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문 목사 (달라스 생명샘교회)
안광문 박사와 함께 하는 신학산책

즐겁게 떠나는 에베소서 일주 여행

 

            - 11회: 에베소의 배경

 

지난 호에서는 에베소서의 기록 목적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호는 "즐겁게 떠나는 에베소서 일주 여행" 시리즈의 마지막 호로서 에베소서 당시 에베소의 배경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에베소는 인구 25만 명이었고,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 제국 3대 도시로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곳이었습니다. 에베소는 항구 도시로 지중해와 소아시아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 내륙을 잇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해상에서 내륙 무역로로 이어지는 육상 운송상 이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에베소는 역사적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특별히 로마 시대에 에베소는 소아시아 주의 수도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소아시아의 다른 지역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면서 소아시아 지역 전역에 걸쳐서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를 개척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행 19:26). 

당시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 여신을 숭배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에베소에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었는데 이 신전은 당시 아테네에 있었던 파르테논 신전의 4배의 규모였다고 합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 여신을 모든 생명을 주고 생명의 근원이 되는 "생명의 어머니"로 믿었다고 합니다. 아데미 여신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와 교육 등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에베소의 사람들의 종교라는 점에서 아데미 여신에 대한 신앙을 빼놓을 수 없지만 에베소 사람들은 이 외에도 50개 이상 신을 믿었다고 합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신을 받아들이고 믿었던 것은 이 사람들 역시 종교적으로 그리스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서 유일신이 아닌 다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에베소에서는 마술이나 샤머니즘도 성행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배경 때문에 바울은 "그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엡 2:2, 새번역)이라고 썼을 것입니다. 이렇듯 에베소의 배경을 살펴보면, 에베소서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합니다.

에베소가 지리적으로 교통의 요충지라는 점이 에베소가 소아시아 지역은 물론이고 로마 제국 전역의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처럼 교통의 요충지라는 점은 에베소를 종교적으로도 중심지가 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즉, 에베소를 중심으로 로마 제국 전역으로 종교적 영향을 주는 로마 제국의 종교적 중심지였습니다.

이러한 에베소의 지리, 사회, 문화, 경제, 종교적 중요성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삼았습니다 (행 18:19-21; 19:1-20:1; 20:16-38; 고전 15:32; 16:8-9; 고후 1:8-9).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2년 반 동안 머물렀고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전했다고 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 20:27, 새번역).

초기 교회 시대에도 에베소는 여전히 중요한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AD 1세기 후반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에서도 언급되고 있으며 (계 2:1-7, 새번역), AD 2세기 초 이그나티우스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썼던 기록도 있습니다. AD 431년에 에베소는 공의회 장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공의회에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논의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처음으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성모로 인정하고 "성모 마리아"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 달라스 생명샘 교회 안광문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