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일
(Photo : ) 이성일 목사(온타리오 연합감리교회)

사택으로 거처를 옮긴 지 어느덧 세 달이 되어갑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입니다. 사택에서 교회로 향하는 그 짧은 길은 이제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만큼 당연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 늘 서던 그 신호등 앞에서 평소와는 전혀 다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건너편 횡단보도의 빨간 손바닥 신호를 포함해, 내 눈앞에 펼쳐진 붉은 신호등이 무려 10개나 들어온 것입니다. 그동안 수십 번, 수백 번 멈춰 섰던 곳이었습니다. 어제도 그 자리에 있었고 그저께도 나를 멈춰 세웠을 그 신호등들이, 왜 하필 오늘 새벽에야 비로소 '10개'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제 가슴에 박힌 것일까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습니다. '혹시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 신호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입니다. 붉은 불빛은 '멈춤'을 뜻하지만, 동시에 '주의'와 '경고'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빨간 손바닥 신호는 마치 "이제 그만 멈추고 네 자신을 돌아보라"고 명령하는 하나님의 손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짧은 신호 대기 시간 동안, 저는 제 영적인 상태를 급히 점검해 보았습니다. 사택 이사 후 환경에 적응했다는 핑계로 찾아온 영적 나태함, 사역이 익숙해지면서 은근슬쩍 고개를 든 교만함,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새벽 제단이 형식이 되어버린 안일함이 거울처럼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더 깊은 영적 침체의 늪으로 빠지기 전에, 10개의 강렬한 레드 라이트를 통해 브레이크를 걸어주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던 붉은 신호등이 보이게 된 것은 내 시력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무뎌진 내 영혼을 깨우시려는 주님의 세밀한 간섭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특별한 기적이나 음성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매일 지나는 길 위에서도, 무심히 지나치는 사물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오늘 새벽, 저를 멈춰 세운 10개의 레드 라이트는 단순한 교통 신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저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방황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사랑의 신호'였습니다. 나태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금 겸손함으로 무릎 꿇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길목마다 주님이 켜두신 신호등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지금 어떤 색의 신호가 들어와 있습니까? 혹시 잠시 멈춰 서서 영혼의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레드 라이트'는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