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1] 최근 ‘뉴라이트’라고 비판을 받아온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이후, 8.15 광복절을 기점으로 ‘건국절 논란’이 국민들 사이에서 큰 이슈로 회자 되고 있다. ‘1919년 임시정부수립’과 ‘1948년 정식정부수립’ 중 어느 쪽을 건국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국론을 양분시키고 있다. ‘우리 헌법은 상해 임시정부를 대한민국 법통으로 삼고 있으며, 따라서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 4월 11일이 자명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

[2] 하지만 ‘나라의 기본 요소가 주권, 영토, 국민인데, 상해 임시정부는 망명정부여서 우리 국민들이 세웠고 주권도 갖추었지만, 영토는 일제에 침탈된 상태이기 때문에 1948년 8월 15일 해방을 기점으로 해서 건국일로 정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둘 다 일리 있는 얘기라 생각한다.
페이스북에 보니 아주 재미있고 타당한 질문 글이 하나 올라왔다.

[3] “임신한 날이 생일인가 태어난 날이 생일인가? 그럼 건국일은?”
건국일 논란을 일시에 잠재우는 명쾌하고 타당한 질문이다.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 4월 11일을 '임신한 날'로 본다면, 해방을 맞은 1948년 8월 15일을 '아이가 태어난' 건국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다만 자신이 취하고 있는 정치색을 배제하고 어느 한 날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4] 임신한 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태어난 날도 있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진 날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뿌리 없는 열매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열매가 아닌 뿌리에 무게 중심을 두어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이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세워진 것은 일제에서 해방되어 영토까지도 회복한 후 수립한 ‘1948년 8월 15일’로 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내가 옳다 네가 옳다’ 자꾸 싸우는 것은 개인적 정치색 때문인 경우가 많다.

[5]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럽고 타당한 것인가’보다는 ‘내가 좌파냐 우파냐, 야당이냐 여당이냐’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양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한쪽에 속한다 하더라도 자기가 속한 편이 다 옳고 정당한 것은 아니다. 서로가 다른 편의 주장 가운데 옳은 점이 있다면 인정하면 되는데, 자신이 가진 정치색에 따라 목숨 걸고, 신앙까지 걸고 순교자인 양 싸우고 성질내면서 힘들게 사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본다.

[6] 요즘 기독교계에선 9월 22-28일 인천송도 컨벤시아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될 예정인 ‘제4차 로잔대회’로 인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모임은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함께 세계선교의 양대 축을 이루어왔다. WCC가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무게를 둔다면, 로잔 운동은 교회의 ‘사도적 책임’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동안 한국 교회가 ‘영혼 구원’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여오면서 사회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해온 게 사실이다.

[7] 최근 보수주의 교단들이 로잔 운동이 WCC처럼 ‘종교다원주의’, ‘동성애차별금지’, ‘신사도운동’, ‘정치적 좌파성향’ 등의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의혹들을 많이 제기해왔고, 로잔 대회 측에선 사실이 아니라며 WCC와의 차별화를 강조해왔다.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로잔대회에 참석하는 40%가 WCC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점과 그동안 한국 교회가 소홀히 해온 사회참여 문제도 중요하지만, 영혼 구원보다 더 중시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8] 그간 한국 교회가 개교회 부흥과 영혼 구원에 무게를 두고 신앙생활을 해오다 보니 ‘교회의 연합’보다는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여온 게 사실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소홀히 한 점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금번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로잔 운동이 한국 교회에 주는 긍정적인 공헌이 분명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9] ‘Unity or Purity?’ 즉 ‘교회의 연합이냐 복음의 순수성이냐?’를 묻는다면 ‘복음의 순수성이 무너질 위험성이 있는 가운데서의 교회의 연합은 반대한다’가 내가 내린 결론이다.
어제 어떤 교단에 속한 한 집사와 길게 통화한 적이 있다. 자기가 속한 교단에서 가르치는 교리에 문제가 많아 타교단으로 옮겨야 하느냐에 관한 심각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 ‘다른 건 다 희생해도 ‘복음 진리의 순수성’(Purity)이 훼파되는 일만큼은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에게 들려준 마지막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