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보다 못한 신자가 되지 말자!>
[1] 독일 남부 작은 시골 마을에 소 한 마리가 단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평소 남달리 자신을 아끼던 주인이 죽자 우리를 박차고 나와 도로를 가로지르고 공동묘지의 담을 넘어 주인의 무덤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이 일로 일대의 교통이 마비되고 경찰이 출동하는 등 마을에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고, 무덤가를 떠나지 않던 소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겨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2] 황소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던 촬영팀은 평소 주인이 소를 가족처럼 아꼈기에 소 역시 죽은 주인을 잊지 못해 무덤을 찾아갔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2002년,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얘기가 뉴스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자신을 돌봐주던 이웃집 할머니가 숨지자 축사를 박차고 나와 할머니 산소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경북 상주시 사벌면의 ‘의로운 소’ 이야기다(국민일보 2002년 3월 11일자).
[3]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짐승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성경 속에서도 소에 관한 내용이 하나 소개되어 있다. 삼상 6:10-16절에 나오는 얘기 말이다. 이 내용은 헌신예배나 신학교 졸업식 예배 시에 ‘벧세메스로 가는 소!’ 혹은 ‘소보다 못한 인생이 되지 맙시다!’란 제목으로 주로 설교 되는 ‘헌신예배 및 졸업예배 맞춤용’ 본문이라 할 수 있다.
[4] 이 본문으로 설교한 설교자의 내용 중 하나를 요약해서 소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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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다 못한 신자가 되지 말자!(삼상 6:6-16)>
1)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새끼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은 암소들이었습니다.
2) 사명을 위해 서로 협동하며 목적지까지 끝까지 달려간 두 마리 암소들이었습니다.
3) 사명을 다한 후에는 희생의 제물이 된 암소들이었습니다.
*결론: 한갓 미물에 불과한 암소들이 이렇게 자식에 대한 연민의 정을 억제하면서 사명의 길로 달려갔고, 마침내 희생의 제물이 됨으로써 완벽한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 역시 본문의 암소들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되, 전적인 헌신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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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런 류의 설교들이 많이 난무하고 있다. 삼상 6:12절에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울고’란 단어를 놓쳐선 안 된다. 당시 암소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몰랐을뿐더러, 하나님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거나 충성하고 헌신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이, 오직 새끼들에게만 마음이 다 가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6] 본문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으셔서 젖을 떼지 않은 두 마리의 소들을 강권적으로 제어하셔서 약속의 장소까지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가게 하심으로 이방인들의 시험에 기꺼이 응하신 내용이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새끼들에게만 모든 마음이 집중되어 있는 소들을 우리의 모범으로 삼는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나는 새끼소를 향한 어미소의 ‘살신성인적 희생’을 보여주는 영상을 하나 시청했다.
[7] 여러 차례 돌려볼 정도로 내게 큰 충격을 가져다준 영상이다. 소 우리에 불이 났는데, 하필이면 불이 붙은 짚단 앞에 갓 태어난 새끼소가 누워 있었다. 불이 나자 조금 떨어져 있던 어미소가 즉각 자신의 몸으로 불이 붙은 짚단에 드러누워 새끼소를 막아 나섰다. 수소는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데, 어미소는 자신의 큰 몸둥아리를 불붙은 짚단 위에 던져버렸다.
[8] 불을 끄려는 의도보다는 새끼를 대신해서 타 죽으려는 심산으로 보였다. 뜨거운 불길 속에 자신의 엉덩이와 뒷다리와 배 부분이 타들어 감에도 새끼 하나 살릴 요량으로 불 위에 누워버린 것이다. 그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안전한 새끼 얼굴 한 번 쳐다보고선 타들어 가는 자기 몸 뒤쪽을 의연히 돌아보는 그 모습이 정말 눈물겨웠다. 다급히 주인이 불을 끄려고 나서는 모습을 끝으로 영상은 끝이 난다.
[9] 오늘 이 어미소는 ‘모정’(母情)과 ‘모성애’(母性愛)가 뭔지, 그게 어떤 것인지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정말 감동적인 소가 틀림없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머니의 사랑엔 차이가 없다. 아빠소는 그저 눈만 껌뻑껌뻑한 채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아빠란 게 오늘처럼 부끄럽고 죄스럽게 느껴진 때가 없었다.
그런데 자기희생적인 어머니들의 사랑과는 ‘족히 비교가 안 되는 사랑’이 있다.
[10] 독생자 아낌없이 희생시켜주신 ‘하나님의 사랑’ 말이다.
사 49:1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그렇다. 어머니가 친자식을 잊는 경우가 혹 있다 하더라도 우리를 자녀로 택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잊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11] 그 사랑에 빚진 자로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생각해봐야겠다. 무엇보다 어미소보다 못한 인간은 되지 말아야겠다 굳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