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감동적인 화제의 인물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 크로스컨트리 대회 결승 라인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선두를 달리던 케냐 선수 아벨 무타이가 결승점을 불과 몇 미터 앞두고 멈췄다. 결승점을 통과했다고 착각한 것이다. 2위로 뒤따르던 스페인의 이반 페르난데스 선수는 상황을 알아챘다. 그래서 무타이에게 더 달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무타이는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이에 페르난데스는 그를 뒤에서 결승선까지 밀어주었다. 그리하여 영문도 모르던 무타이가 우승할 수 있었다. 그에게 한 리포터가 물었다. “왜 그렇게 행동하셨어요?” 페르난데스는 “내 꿈은 우리가 우리 자신 및 다른 사람들이 승리하도록 밀어주는 그런 모습의 공동체 삶을 언젠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절호의 우승 기회를 가벼이 여긴 그를 이해할 수 없었던 리포터는 “왜 케냐 선수가 승리하게 해주었죠?”라고 다시 물었다. 페르난데스가 답했다. “내가 그를 이기게 해준 게 아닙니다. 그는 원래 이기게 되어 있었어요. 그 경주는 이미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리포터는 집요했다. “그렇지만 당신이 이길 수 있었잖아요?” 페르난데스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이기면 뭐가 좋아지나요? 우승 메달의 명예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요?”와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 정말 놀라운 답이 아닐 수 없다. 페르난데스를 어릴 때부터 키워온 엄마가 어떤 분이었기에 우승을 눈앞에 둔 아들이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분명 그녀는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언제나 상대방을 배려하고 남의 명예나 영광을 약은 수로 찬탈하지 말라고 가르쳤을 것이다. 오늘 나나 우리 대다수의 아빠나 엄마였다면 어땠을까? “야 이놈아, 그런 기회를 양보하다니? 승부의 세계에선 양보가 없는 거야 바보야!” 그러지 않았을까?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것이 바로 페르난데스에게 주입시킨 엄마의 가치관이다.
그런가 하면 스포츠 역사상 가장 비열한 속임수를 쓴 인물로 꼽히는 인물의 얘기가 있다. 소련의 ‘보리스 오니센코’(Boris Onishcenko)라는 선수이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단체전 은메달,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획득했고, 세계선수권에서도 10개가 넘는 메달을 갖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선수였다. 전성기도 지나가고, 힘도 떨어져 가는 39세의 나이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했다.
에페 경기가 있던 날, 영국 선수와 경기를 가졌는데, 영국 선수가 느끼기에 칼이 닿지 않았음에도 불이 들어온다는 것을 의심하게 된다. 두 번째 영국 선수도 경기중에 동일한 의문점을 갖게 되면서, 심판에게 항의해서 마침내 심판진이 오니센코 선수의 에페 칼을 조사하게 된다. 심판진이 그의 칼을 확인해보니, 가드의 커버 속에 교묘하게 회로를 설치했고, 손잡이에 스위치를 설치해 힘을 주면 유효면에 전류가 흘러 불이 들어오는 장치가 달려있었다.
이 사실이 적발되어 경기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되면서 소련팀 선수촌에서도 난리가 났다. 올림픽이 끝나고 귀국 후 장교로 복무하던 군대에서도 강제 전역 당하고, 당시 소련의 최고 권력자인 브레즈네프 서기장에게 불려가 엄청난 질책을 당하고, 벌금까지 물어내면서 그동안 쌓아 올렸던 부와 명예도 모두 잃게 된다. 속여서라도 금메달을 받아야겠다는 잘못된 가치관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앞서 소개한 페르난데스 선수의 양보와 보리스 오니센코 선수의 속임수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이 바로 ‘가치관의 차이’이다. 어린 시절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결정은 부모가 만들어준다.
장차 우리 앞에 떳떳하지 않은 행동으로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왔다고 가정해보자.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페르난데스가 던진 질문을 하면서 그에 따른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 말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를 비롯한 우리 대부분 부모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는 문제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대신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매번 이런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만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