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예기치 않던 혼란과 갈등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국가적인 일 갖고도 속상해 죽겠는데, 신앙적으로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와서 많이 괴롭다. 오늘 절친 한 명과 잘 모르는 이로부터 각각 문자를 받았다. 어떤 이의 설교를 듣는데 평소 자기가 알아 왔고, 나한테서 배워온 신앙적 진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면서 영상을 보내왔다. 들어보니 말 그대로였다. 몇 시간 뒤 또 다른 이가 문자와 함께 A4용지 한 장의 글을 보내왔다.
[2] 같은 설교를 들었는데,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어서 치를 떨었다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가 보낸 글을 읽으면서 더욱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했다.
2007년, 존 맥아더가 쓴 ‘Truth War’란 원서가 생명의말씀사에서 번역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해에 ‘10대 책’으로 선정되어, 이후로 금딱지가 붙어 출간되었던 내가 번역한 책이다. 바야흐로 ‘진리 전쟁’ 시대를 살고 있다.
[3] 정치적으로만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깊은 혼돈의 늪 속에 헤매고 있다. 신학교들에 자유주의 물결이 점점 깊이 스며들어 가고 있고, 그 와중에 학생들은 무엇이 올바른 진리인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어릴 때나 젊은 시절에 신앙적으로 회의적이었을 때가 누구에게나 다 있다. 성경을 읽고 배우면서 하나님이나 성경에 대해 한두 번 의심을 해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4] 물론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불의한 자들을 향한 그분의 대처 방법에 관해서의 의심과 실망이 있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젊을 때 회의(懷疑)는 사서라도 한다’라고 말이다.
똥은 먹어봐야 그 맛을 알아 다시는 냄새도 맡기 싫어하는 법이다. 신앙도 처음엔 회의적이었다가 철이 들면 이전보다 더 보수주의자가 되는 걸 본다.
[5] 미국의 유명한 작가 중에 그런 일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있다. 미국 남부의 엄격한 교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남성이 있다. 어린 시절, 그는 하나님을 ‘즐거움을 억누르는 경찰같이 무서운 감시자’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그에게 ‘독서’(Reading)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었는데, 그 가운데는 신앙에 반하는 책들도 있었다. 그는 교회의 거짓말에 속았다는 배신감에 그동안 배운 모든 것에 반발하고 심지어는 신앙을 버리기도 했다.
[6] 그러나 삶의 깊은 고통과 아름다움과 정직한 질문 속에서 자신에게 하나님이 잘못 전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깨닫는 순간부터 얀시의 회의적인 신앙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진리를 제대로 알고 난 후 그는 미친 듯이 책을 써서 펴냈다. 그는 기성 교회가 지닌 상투성을 예리한 문제의식과 역동적인 필치로 파헤쳐 대안을 모색하는 힘과 매력을 지닌 천재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7] 한국 교회와 신학교에 신학의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그것은 진리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배우는 입장에 있는 학생들이 그릇된 가르침과 지식을 인식하고 지적했다는 점이다. 너무너무 기특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다.
진리는 타협의 대상이 되질 못 한다. 진리는 양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기독교 진리를 수호하는 것은 자기 목숨 수호보다 소중하다.
[8] 정치적이고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혼돈 속에서도 어린 학생들의 진리 사수를 위한 굳은 의지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다.
예수 외에는 진리가 없고, 기독교 외에는 다른 생명의 종교가 없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라도 바칠 각오를 가지고, 종교다원주의가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는 청정 교회와 무공해 신학교가 되도록 모두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