 반대하지만 자유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보수주의가 강한 공화당 본류에 합류하지 못한 채 경선 과정을 거쳐 온 매케인에게는 부통령 후보 지명이 오바마와의 정면 승부 전 ‘집 울타리를 보수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었다. 보수 복음주의를 이끌어가고 있는 미국 최대 개신교단 남침례교(SBC) 목회자의 80% 이상이 최근 조사 결과 부통령 후보에 따라 매케인의 지지를 결정짓겠다고 답한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복음주의권에서는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뚜렷한 보수 복음주의 성향의 마이크 허커비(Huckabee) 전 아칸소 주지사나, 미트 롬니(Romney) 전 메사추세츠 주지사 등이 적합자로 거론되기도 했고, 따라서 한때 매케인이 낙태 지지자인 조 리버맨(Lieberman) 코네티컷 주 상원의원이나 톰 리지(Ridge) 전 국토안보부 장관을 러닝메이트로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은 곧바로 복음주의권의 우려 표명으로 이어졌다.

릭 워렌(Warren) 목사와의 새들백교회 시민 포럼은 매케인에게 한 가지 교훈을 줬을 것이다. 매케인은 오바마와 반대로 이 포럼에서 동성결혼과 낙태에 대한 확고한 반대 입장을 밝혔고 이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에게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진 이번 부통령 지명이 단순한 부통령 지명의 의미 이상을 띠는 것은 복음주의가 마지막으로 매케인에게 준 기회에 그가 응답했다는 데 있다.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고려해 볼 것을 촉구하며 지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다름 아닌 SBC 윤리와종교자유위원회 리처드 랜드(Land) 목사다.

매케인의 현명한 선택을 기다려 왔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환영을 표하고 있다. 매케인의 열성적인 지지자인 미국적가치(American Values) 게리 바우어(Bauer) 회장은 이번 부통령 지명을 신앙적 가치관을 중시하는 유권자들의 표를 보장할 “그랜드 슬램”에 비유했다. 매튜 스테이버(Staver), 퀸 몬슨(Monson) 등을 위시한 보수 성향의 종교와 정치 전문가집단 역시 “페일린은 완벽하다. 이번 선택은 매케인 진영과 보수 복음주의 진영 양 쪽에 활력을 선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케인의 남은 과제… 복음주의의 새로운 얼굴들
“복음주의 고려하고 있다”는 지속적인 메시지 던져야


▲연설 장소에 모인 매케인 후보의 지지자들. 매케인 후보의 오랜 정치적 관록을 강조하는 ‘레디 투 리드(Ready To Lead)’란 글귀가 눈에 띈다. 그러나 복음주의권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 매케인 후보에게는 폭넓은 복음주의 아젠다에 대한 지속적 관심 표명이 필요할 듯하다. ⓒwww.johnmaccain.com

그러나 아직 한 가지 문제는 남아 있다. 그것은 동성결혼, 낙태 등의 이슈에서 복음주의 여론을 주도해 오던 전통적인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젊은 복음주의 세대가 올라탄 배는 개인주의적 도덕에서 사회주의적 도덕으로 천천히 그 항로를 변경하고 있다. 복음주의 유권자 중 오바마를 지지하는 비율이 10대에서 30대까지의 젊은 연령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오바마는 빈곤, 질병, 환경 등 복음주의의 넓은 아젠다들을 통해 그의 젊은 복음주의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 전당대회는 이들 새로운 복음주의의 얼굴들에게 신앙적 토론의 장을 제공했으며, 기독교, 가톨릭, 유대교, 이슬람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전례 없는 신앙적 열성 속에서 치러졌다. 일부 언론들은 “4년 전이라면 이것이 과연 민주당 전당대회인가 의심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매케인의 복음주의 유권자들 사이에서의 지지율은 전체 68%로 오바마의 24%에 비할 때 막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 68% 중 28%만이 매케인의 ‘강력한’ 지지자라고 답했다. 이는 4년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거의 75%에 달했던 지지율에 비하면 아직도 ‘열성’이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페일린 효과를 확신하면서도 이를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복음주의 지도층이 아닌, ‘풀뿌리’ 복음주의를 이루고 있는 교인들에게는 매케인과 페일린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이냐가 문제다. 이 ‘풀뿌리’ 복음주의의 힘은 이번 경선 과정에서도 이미 확증된 바 있는 힘이다. 제임스 돕슨과 같은 전통적 지도자들이 아직 허커비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던 때에, 그들은 아이오와 주에서 허커비의 대승리를 이끌어냈다.

복음주의의 세대 변화와 맞물려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한 양상을 띠며 진행되고 있는 올해 대선에서 그 어느 누구도 복음주의 표심의 향방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대선 후보들로서는 그만큼 폭넓어진 복음주의 아젠다에 더 큰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명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일단 매케인의 이번 ‘페일린 카드’는 복음주의권 전체에 하나의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것은 “나(매케인)는 여러분의 의견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메시지들이 더 활발하게 나와 주기를 복음주의는 기대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