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생활 하면서 가져서는 안 되는 두 가지 자세는 무엇일까? 그 첫 번째는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해주시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하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상반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신학생이 있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기도만 한다. 이 학생의 문제는 뭐냐? 뭐든지 기도만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헬라어 시험 전날 이 학생은 산으로 향했다. 하나님을 향해 열심히 기도하였고 다음날 시험지를 받아보니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순간 이 학생은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지혜가 떠올랐다. 열심히 답을 적고 기쁨에 교실을 나왔다. 교수가 그 답안지를 모니 그 답안지에는 모든 문제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답을 보니 틀린 답은 아니기에 교수가 입장이 난처해졌다. 교수도 기도를 하였고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다. 다음날 시험지를 돌려받은 학생의 얼굴에는 기쁨이 사라졌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모든 답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100점, 그리고 학생은 아무것도 모르니깐 빵 점”

하나님을 믿는다는 핑계로 많은 신앙인들이 이 학생처럼 살고 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고백이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의 실천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반드시 삶 속에서 실천 되어져야 한다. 공부를 하면서 잘하게 해달라는 기도와 놀면서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전혀 다르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믿음이 성장하길 원하면 하나님은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그 과정이 바로 ‘고난’이다. 축복을 달라면 하나님은 축복을 받을 기회를 주신다. 그 과정이 ‘연단’이다. 대가를 치루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는 주문이 아니다. 기도를 응답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적의 현장 속에 거하여야 하며 그 기적을 우리 눈으로 보아야 한다. 역대 하에 기록된 말씀 중 위기에 처한 유다 왕 여호사밧은 온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기도한다.

기도 후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그 큰 무리를 인하여 두려워 말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내가 그들을 무찌르리라. 너희는 지금 내려가 그 군대에게로 가라 거기서 나의 구원과 승리를 보아라,” 유다 백성들은 그대로 하였고 전쟁 후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였다.

전쟁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전쟁에 참여 하는 것은 우리다. 싸움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승리는 우리가 한다. 영광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축복은 우리가 누린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기도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삶’은 산 속에서 숨어서 거인 골리앗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싸움에 직접 참여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쓰러지는 골리앗을 보는 것이다.

홍해는 모세가 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 만나와 메추라기도 하나님이 주셨다. 반석에서 샘물도 하나님이 주셨다. 그러나 모세의 기도 후에 주셨다. 지금도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지만 우리의 기도 후에 하신다. 지팡이를 드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다. 피곤하여 그 팔이 내려올 때 양팔을 들어줄 기도의 동역자가 절실히 이 땅에 필요하다. 모든 교회가 서로 내려오는 팔을 잡아주고 들어주는 하나님의 교회들이 되길 소망한다.


이주철 사관(james_0507@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