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교회 이름을 이렇게 지을 생각을 했을까? ‘명사’ 나 ‘형용사’를 교회 이름으로 취하는 일반적 형태 대신, 이 교회는 ‘주어와 서술어’를 교회 이름으로 삼았다. 이 파격성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최근 tv기독일보 간증 프로그램 <늘 새롭게>에 출연해 아이엠처치의 정종원 목사가 풀어놓은 이야기 속에 그 단서가 들어 있었다.
음악이 지닌 힘 중의 하나는, 잊고 있었던, 과거의 페이지 한 켠에 접어 두었던 기억들이 마음 속 서랍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
'꿈이 있는 자유' 의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부드러운 목소리에 담긴 서정적인 가사가 들려오면, 사람들은 20대 때, 캠퍼스를 누비며 이 노래를 찬양했던 그 시절의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곤 한다.
일상의 언어로 스며들다
90년대 중반, 한국 CCM은 뜨거운 외침이 주를 이루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정종원 목사와 한웅재 목사가 결성한 '꿈이 있는 자유'는 달랐다. 그들은 '복음'을 서정적 이미지와 일상의 언어로 담아냈다.
교회 용어 대신 '아침', '바람', '나무', '소원' 같은 단어들이 가사를 채웠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소원> 가사 중) 이러한 가사는 수직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뻗어가던 당시의 찬양 문화에, 수평적으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언어'를 선물했다.
평택 시골교회에 복음과 비전을 들고 찾아온 청년들
“제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중학교 때이다. 저는 모태신앙은 아니고, 저희 가정에 아프신 분들이 계셔서 굿도 했다. 친구 어머님이 저희 어머니를 전도하셨고, 친구가 저를 교회에 전도했다.”
집 바로 앞 5m에 미군 철책망이 있던, 기지촌 마을, 대학 진학은 1년에 한두 명이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낙후된 곳에 어느날 카투사 군인 20여 명이 찾아왔다. CCC와 내비게이터 등 캠퍼스 선교단체이 그들의 발걸음을 시골교회로 향하던 때였다.
“중학교를 올라간지 얼마 안되었을 때, 카투사 20여 명이 시골교회에 와서 봉사를 하게 됐다.”
그는, 그들의 섬김과 봉사를 통해, 출구를 발견했다.
“청소년 쯤 되면, 많은 경우 꿈이 꺾였다. 기지촌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부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농사를 짓거나, 부대 안에 들어가 어떤 일에 종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학을 1-2명 정도 가면 그게 큰 뉴스가 됐다. 그만큼 소망을 찾기 힘든 어려운 동네였는데, 저희 교회에서 50명 이상의 목회자·선교사가 나왔다. 지금은 전 세계 각지에서 사역하고 있다. ‘꿈이 있는 자유’라는 사역을 하게 된 것도 사람도 꿈을 만나면, 자유의 날개를 갖는다는 산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교회 음악을 고민하다
음악 사역으로의 여정은, 중학교 2학년, 선배 집에서 들은 ABBA 음악이 계기가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음악을 듣는 선배 얼굴에 번진 환한 표정이었다.
ABBA의 음악을 듣는 선배의 얼굴에는 교회에서는 보지 못했던 환한 표정이 번졌다. 정종원 목사는, ‘교회도 만들어 내지 못한 표정을 음악이 만들어 낸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에 대해 불만이 끓어 올랐다. 당시 교회에 부를 음악이 많지 않았다.
“하나님, 은혜를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왜 교회엔 이런 노래가 없을까?”
그날 밤, 그 기억은 그를 기도로 이끌었다. “하나님, 교회에 노래를 일으켜 주세요!”
그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셨고, 그후로 가는 곳 마다 작곡에 대해 힌트를 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첫 작곡은〈나의 안에 계신 주님>. “나의 안에 계신 주님은 항상 찬송 제목이 되고, 전할 소식이 된다. 주님이 내게 행하신 일은 내가 감출 수 없다. 내가 사는 것은 예수님 때문이다”라는 그 자신의 소박한 고백이 곡이 됐다.
꿈에서 누군가 노래를 불러주고, 곡이 떠오르면 자다 일어나 적었다는 그는, 지금까지 100여곡의 곡을 작곡했다.

I AM Church, “내가 교회다”라는 이름의 시작
아이엠처치를 시작할 때, 그가 고민했던 것은 '교회의 진정성'이었다.
“세상이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구나. 그러면 교회는 이 진정성에 대해 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저는 미국의 큰 교회에서 예배 사역을 하다가, 저와 함께 사역했던 사람들이 방황하는 모습을 보며 괴로웠다. 그때 그렇게 괴로워하던 성도들이 식당에 가면 너무 행복해 하더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까 속에 있는 게 나오네, 그리고 행복해 하네, 라고 생각하며 식당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니까 ‘하나님, 저는 진짜, 교회 안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계속 마음을 주시고 싸인을 주셨다.”
“사람의 생각과 인간적인 그런 계획으로 시작하는 교회들을 봤을 때 다 고전하고 갈등하고 또 인간적인 생각으로 결국은 견디지 못해서 교회가 어려워지는데 하나님 인도 받고 싶습니다. 한 달 동안 전 집에만 있겠습니다. 그럼 열 가정을 보내 주세요. 그런데 열 가정이 왔다.”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가 고민 끝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교회’다. ‘그런 삶을 결단하는 그런 교회가 되자’라는 의미에서 아이엠처치라는 이름이 나왔다.

뇌경색... 끊어진 신경을 대체할 새로운 신경 회로
5년 전 성탄절 이틀 전, 팬데믹 초창기. 갑자기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병원은 2주 뒤에나 진료 가능했고, 골든타임을 훌쩍 넘겼다.
병원에서 의사는 “이미 상황이 종료됐다”며 약물투여도, 아무 조취도 취하지 않았다. 오른쪽 신경이 모두 막혔고, 그저 살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어요. 뇌경색 후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바로 이때라는 거예요. 뇌는 내가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반복하느냐에 따라, 끊어진 신경 대신 다른 신경 경로를 새로 만들어 냅니다. 마비된 오른쪽으로 계속해서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죠.”
“문제는 마비된 쪽은 원래 정보를 줄 수가 없으니, 건강한 왼쪽을 ‘원본’으로 삼아서 똑같이 따라 해야 한다는 거예요.왼쪽이 움직일 때마다 오른쪽도 함께 따라 하려고 애쓰면, 그 신호가 조금씩 오른쪽으로 입력이 되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뇌와 가장 가까운 어깨나 팔꿈치 쪽부터 서서히 회복이 시작되고, 점점 아래로 내려오죠. 그 당시만 해도 제 발목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발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3개월 만에 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교회의 몸 된 지체의 원리를 깨달았다.
“마비된 지체가 회복되려면 건강한 지체가 계속 움직여 정보를 줘야 한다. 잠든 영혼을 깨우려면 제대로 된 모델, 즉 살아 있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
교회 초기에 5년 만에 세운 첫 집사 세 명.그중 한 명, 40대 초반의 스데반과 같은 신실한 형제가 최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온 성도가 함께 울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다.
“정말 스데반 같던 형제가 너무 늦게 발견된 암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성도 모두가 함께 아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진정성을 세우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들을 통과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예배자의 군대를 세우는 교회로
I AM Church는 16년의 시간을 지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준비 중이다. 특히 최근 사역자들에게 “새 노래가 부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제가 중학교 때 받았던 은혜가 다시 사역자들에게 일어나고 있어요. 저희 교회 함께 사역하는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막 새 노래를 부어 주시는 거예요. 곡을 쓰면 금세 나오고, 하나님이 예배의 세대를 일으켜 세우시는 느낌입니다.”
정 목사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받은 비전, “예배자의 군대가 일어나는 것”을 소개하며, “젊은 세대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말씀으로 무장한 군대로 서는 것, 그 일을 준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