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길 목사(감사한인교회 원로 목사)
김영길 목사(감사한인교회 원로 목사)

넷째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르게 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5:6).

의는 ‘디카이오수네’로서 ‘한 사람을 진정으로 옳거나 선한 존재가 되게 해주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처럼 살고 싶어 한다.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말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하며 살고 싶다. 복의 근원이 되고 세상을 축복하는 사람들이 되고 싶다. 가정을 행복하게 꾸미고, 좋은 부모가 되고, 좋은 배우자가 되며, 좋은 시어머니가 되고,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다. 좋은 이웃도 되고 싶다. 그런데 내 속에 그럴 만한 선한 능력이 없다. 그래서 바울도 탄식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

그때 우리의 귀에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나 때문에’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선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내면의 세계를 살펴보자. 거기 예수님이 계신지,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지, 예수님이 나의 구원의 주님으로서 영광을 받고 계신지, 유심히 살펴보자. 대부분의 경우에 예수님 대신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바울의 기도가 우리에게 응답되어야 한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 1:9-11).

다섯째로,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7).

때로는 다른 사람의 불의한 언행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을 때가 있다. ‘왜 저 사람은 악한 생각과 악한 행동만 골라가며 할까’ 하고 탄식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들을 처리하지 않고 그냥 보고 계시는 것만 같아 요나처럼 마음이 상할 때가 있다.

동정하는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질이 다르다. 동정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라면, 긍휼은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그에 상응한 벌 대신에 오히려 용서와 축복을 받기 원하는 착한 마음’이다. 우리 속에는 근본적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
이 없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는 긍휼히 여기시는 성품이 있다. 그래서 다윗은 자주 자주 하나님께 긍휼히 여겨주시라고 기도했다.“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시 25:6-7).

긍휼의 성품을 하나님께 구하자. 우리에게 긍휼히 여기는 성품이 있다면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가정은 천국이 되고 사회는 더욱 아름답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다른 사람의 불의한 행동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원망의 소리가 나오거든 먼저 예수님을 찾자.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나자.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긍휼히 여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알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축복의 말씀을 이렇게 읽어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나 때문에’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