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영어로 말하면 Song of songs…즉 노래 중에 노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지요. 구약에서 표현되는 말들 중에서 이런 병행구가 자주 나옵니다. 지성소는 Holy of Holies라는 표현으로, 헛되고 헛되다…Vanity of vanities, 만왕의 왕…King of kings, 만주의 주…Lord of lords…이런 표현들이 최고의 찬사와 표현을 할 때 사용되는 말들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바탕으로 자신이 누렸던 남녀간의 사랑의 경험담을 다룬 일종의 궁중연애사입니다.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아주 사소한 감정의 변화와 표현까지 다루고 있는 것이 아가서입니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여러 가지의 과일이나 향, 나무 등에 비유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가 아가서를 묵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저와 여러분이 그런 하나님과의 사랑에 빠지기를 원하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사랑에 눈이 먼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 중에 여자친구랑 사귀는 녀석이 연애 편지를 쓰는 것을 많이 읽어 주곤 했습니다. 그 여자 친구가 보내오는 편지도 많이 봤구요…근데요…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자기가 하는 연애는 표현이 안될 만큼 대단한 것이지만, 남이 쓴 연애 편지를 보면 그렇게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연애 편지를 쓰면 그건 시적인 것이고 남이 연애 편지를 쓰면 그건 닭살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나누게 되는 아가서야 말로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사랑에 눈이 멀어서 쓰신 연애편지입니다. 앞으로도 그렇지만 어떻게 성경에 이렇게 낯뜨거운 사랑의 표현들이 과감하게 적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적나라한 표현들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가서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서로 벗었으나 부끄럽지 아니했다…하는 말과 같은 그런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향해서 나의 사랑아…라고 부르시는,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가서를 묵상하면서 더욱 깊이 있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실은 바로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사랑에 눈이 머셨다는 점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눈이 머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허락하셨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5:8에서 말씀하듯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 예수님이 왜 우리의 중보가 되실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 보실 때 예수님을 여과해서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가려주십니다. 그 은혜를 우리는 아가서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가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한 존재로 여겨주시는 분이십니다. 솔로몬이 사랑에 빠졌던 여인은 술람미라는 여인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술람미 여인이 그다지 아리따운 여인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최고의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햇빛에 그슬려서 거무스름하게 되었다…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른 처녀들이 보기에 솔로몬이 아껴주는 정도가 질투가 날 만큼이다…라는 말입니다. 햇빛에 그슬려서 거무스름하게 되었다는 것은 게달 족속이 유목 민족이었기 때문에 햇빛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게달의 장막이라는 말이 바로 검다라고 하는 게달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인데, 게달 족속의 장막이 바로 검은 색 염소 가죽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에 빠지면 물론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술람미 여인을 솔로몬이 어떻게 꾸며주고 있는가…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솔로몬이 보기에 술람미 여인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아끼고 아끼는 준마에 비할 만큼 그렇게 존귀한 자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향해서 사랑에 눈이 머신 분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여겨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 싶어 하시는 분…때를 따라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하물며 육신의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귀한 것으로 주시기 않으시겠느냐…바로 이런 하나님이시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바탕으로 자신이 누렸던 남녀간의 사랑의 경험담을 다룬 일종의 궁중연애사입니다.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아주 사소한 감정의 변화와 표현까지 다루고 있는 것이 아가서입니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여러 가지의 과일이나 향, 나무 등에 비유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가 아가서를 묵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저와 여러분이 그런 하나님과의 사랑에 빠지기를 원하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사랑에 눈이 먼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 중에 여자친구랑 사귀는 녀석이 연애 편지를 쓰는 것을 많이 읽어 주곤 했습니다. 그 여자 친구가 보내오는 편지도 많이 봤구요…근데요…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자기가 하는 연애는 표현이 안될 만큼 대단한 것이지만, 남이 쓴 연애 편지를 보면 그렇게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연애 편지를 쓰면 그건 시적인 것이고 남이 연애 편지를 쓰면 그건 닭살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나누게 되는 아가서야 말로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사랑에 눈이 멀어서 쓰신 연애편지입니다. 앞으로도 그렇지만 어떻게 성경에 이렇게 낯뜨거운 사랑의 표현들이 과감하게 적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적나라한 표현들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가서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서로 벗었으나 부끄럽지 아니했다…하는 말과 같은 그런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향해서 나의 사랑아…라고 부르시는,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가서를 묵상하면서 더욱 깊이 있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실은 바로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사랑에 눈이 머셨다는 점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눈이 머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허락하셨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5:8에서 말씀하듯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 예수님이 왜 우리의 중보가 되실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 보실 때 예수님을 여과해서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가려주십니다. 그 은혜를 우리는 아가서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가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한 존재로 여겨주시는 분이십니다. 솔로몬이 사랑에 빠졌던 여인은 술람미라는 여인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술람미 여인이 그다지 아리따운 여인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최고의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햇빛에 그슬려서 거무스름하게 되었다…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른 처녀들이 보기에 솔로몬이 아껴주는 정도가 질투가 날 만큼이다…라는 말입니다. 햇빛에 그슬려서 거무스름하게 되었다는 것은 게달 족속이 유목 민족이었기 때문에 햇빛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게달의 장막이라는 말이 바로 검다라고 하는 게달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인데, 게달 족속의 장막이 바로 검은 색 염소 가죽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에 빠지면 물론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술람미 여인을 솔로몬이 어떻게 꾸며주고 있는가…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솔로몬이 보기에 술람미 여인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아끼고 아끼는 준마에 비할 만큼 그렇게 존귀한 자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향해서 사랑에 눈이 머신 분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여겨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 싶어 하시는 분…때를 따라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하물며 육신의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귀한 것으로 주시기 않으시겠느냐…바로 이런 하나님이시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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