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리스타트 교회 담임 박형용 목사
(Photo : ) 달라스 리스타트 교회 담임 박형용 목사

<만나보기> 성경의 인물들을 만나보며 내 인생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는 이야기….

세번째 이야기: 고난 당하는 중에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욥의 이야기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 욥기 40장 1-4절

오늘 우리가 다시 만나 볼 사람은, “고난”이라는 말로 대표 지을 수 있는, “욥”이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욥”이라는 사람을 생각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고난”과 “인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욥기라는 성경을 읽어보면 42장이라는 긴 분량의 책 속에 욥이라는 사람이 받은 어마어마한 고난과 어려움이 기록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욥에게 임한 재앙은 상상 할 수 조차 없는 심각한 고난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욥기 1장을 보면 욥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욥기 1장 13절부터 19절을 보겠습니다.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하루 아침에 욥은 전 재산과 모든 종들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천재지변으로 인해서 모두 다 죽임을 당했죠. 그런데 욥의 안타까운 사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욥기 2장 7절에서 9절을 보면, 욥의 상황이 더욱 더 나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의 온 몸에는 악성 종기들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고름으로 가득찬 그의 피부는 기와 조각을 가지고 긁어대야만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곪아 터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욥을 힘들게 한 것은, 자신에게 하나 남은 아내 마저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리라며 욥을 책망하고 떠났다는 사실 이었습니다.

게다가 4장 부터의 내용을 보면, 일평생 가장 의지하고 살았던 친구들이 문병을 와서는 욥의 마음을 긁어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욥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이며, 차마 친구관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온갖 악독한 정죄의 말로 욥을 코너로 몰고 갔습니다.

이 잔인한 논쟁과 정죄의 싸움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까? 욥기 4장부터 31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욥을 정죄하는 세 명의 친구와 더불어서 욥이 오랫동안 논쟁을 벌이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각자가 하나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정의를 가지고 욥에게 벌어진 일을 해석하고 정의 내리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에 대해서 다툼을 벌이게 되죠. 그런데 그렇게 논쟁을 벌이고 있던 욥과 친구들 사이에 드디어 하나님이 개입을 하십니다.

욥기 38장 1절부터 2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그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이루어 내시는,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욥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이야기를 하십니까? “그 동안 고생했다~내가 너에게 고난을 준 이유는 사실 이런 이유 때문이야~” 이런 식으로 욥을 달래주시고 고난의 이유를 밝혀 주셨나요? 아닙니다. 욥기 38장부터 41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욥이 대답할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을 욥에게 퍼부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욥기 38장 3절부터 7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이 뿐 아니라 욥기 38장 이후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내용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욥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질문 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이 땅을 운행하고 계시고, 하나님의 섭리가 이땅을 이끌고 계시고,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획이 천지 만물을 운행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욥기 40장 1절과 2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지금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정의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조금 더 쉽게 설명 하면 욥은 하나님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전에 읽었던 욥기 38장 2절에서도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 라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그 짧은 생각과 인생의 경험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욥기 38장 16절부터 21절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욥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리기 위해서 이렇게 책망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

욥은 하나님의 질문들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단 한 마디도 단 한 개의 질문에 조차 답변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욥은 하나님을 알기에는 너무나 작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욥기 40장 3절에서 5절을 보겠습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전에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을 때에는 욥 스스로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정의 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왜 불합리 한 일인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이 배운 것 안에서 불평을 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죠.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을 욥이 직접 만나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듣게 되었을 때 욥이 보인 반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앞에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욥기의 마지막 부분인, 욥기 42장 1절부터 5절을 보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게 된 욥이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오늘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인데, 그 중에서도 5절의 말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라는 욥의 고백입니다.

히브리 인들의 사고에, “눈”이라는 신체 기관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은 지식”을 가리킬 때 쓰이는 신체 기관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때 먼저 눈으로 보고 그것을 배운 뒤에 따라하는 것 처럼, 히브리인들은 눈이라는 신체기관을 이해 할 때, “경험으로 얻는 지식”의 개념으로 인지합니다.

그러니 지금 욥이 이야기 하는 것은 이런 말입니다. 내가 전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냥 귀로만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삶 속에서 직접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진짜 어떤 분인지 삶으로 배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다른 조상들의 이야기로 들을 때는 귀로만 들었는데, 내가 삶으로 하나님을 직접 배워보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거죠.

성경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거룩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울 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거룩하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 걸까요? 가장 우선적으로 “거룩하다”는 말은 다른 것들과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된다는 뜻이죠. 창조주 하나님은 다른 피조물들과 비교할 수 없는 차원에 거하시는 분이며, 우리의 생각과 능력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차원에 거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불평과, 하나님의 일하심의 역사로 가득차 있습니다.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했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했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과 힘으로 그들을 건져 내셨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2절과 13절을 보면, 아주 정확한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어떤 분인지, 그 분이 어떤 능력을 행하시는 지 보라는 겁니다. 그 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며,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이전에 야곱과 이삭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우리 조상들에게 이렇게 하셨더라~~~” 라는 말을 귀로만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서 행하시는 구원을 “눈으로 직접 보라” 고 이야기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이야기도, 욥의 이야기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성도들이 고난 속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일 평생 신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는데 암에 걸리고, 정직하고 충성되게 사업장을 유지하려 했는데 악한 사람들에 의해서 사업이 문을 닫게 되고, 가족에 의해서 핍박을 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며, 기도하고 부르짖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 어째서입니까?”라고 부르짖지만 이 고난의 시간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낙심하고는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하나님이 정말 나의 삶을 돌보고 계시다면 적어도 평생동안 하나님을 경외한 나와 내 가정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 안되잖아요? 하나님이 정말 선하신 아버지라면 사랑하는 자녀에게 이런 시간을 허락하시면 안되는 거잖아요?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의 신앙은 침체됩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눈물이 말라갑니다. 그리고 각자의 대답과 답변을 가진채로 하나님을 정의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해석하려고 합니다. 고난의 시간이 길어지고 사태의 심각성이 심각해 질수록,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답답함이 짙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시편 46편 10절은 말합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욥이 고난중에 있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에도,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고난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죽이려고 달려오는 바로의 군대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협하는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분들, 도저히 감사 할 수 없는 시절을 지나가고 있는 분들은 오늘 성경이 이야기 하는 내용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이 고난의 시간은, 지금까지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만히 서서, 그 분이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다는 신앙의 내용을 배울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무너지지 마십시오. 여전히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여전히 하나님은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 시간을 통해서 자신이 계획하신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것입니다.

다시 시편 46편 10절과 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만히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게 될거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 일을 해서, 우리에게 닥친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우리가 알게 될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신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고난의 순간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찬양을 받아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의 시간 속에 결코 혼자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약속하신대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실 것입니다.

혹시 감당하기 힘든 고난 중에 계신 분이 있습니까? 어려움 가운데 계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펴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실 것입니다.

욥기의 마지막 장에는 욥의 멋진 신앙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기 42장 5절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하나님이 끝내실 때 정확하게 끝이 났습니다. 그것을 욥이 바라보았기에 욥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고난의 시간은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입니다.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그 순간을 바라 볼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우리 모두가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감사와 기쁨으로 이 고난의 시간을 통과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