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세 한국전쟁 참전용사 잭 플로이드(Jack Floyd) 씨가 70여 년 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한국전쟁 당시의 유품과 사진을 미국 텍사스 남부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동포 이훈구 장로에게 전달했다. G2G 선교회 대표인 이 장로는 기독교 신앙 칼럼니스트이자 신앙 에세이·기독교 신앙 소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잭 플로이드씨는 고령으로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져 딸이 살고 있는 미주리주로 이주를 앞둔 그는, 평생 간직해 온 한국전쟁의 기억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약 2년 전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미국 텍사스 남부에서 26년째 살고있는 이 장로의 사무실에 어느 날 한 노신사가 찾아왔다.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 해병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만남은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평소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던 이 씨는, 플로이드 씨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평화의 사도(Ambassador for Peace)' 메달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기관과 협력하며 전달을 도왔다. 1년전 메달을 전달받던 날 플로이드 씨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나를 아직도 기억해 준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맙습니다." 그 이후 두 사람은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 갔다. 플로이드 씨는 종종 이 씨의 사무실을 찾아와 한국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우연히 같은 헬스장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운동 중에도 서로 안부를 나누며 가까운 이웃처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플로이드 씨는 딸이 있는 미주리주로 이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미 딸이 텍사스를 찾아와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정리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이 장로의 사무실을 직접 찾았다. 그의 손에는 오래된 서류파일 하나가 들려 있었다. 서류 안에는 70여 년 동안 한 번도 버리지 않고 간직해 온 한국전쟁 당시의 자료들과 사진들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1951년 안전통행증(Safe Conduct Pass)이었다. 북한군과 중공군 병사가 유엔군에 투항할 경우 생명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이 통행증은 당시 실제 심리전에 사용됐던 귀중한 역사 자료이다. 또한 북한 측이 제작한 영문 전단과 유엔군이 제작한 한글 전단도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특히 유엔군이 제작한 전단 가운데에는 '한시조-한핏-한민족!'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종이는 누렇게 변하고 가장자리는 닳아 있었지만, 당시 치열했던 심리전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52년 한국에서 사용된 미 해병 제1사단 채플 예배 순서지와 전사한 장병들을 기리며 진행한 헌당예배 프로그램도 보관돼 있었다.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전우들을 추모했던 미군 장병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다. 이 밖에 미 해병대 만찬 프로그램과 식사 메뉴, 미 해군의 전통적인 적도 통과 의식을 기념하는 적도 통과 증서(Shellback Certificate),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촬영한 여러 장의 사진도 함께 전달했다.
빛바랜 사진 속에는 젊은 해병 시절의 모습과 전우들, 그리고 전쟁 당시 한국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래된 종이 자료와 사진들은 한 젊은 미 해병이 직접 보고 경험했던 한국전쟁의 기억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플로이드 씨는 이 자료들을 7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버리지 않았다.
열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대한민국을 잊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 모습을 늘 기쁘게 지켜보았고, 한국전쟁 참전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한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오히려 자신이 더 감사하다고 말하곤 했다. 평생 간직해 온 자료를 전달받은 이 장로는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는 플로이드 씨와 함께 찍은 사진,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한 평화의 사도 메달 사진을 넣고 다음과 같은 감사의 글을 담은 기념 액자를 제작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용기와 희생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액자를 받아 든 플로이드 씨는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여러 차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두 사람은 비록 앞으로는 멀리 떨어져 지내게 되지만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계속 안부를 나누기로 약속했다.
이번에 전달받은 안전통행증과 심리전 전단, 미 해병 제1사단 채플 예배 순서지, 헌당예배 프로그램, 미 해병대 만찬 프로그램, 적도 통과 증서,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촬영한 사진들은 단순한 오래된 유품이 아니라, 이 자료들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청춘을 바친 한 참전용사의 삶을 증언하는 살아 있는 역사이며, 한국전쟁 당시의 전장과 참전 장병들의 생활, 전우애와 신앙, 그리고 희생을 다음 세대에 전해 줄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수많은 한국군과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참전용사들이 점점 우리 곁을 떠나고 있는 지금, 그들이 간직한 기억과 자료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제 플로이드 씨는 오랫동안 살아온 텍사스를 떠나 딸과 함께 미주리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비록 거리는 멀어지지만, 한국전쟁이라는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우정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가 마지막까지 간직하다 건넨 것은 낡은 종이와 빛바랜 사진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바친 젊은 날의 희생과 한국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 그리고 70여 년의 세월을 넘어 다음 세대에 전해질 한미 우정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이훈구 장로는 앞으로도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증언과 사진, 유품 등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에 계속 관심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