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우리 군의 실사격훈련을 멈춰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군은 러-우 전쟁에 참전해 실전 전투 경험을 쌓고 있는데 국군에 포 훈련 중단을 요구한 건 우리의 냉엄한 안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위험천만한 발상이란 비판이 나온다. 

정 장관이 우리 군의 실사격훈련 중단을 요구하겠다고 한 발언은 이미 휴짓조각이 돼 버린 9.19 남북 군사합의를 복원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 군대가 실사격훈련을 멈추면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호응해 오지 않겠냐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남북군사합의를 깬 건 북한이다. 북한은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 백령도·연평도 등을 겨냥해 5년간 총 약 3400회 포문을 개방하고 하루 5회 해안포 사격을 하는 등 무려 4000번 넘게 합의를 위반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 당시 군 당국은 사진·영상 증거물을 관련 부대에서 보고받고도 북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국회 국방위나 국민에게 일절 알리지도 않았다. 

북한이 밥 먹듯이 위반한 9.19 군사합의를 지키느라 호구로 전락한 게 문 정부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위반 사례를 계속 지적하자 지난 2023년 11월 23일, 북한이 합의를 전면 폐기해 버렸다. 이걸 이재명 정부가 다시 되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다. 북한이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군사합의를 복원하자고 우리 군에 포사격 훈련을 못 하게 하면 군대 자체가 무력화된다. 지난 연평도 포격 때처럼 북한이 포를 쐈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건 물론이다. 

북한은 전략 미사일과 방사포를 쏘고 핵무기도 완성 단계인데 우리 군에 기본적인 사격훈련도 하지 말라는 건 도대체 무슨 의도인가. 북한이 뭘 하든 가만히 앉아서 당해도 좋다는 뜻인가. 

정 장관은 북한 김정은이 주장한 남북 '두 국가론'과 흡사한 주장을 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한때 대통령 후보까지 한 사람이 북한 김정은의 주장을 똑같이 따라한다 라고는 차마 말하지 않겠다. 남북이 서로 교류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게 좋지 않겠냐는 선의로 받아들이고픈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발설하는 건 곤란하다. 장관으로서 헌법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이고 북한 땅은 수복해야 할 우리의 땅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이 헌법을 깔아뭉개고 북한 김정은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걸 정상으로 볼 수 없다. 

정 장관은 또 독일 방문 중에 베를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의 하나가 돼 버렸다"고 발언해 구설수에 올랐다. 정치권에선 통일부 장관이 국제적으로 북한을 대변하고 다닌다는 비판이 쇄도했다.논란이 일자 대통령실 위승락 안보실장이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즉각 해명에 나섰다. 논란이 이 대통령의 대북관으로 연결돼 국민적 의구심이 확산될까 봐 조기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 대통령도 지난 23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이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했다. 북한을 향해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한 거다. 

이 대통령이 유엔 총회 석상에서 북한에 화해 메시지를 전달한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북한과 전 세계를 향해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힌 선언적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영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이 대통령 말대로 남북이 평화롭게 교류하면 저절로 비핵화가 이뤄지나. 그보다 북한의 비핵화 없이도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걸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다는 건가. 

통일부 장관이 '두 국가론'을 언급하고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이를 부인하는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현 정부의 대북 정책 노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두 국가론'을 용인하는 건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남북 간의 평화와 공존을 말하는 건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군대에 포문을 닫으라고 하는 건 안 될 말이다. 군사훈련은 비단 북한뿐 아니라 안보에 위협이 되는 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최후의 자위 수단이다. 이걸 중단하는 건 완전한 평화와 통일이 이뤄진 후에나 가능하다. 

군대 훈련에 통일부 장관이 간섭하는 듯한 모양새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통일부 장관이면 남북의 평화 통일을 위한 정책에나 신경 써야지 국방·안보 관련 사안에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건 정치적 언행으로 비칠 수 있다. 

북한은 핵무기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면서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들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남북의 평화 공존이 아니라 언제든 핵무기로 한반도 남쪽을 쓸어버리겠다는 정복 야욕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런 호전적인 집단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각료의 입에서 사실상 우리 군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말을 듣고 싶은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이어 4대 세습 독재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그 속에서 자유를 속박당한 채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부지하는 게 오늘 북한 주민들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북한 주민이 당하는 최악의 인권 침해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김정은의 심기만 살피는 듯하다. 평화는 엎드려 구걸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지난 문 정부 때 똑똑히 보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