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기복이 아니라 팔복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운데 여섯 번째의 복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입니다. ‘청결한’이란 말로 쓰여진 헬라어 ‘카타로스’는, ‘깨끗한, 순수한’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때 묻은 더러운 옷과 비교된 깨끗한 옷을 말할 때, 키질을 통해서 겨를 제거한 알곡을 말할 때, 또는 물을 타지 않은 순수한 우유나 포도주를 설명할 때 쓰는 말입니다. 현대 심리학이나 상담학에서 ‘카타르시스’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마음과 정서에 쌓여있는 모든 중압감이나 상처 등을 깨끗이 제거하고 씻어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앞에 부정한 것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동물의 피로 속죄함을 받는 제사의 정결함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23:27)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눅11:39)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겉만 깨끗하면 되는데, 하나님은 우리 마음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마음으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8)고 하시고, 또 마음에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변해야 합니다. 겉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이 마음까지 그리스도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몇 대째 기독교 집안이고 직분도 있고 교회를 수십 년 다녔다고 해서 마음의 주인이 예수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리적으로 완벽하고 지성과 교양이 풍부하다고 마음이 깨끗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공부, 제자훈련 하는 것은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온갖 것 다해도 마음이 안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교통이 빠르고 정보가 넘치는 시대라서, 눈치와 잔머리가 빨라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일을 시작할 때도 마음으로 깊은 묵상 없이 남들이 하니까 그냥 저질러 놓고 보는 식입니다. 연애나 결혼도 감정이 조금 끓어오르면 이벤트를 하고 겉으로 난리법석을 피우느라고 깊이 기도하고 마음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가 정점에 이르러, 내 생각, 내 느낌, 내 고집이 너무 강합니다. 누구든지 마음이 청결해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여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나누어짐이 없는 한 마음으로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보는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보게 되면 인생의 모든 갈등과 고통을 이기는 참된 자유와 기쁨과 소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교육국 주관으로 온 세대가 함께 기도원에 올라가 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으로 충만하여진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는 복이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