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면 존 스토트(John Stott)를 생각한다. 7월 17일은 80세의 존 스토트가 케직 수양회에서 마지막으로 설교한 날이고, 7월 27일은 존 스토트가 소천한 날이다. 그가 90세의 일기로 지난 2011년 7월 27일에 타계하자,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한마음으로 슬퍼했다. 존 스토트는 생전에 ‘개신교 교황(The Protestant Pope)’ 혹은 ‘복음주의 교황’으로 불렸다.

복음주의 내부에서 아무 반감없이 이 말이 유통된 이유는 존 스토트의 탁월한 성경 강해, 복음주의운동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 복음주의 안에서 그의 지도력, 그리고 높은 도덕성과 균형 잡힌 신학으로 전 세계 복음주의 진영에 끼친 엄청난 영향력을 공감했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빗 브룩스가 자신의 칼럼에서 만약 개신교에 교황을 뽑는다면, 존 스토트가 될 것이라고 말한 후에 복음주의 진영에서 자연스럽게 용인된 표현이다.

존 스토트의 타계 소식을 전했던 주요 언론과 기자들은 스토트의 90년 생애를 정리하며 그의 공로를 칭송했다. 영국 BBC의 로버트 피곳 기자는 존 스토트가 영국과 세계 복음주 중흥을 이끌었다고 전했고, 영국 가디언의 데이비드 터너 기자는 스토트를 성경의 권위를 철저히 따르는 급진적 복음주의자로 평했다. 미국의 복음주의 언론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팀 스타포드 기자는 존 스토트를 20세기 복음주의 건축가라고 칭송했다.

존 스토트 사역은 탁월한 성경 강해, 그리고 도심 속 목회, 그리고 현실 참여적 복음주의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는 자신이 성장한 고향 교회인 올소울즈 교회(All Souls Chuch)에서 부목사, 담임 목사 그리고 원로 목사를 역임했다. 평신도로 시작한 그의 신앙 여정은 자신은 물론 자신이 섬긴 올소울즈 교회를 20세기 후반 전 세계 복음주의운동의 중심으로 세웠다.

올소울즈 교회(All Souls Church)는 단순한 지역 교회를 넘어, 세계 ‘보수 복음주의(Conservative Evangelicalism)운동의 심장이자 중심축’이라는 독보적 위치를 점했었다.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에서 올소울즈 교회(All Souls Church)는 대표적인 '저교회(Low Church)'다. 영국 성공회에서 저교회는 의식과 전통을 강조하는 ‘고교회(High Church)’와 신학적 특징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복음주의적인 교회다.

존 스토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파도가 넘실대던 20세기 영국에서 복음주의 교회를 지켰다. 존 스토트가 공부했던 케임브리지 신학부는 당시 급진적 자유주의 신학의 온상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그가 보수적 복음주의(Conservative Evangelical) 진영의 대표주자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74년 복음주의 로잔대회에서 신학 위원장을 맡아 '로잔 언약' 초안을 작성했던 그는 20세기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기독 지성이었다. 그는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를 분리하지 않고 복음주의의 현실 참여를 선도했다. 그는 평생 청빈한 삶을 살았고, 50권의 저서 판매 수익금을 제3세계 선교와 장학 사업에 전액 기부했다. 얘기만 들어도 가슴 뛰는 근사한 삶이다.

존 스토트를 닮고 싶다. 그의 탁월한 강해 설교, 현실 참여, 후배 목회자 멘토 사역. 그리고 젊은 세대를 향한 사랑을 배우고 싶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나는 스토트보다 성경적 세계관을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소개한 사람을 본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복음주의적 세계관이 필요한 이 시대를 살며 그가 그립다. 존 스토트를 닮고 싶다.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대표).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