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승 교수
(Photo : ) 이연승 교수

기도는 한국 민족의 장기特技이다. 한국교회 부흥의 비결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기독교가 도입되기 전에도, 서낭당에 정화수 떠 놓고 새벽을 밝히는 기도, 이규보 같이 당대에 이름을 떨친 출중한 문장가나 선비들이 남긴 기도문 등, 시대를 초월하고 양천良賤을 넘나들며 도처에서 발견되는 기도의 흔적은 한국인의 정서 깊숙이 면면히 흐르는 기도의 고동소리를 들려준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 James S. Gale 은 삼국사기의 김부식이 쓴 글귀에서 한국인이 드리는 기도의 맥박을 짚어낸다. 고려에 스스로를 “두려움의 자녀”요 불초不肖한 자로 겸비하는 한 왕의 기도이다. 선조들의 찬란한 유산을 자신의 우매함으로 파손하지 않도록, 숙종의 낭자한 유혈로 암흑에 감추인 사람들의 원한을 풀며, 온 나라 백성에게 두루 덕치德治를 베풀도록 지성을 쏟아붓는 왕의 기도문이다.

사실 서구 기독교 역사에서도 고동치는 기도의 맥박을 짚어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생애 말기의 원숙함을 보일 때, 혹은 극한 고난 가운데, 놀랍게도 삼위일체의 오묘함을 기도의 감미로운 포옹으로 연결시키는 신학을 보여준다. 생티리 기욤 (윌리엄) William of St. Thierry 의 아가서 주석은 기도를 성령의 입맞춤으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과 함께 하는 진수성찬에로의 초대로 소개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대신 하나님의 자녀에게 살포시 다가오시는 성령님의 손을 잡으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긴밀한 담화를 나누는 만찬장으로 인도된다. 이러한 기도의 이해는 아득히 먼 구중궁궐의 족장 하나님을 향해 투사하는 종잡을 수 없는 욕망의 기복적 기도, 초자연적 영적능력을 구하는 주문, 또는 임박한 위기를 모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용적 종교행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기욤의 황금서신 the Golden Epistle, 신앙의 신비 the Enigma of Faith 가 일컫는 기도는, 응답여부에 시선이 고정된 기도의 효용성 논의와는 차이가 있다.

이제 장애자 자녀를 고쳐달라고 매번 반복하는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냐고 회의를 던지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라는 것이다. 히포의 어거스틴 Augustine of Hippo, 아빌라의 테레사 Teresa of Avila, 보나벤투라 Bonaventure, 제네바의 칼빈 John Calvin, 웨슬리 John Wesley, 존 플레쳐 John Fletcher, 잔느 귀용 Jeanne Guyon, 피비 팔머 Phoebe Palmer 등, 성령의 손에 이끌려 오묘한 삼위일체적 교제의 달콤함을 노래한 인물들이 있다. 1738 년 12 월 31 일 존 웨슬리, 찰스 웨슬리, 조지 휫필드와 60 명의 성도들은 밤새워 기도하며 송구영신을 맞는 중이었다. 새벽 3 시, 1739 년 1 월 1 일의 일을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성령 하나의 권능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우리들은 넘치는 기쁨의 강에서 더러는 환호성을 울리고, 더러는 마루 바닥에 쓰러졌다. 하나님의 임재에 경외와 놀라움에서 깨어나 한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을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당신은 주님이십니다.” 그렇게 런던의 한 모퉁이 페터레인의 철야기도는 역사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생애 말기의 원숙함이란 어쩌면 불필요한 치장이나 완장을 떨구어 낸 시기, 세상 거품이 빠진 후, 액세서리의 퇴색을 직면한 연륜에서 나오는 순수함일지 모른다. 그러나 굳이 생의 말이 아니라도, 극심한 고난을 통과하며 생의 핵심요소를 더듬을 때 기도의 광채가 선명해지기도 한다. 기도는 안식처일 뿐 아니라, 생의 최고 가치로 부상한다. 미국의 정신적 기원은 단연코 극심한 고난을 통과한 청교도에 있다고 한다. 영국 국교도가 버지니아에, 가톨릭이 플로리다에 100 년 먼저 도착했고, 성당도 세웠지만 그들을 자랑하지 않는다. 상업적 관심이 우선시되고, 종교는 부차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신앙으로 인해 핍박을 받은 청교도는 미대륙 정착 직후 교회를 세웠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자녀에게 경건한 신앙을 심겠다는 열망으로 척박한 미대륙에 길을 뚫었다. 메이 플라워 선상에서 두 달여 파도에 출렁인 후 육지에 내린 102 명은 겨울이 지나자 절반이 시체로 변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고자 죽음을 불사하며 거친 항해에 몸을 던진 청교도의 갈망은 광야에 길을 내고 꽃을 피우는 보배요 자원이었다.

1630 년 청교도인들이 보스톤에 닻을 내린 후 교회를 세운 이듬해, 영국 옥스포드 대학을 갓 졸업한 존 엘리엇 John Eliot 이 이 행렬에 동참했다. 청교도인 엘리엇은 기도가 인생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극명하게 표현하였다. 인디언들을 위한 정착촌, “기도하는 마을 Praying Towns”을 세우고, 그 이름에 그의 갈망을 담았다. 거룩을 히브리어로 카데시 qodesh, 헬라어로 하기오스 hagios 라 했던가. 둘 다 구별됨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전적타자”라 하던가. 엘리엇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구성요소가 무엇보다 첫째 구별됨이요, 둘째 기도요, 셋째 공동체임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인디언을 구별된 기도 공동체에 초청하기 시작했다. 20 년 지나자 14 개로 늘어난 기도하는 마을은 2000 명가량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내틱 Natick, 뉴튼 Netown, 말보로 Marlborough 등에 기도공동체가 세워졌고, 성경의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라는 이름의 마을 지도자가 세워졌다. 엘리엇은 인디언의 알공퀸 Algonquin 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1663 년 출간하였다. 이들 인디언들은 기욤의 기도를 향유했을까? 적어도 그 지향은 19 세기 중반에 등장한 인디언 보호구역 Indian Reservation 과는 판이했다.

비둘기가 아닌 미사일이 중동의 창공을 뒤덮고, 스페인 한 복판은 검붉은 불길이 치솟으며, 프랑스 남부가 시커먼 잿더미로 변하는 21 세기를 살고 있다. 이 때, 기도하는 인물들의 삶과 신학이 유난히 흥미롭다. 명성을 구하지도 않았지만, 명성 너머 천상의 웅숭깊은 질서를 더듬는 기도, 영원한 진리를 향한 이들의 가성비 없는 기도의 갈망이 시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교파를 초월하는 통찰을 분여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하는 존재의 향연, 순결한 능력의 번짐, 변화산의 아름다움에 참여하는 영광이었다. 그 거룩을 갈망하고, 그 아름다움에 흠뻑 젖는 일, 하나님의 고통과 비탄에, 그 섭리에 동참하는 일이 기도이다. 가공할 심판과 우주적 역사의 웅장한 파노라마를 조망하고,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의 치밀한 구원계획, 새하늘과 새 땅을 일구는 그 결의에, 영원한 진리와 생명을 보호하는 그리고 시대를 꿰뚫는 경륜을 응시함이 기도이다.

가시적인 세계를 넘어 천상의 분주한 다스림을 주시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마고 데 imago dei 를 온전히 이루는 길고도 고된 여정에 끝없는 활력을 지탱하는 비밀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기도는 천상과 지상을 잇고 천년의 역사를 잇는 녹슬지 않는 금줄이요 금빛 찬란한 휘광으로 둘러싸인 성찬이다.

17 세기 기도하는 마을의 위치와 Natick 의 첫 엘리엇 교회
(Photo : ) 17 세기 기도하는 마을의 위치와 Natick 의 첫 엘리엇 교회

*이 원고의 내용은 전적으로 저자의 것입니다.

이연승 교수는 센트럴 신학교의 가르침과 보스톤 대학 세계기독교 선교연구센터에서의 연구를 병행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