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택 목사
(Photo : 기독일보) 김성택 목사.

저는 어릴 때 한국에서 카톨릭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또 저는 어려서 부터 자연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따라 다닌 한가지 질문은 “생명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을 때 KAIST에 진학해서 생명의 근원을 알아 보겠다고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를 캐내면서 씨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인간의 이성을 동원하면 알아내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연구소에 취직해서 연구원 생활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저에게는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고작 해야 생명 창조의 원리 한 부분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를 통해 미국에 주재원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습니다. 미국에 와서 직장 상사의 소개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카톨릭을 배경으로 한 저에게 교회는 낯선 곳이었지만 찬양이 참 좋았고 설교 말씀도 저에게는 많은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때 다니던 교회가 버클리에 있던 버클랜드 침례교회였는데 그 교회 한 성도님의 전도를 받고 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침례도 받았습니다.(태어 날 때부터 카톨릭에서 영세는 받았지만)

미국 주재원 생활 3년이 지나갈 즈음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에 불의의 교통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한국으로 돌아 온 저와 아내는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생활은 저에게 영적으로 힘든 기간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지금부터 5년 전 어떤 계기가 되어 다시 미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다시 온지 1년이 되던 어느날 연휴를 맞아 Lake Arrowhead로 바람을 쐬러 가던 차 안에서 김광신 목사님의 ‘율법과 복음’ 테이프를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말씀을 듣고 있던 저의 머리 속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늘 들어 왔던 복음의 말씀이었지만 제가 찾던 답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그 동안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근거로 생각했는데 내가 보는 모든 것이 보이지 아니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이 객관적 진리에서 하나님과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논리는 다를 수 있다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그 동안 생각지 못하고 살았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보니 나는 그 동안 내 속에 내 나름의 객관적인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의 뜻은 이럴 것이다 믿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깨달은 사실은 하나님의 관심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상하게 앉아서 자연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생명체의 원리는 어떻게 되고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같이 이세상에서 죽어가는 한 영혼의 구원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잘것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교만한 죄인이었던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갈급한 심령이 되어 그때부터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계속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눈물의 의미는 그 동안 그렇게도 하나님을 찾고 찾던 하나님께서 저를 만나주시고 제가 궁금해 하던 저의 삶의 여정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저와 동행하고 계셨음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까지 세상적인 연구에 몰두하던 제가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었을 때 저에게 있던 연구하고자 하는 열정은 하나님을 향한 연구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궁금하여졌고 말씀을 붙들게 되었습니다. 밤새 성경도 읽으면서 은혜 받는 시간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성경 뿐만 아니라 제 스스로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성경 지식을 넓혀 갔습니다. 한편으로 김광신 목사님의 ‘율법과 복음’, ‘성막론’, 성령론’ 말씀 테이프를 정리하여 바인더로 만들어 필요로 하는 목회자나 성도님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본 교회에서 목자로 있으면서 성도 양육 프로그램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지도자 대학 staff으로 봉사하면서 교재를 만들고 하는 가운데 많은 성경적 원리들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예언의 은사가 계시는 한 장로님으로부터 기도하시는 중에 목회자의 길로 갈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답답해 보이기만 하던 저의 삶에 하나님께서 길을 보여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집사님은 목회자가 될 것 같다”고 말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내 속에서 그런 desire가 강하게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세상의 모든 일들이 목회자의 길 외에는 가치없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신학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던 저에게 정명재 목사님의 권고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학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반젤 신학 대학’에서 반학기를 수강하였습니다.

저에게 늘 mentor가 없음을 안타까워 하며 기도하던 저와 아내는 우연히 수강하게 된 홍성훈 목사님의 마태복음 강해를 통해, 깊은 영성의 의미를 삶 속에서 깨우쳐 주시는 목사님의 멘토에 저희 부부는 큰 은혜를 받고 신학 공부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신 것 같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은혜 교회를 출석하면서 다른 교단의 신학교를 다닌다는 것에 부담감을 갖고 있던 터에 존경하는 홍 목사님을 mentor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더 저에게 헌신을 원하셨읍니다. 4년전 하나님께서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우리 가정을 이곳 워싱턴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셨읍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같이 모든 터전을 버리고 모든 인맥(심지어 신앙의 연결고리까지)을 버리고 새로운 개척의 길을 가게 하셨읍니다. 신학교 학장님으로부터 교단교회, 포도원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섬기기 시작하면서 주님께서는 많은 어려움의 과정을 통해서 목회자의 훈련을 쌓게 하셨읍니다.

많은 말씀을 주시면서 이 워싱턴 지역에 캘리포니아 은혜교회같은 선교하는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해 주셨읍니다. 김종필 목사님을 통하여 이교회에서 많은 선교사가 나오는 환상을 보여 주셨읍니다. 제 2기의 포고원교회를 만드시기 위해 먼저 담임목사님에게 선교사로서의 감동을 주시고 목사님의 주변을 모두 정리해 주심으로(작년에 한꺼번에 두따님의 결혼식이 있었음) 선교를 떠나는 마음을 편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포도원교회는 안디옥교회같이 선교하는 교회,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교회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