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스틸 박 의원이 캘리포니아 제45선거구에서 3선에 도전한다. 공화당 소속인 미셸 박 의원은 재선 의원으로서 미 하원의 주요 위원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는 지역구 주민들과 한인 커뮤니티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현안 해결에 주력해 왔으며, 특히 독특한 "도어-투-도어" 캠페인을 통해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있다. 미셸 박 의원은 가스 가격과 세금 부담 해결, 펜타닐 문제 해결, 한미일 동맹 강화를 통한 한국 안보 지원 등을 주요 정책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교육위원회 위원으로서 성경적 가치관에 기반한 교육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4대째 기독교 신앙을 이어오고 있는 미셸 박 의원은 의정 활동 중에도 신앙적 성장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이번 인터뷰는 그의 3선 도전 캠프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집집마다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캠페인이 돋보이는데, 어떤 내용들이 주로 나왔는가.
 지금까지 15만 가구를 방문을 했는데 이 일을 위해 매주 함께 동참하는 청년 자원봉사자들이 200명이 넘는다. 매주 토요일 가벼운 복장으로 가가호호 방문을 하는데 주민들로부터 듣는 현안들이 거의 정해져 있다. 그 내용이 물가상승, 유류비 인상, 치안, 펜타닐 문제 등이다. 특히 펜타닐은 18세~45세 사망원인 1위가 됐다.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펜타닐은 중국에서 멕시코로 재료가 건너가 제조된 후 미국으로 들어오는데, 현재 제일 많이 들어오는 루트가 바로 샌디에이고 국경이다. 이 펜타닐로 인해 하루에 200명이 미국에서 사망하고 있다. 범죄율도 덩달아 높아졌다.

-15만 가정을 방문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떤 이들과 이 캠페인을 함께 하고 있는가.
 전원 자원봉사자들이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고등학생도 참여하고 있는데 뛰어난 학생들의 경우 워싱턴 D.C.에서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훗날 훌륭한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함께 했던 친구들이나 이 네트워크가 이들의 소중한 자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캠페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토요일마다 집집마다 방문한 이후 돌아오면 다 같이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는데 서로 어떤 경험들을 했고,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스스럼없이 나누고 있다. 매우 자발적인 캠페인이어서 이후에도 해변에 가서 자기들끼리 놀기도 하고 서로 굉장히 활기차고 재미있게 지낸다. 감사하게도 가끔 저를 그 모임에 초대해 주기도 한다.

-한국계 미국인 의원으로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본에서 중학교를 나와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일본을 어느 정도 아는데 일본의 안보정책은 정해져 있다. 일본의 서쪽으로는 북한, 중국, 러시아가 있고, 동쪽으로 보면 미국이 있기에 미국과 동맹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 분명하다. 한국은 북한과도 붙어있고, 그들과 한 핏줄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의 북한 리더십은 도저히 그 자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좀 더 미국, 일본 등의 동맹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이후 일본에도 자주 갔는데, 국내의 평가는 잘 모르지만 밖에서 볼 때의 윤 대통령은 외교와 안보에 있어 국정을 잘 운영하고 있다.

-다른 한국계 하원의원들과도 자주 교류하는가.
 현재 한국계 미국인 연방하원의원은 저를 포함해 총 4명이 있다. 북한 문제 등 중요한 정책적 사안을 두고 자주 대화하고 교류하고 있다. 네 명 다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이나 한인들은 우리를 의회의 메신저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교민들을 위해 항상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입법활동 외에도 어떤 부분들에 있어 한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는가.
 제가 있는 세입세출위원회(Ways and Means Committee)는 세금과 무역, 사회안전, 보험, 의료 등의 분야를 관할하고 있다. 때문에 한인들의 필요 현안들이 대부분 여기서 다뤄지고 있다. 특히 무역 부분에 있어서 한국으로부터 물건들이 못 들어오는 문제들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도움 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특별히 한인 이산가족상봉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국에서는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미국의 한인 이산가족 상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계 미국인 이산가족 등록법안'을 발의했다. 북한이 현재는 종잡을 수 없는 모드로 가고 있지만 미국과 대화가 진행될 상황을 대비해 한국계 미국인 중 북한에 가족을 둔 사람들의 명단을 별도로 관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올해 6월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재선의원으로 지난 4년간 어떤 것을 배웠는가.
 처음 2년은 정신없이 지낸 것 같다. 저는 세금 관련 이슈들을 다뤄왔기 때문에 의례히 세입세출위원회로 갈 줄 알았다. 하지만 프레시맨(freshman)은 이런 탑레벨의 위원회에는 못 들어간다고 했다. 이 위원회는 미국 하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위원회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2년 내내 저기를 꼭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미중 전략경쟁 특별위원회(House Select Committee on the Strategic Competi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Chinese Communist Party) 또한 꼭 제가 필요한 위원회라고 생각했다. 현재는 이 둘 뿐만 아니라 보건 소위원회, 노동 및 복지 소위원회, 교육 및 노동위원회, 인공지능에 관한 초당적 태스크포스 등에서도 활동하게 됐다. 특히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ongressional-Executive Commission on China)는 중국 내 위구르족을 상대로 한 장기적출 등 끔찍한 인권침해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의 공식적인 지지를 얻었는데 어떤 부분에 있어서의 활동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가.
지속적인 친기업적 정책, 세금 감면 노력, 중소기업 지원 등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해주셨다. 앞으로도 중소기업 지원과 과도한 규제 완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특히 도어-투-도어 캠페인을 통해서는 자영업자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인터뷰 후 미셸 박 의원이 도어-투-도어 캠페인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Photo : 기독일보) 인터뷰 후 미셸 박 의원이 도어-투-도어 캠페인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4대째 기독교 신자인 것으로 안다.
제가 볼 때는 저는 엉터리 신자다. 물론 할머니와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고 저 또한 기도하지만 저의 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느낀다. 하나님께 주세요 주세요 하다가도 좋은 일이 생기면 결국 내 공로로 가져가는 듯하다. 그래서 엉터리 신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워낙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까 여름에는 당연히 성경공부모임에 가야 하고 집에는 항상 성경책이 있고 할머니와 함께 성경 읽고 찬송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환경이 익숙하다.
지금 기도하는 것은 거의 제가 편하라고 하는 것 같다. 아침에 기도하면 우선 제 마음이 편하다. 선거 운동 중이라 지금이 한창 힘들 때인데 기도를 하면 마음이 안정이 된다. 그리고 제가 지금 가는 길이 하나님이 벌써 다 만들어 주신 길을 하루하루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항상 제가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진 않는다. 다만 하는 만큼만 하나님이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항상 저녁이 되면 '하나님 저 잘하고 있죠. 그런데 너무 힘듭니다' 이런 기도가 나온다. 하나님과 항상 교제하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앙이 의정 활동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
 LA시 소방감독위원에서 LA 공항감독위원으로 올라갈 때의 일이었다. 소방관 채용 시 인종이나 피부색이 아닌 자격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이 발언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공격했다. 상대편에서는 나에 대해 어느 위원회로부터 세뇌(Brain Wash) 당한 꼭두각시라고 매도했고 연일 LA타임즈에 내 얼굴이 나왔다. 매일 새벽 4시 달려가서 신문을 체크하고, 지면에 내 얼굴이 나온 것을 보는 일은 굉장히 힘든 경험이었다. 나중에는 가족까지 공격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지나고 나니까 하나님이 나를 다음 단계로 올려주신 것을 깨달았다. 그 과정이 힘들었지만 그 힘듦으로 인해서 다른 방면에서 사람들이 '아 미셸은 분명한 보수적인 생각과 소신을 가진 사람이구나' 라고 믿어주게 됐다. 그래서 공화당을 기반으로 미셸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고, 그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직책이 연결이 됐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다음 단계로 이끌어 주시려고 그런 고난을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이후로는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하나님이 다음을 위해서 준비하시는구나 생각한다.

-부모님이 이북 출신으로 공산당 치하를 피해 월남했던 것으로 안다.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어릴 적에 부모님은 월남한 이야기를 평소에도 자주 했다. 공산당이 들어왔을 때 할아버지가 신의주에서 제재소를 하고 있었다. 24시간 안에 3대가 사는 대가족이 소 하나가 끄는 수레 하나에 짐을 실어서 피신해야 했다. 제재소에서 벌목을 한 것을 하나도 실을 수 없고 그저 가족들 먹을 것만 실어서 남으로 내려왔다. 엄마가 이야기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엄마는 '공산주의가 그런 것이란다. 남의 것을 다 가져간다. 모든 것을 평등하게 나눈다고 하지만 몇몇 사람만 부유하고 나머지를 다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 공산주의다'라고 하셨다.

-하원 의원 기도모임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 계기가 있는가.
 그 기도모임을 통해 내가 의정활동에 큰 힘을 얻고 있다. 처음에 워싱턴 D.C.에 갔을 때는 도저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나지 않았다. 원래 나는 강아지를 끌고 산책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침의 시작이었는데 거기 가니까 3시간이 빠르고 운동할 겨를도 없이 샤워하고 커피 하나 들고 뛰어 나가면 그날 기도를 잊어버리고 일주일을 살다 LA로 복귀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매일 저녁에는 리셉션이나 모임이 있고 그것이 끝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왕복하면서 5시간씩 비행기에서 보내는 것 또한 정말 힘들었다. 한번은 토요일 업무가 늦어져서 주일 새벽 2시까지 일하다가 겨우 주일날 비행기를 타고 집에 왔다가 월요일에 다시 D.C.에 가는데 처음으로 딸의 생일을 놓쳤다. 그 주간이 너무너무 힘들었다. D.C.가 기도를 못하게 만드는 죄의 도시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원의원 기도모임은 원래 여자들만 모이는 기도모임이었다. 그때 팬데믹 시기여서 줌으로 기도모임을 했었는데 그날은 정말 오늘만큼은 내가 기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오전 8시 기도모임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미팅에 들어오지 않았다. 7-8명 멤버들이 있었는데 메시지를 보내서 빨리 모이자고 했다. 결국 두 명이 나를 위해 기도해줬는데, 그 기도모임에서 깨달음을 얻게 됐다. 하나님은 내가 불평이 가득해지고 감사를 잊어버릴 때면 마치 내 생각을 깨우치듯이 망치로 한 대 때리시는 듯한 순간을 주신다. 그때 기도제목을 서로 나누는데 한 동료가 자기 캠페인 동료가 2주 전에 자기 집 앞에서 죽는 일이 발생했다면서 그게 자신은 너무 무서웠다면서 ‘내가 미셸 너를 위해 기도해줄게’ 하는데 내가 왜, 또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을 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됐다. 연방하원 취임을 할 때는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가 얼마나 지났다고 내게 대체 왜 이런 직업을 주셨는지 하나님을 불평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매주 왕복 10시간씩 비행기 안에 있는 시간도 불평이 아니라 감사가 넘치는 시간이 됐다. 와이파이도 안 되고 전화도 안 되는 이 시간이 내 자유시간이었다. 이렇게 좋은 시간 주셨는데 왜 하나님께 불평했을까 생각하게 됐다. 하원들은 정책적으로 이코노미로 타야 하는데 처음에는 장시간 비행을 좁게 가는 것이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내 체구가 작은 것에도 감사했다. 같은 비행기를 자주 타니까 거기 스튜어디스와도 친해져서 이제는 간식과 커피도 챙겨주는 사이가 됐다. 현재는 이 기도모임이 발전해서 남녀 의원 19명이 기도모임에 동참하고 있다. 서로 성경구절을 나누는데 오늘은 이 성구가 딱 맞다고 서로 나누고 또 교회에서 좋은 말을 들었을 때 보내기도 하고 서로 은혜를 나누고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인교회는 자녀들이 성별을 자기가 부모동의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 제동을 걸려는 운동을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소신을 밝힌다면.
 당연하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라고 하셨다. 내가 교육위원회 위원으로서 학교 교육 과정과 예산 등을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점은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은 주정부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개별 학교나 교육구에 일일이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다. 오렌지 카운티에서는 부모들을 교육위원으로 영입이 많이 되고 있는데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교육과 가치관 형성에 있어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므로, 이런 식으로 부모들이 교육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한인 동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많은 한인들이 투표에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투표는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리고 젊은 한인들이 많이 정계에 도전했으면 한다. 또한 교회는 항상 우리 사회의 중심에 있고, 기독교 신앙이 우리의 삶과 공동체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잊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