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지난주 중 필자는 이스라엘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어느 선교사 가족과 함께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원래 영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무역계통 회사에 일을 하다 히브리어를 전공한 그의 아내를 만나 먼저 이스라엘을 향해 선교를 품은 아내를 따라 함께 이스라엘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는 가족입니다. 그동안 두 자녀를 낳아 그들과 함께 10년 가까이 복음을 품고 그곳에서 사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참 평안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족은 부부가 서로 돌아가며 학생비자를 갱신해서 신분 유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생활은 현지에서 관광가이드가 생길 때 그것으로 돈을 벌고 또 그들의 가족이 유학 학비를 도와주어 그 도움으로 생활한다고 합니다.

선교사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은 한인은커녕 아시안 타민족은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11살, 10살 두 자녀는 오직 현지인들만 있는 학교를 다니며 그들의 문화와 언어에 동화되어 살아야만 합니다. 선교사라는 말 조차 할 수 없는,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이란 말은 더군다나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환경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길거리에서 그들이 즐겨하는 하나님을 주제로 하는 전통 찬양을 가족이 함께 찬양하는 것이 그들의 사역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통해 표현하지 못하는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것이 그들 사역의 중심이라고 그 선교사는 힘주어 말합니다.

필자는 이 선교사 가족과 짧은 식사 만남이었지만 그들이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내면이 참 평안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십자가 복음으로 인한 진정한 평안, 그리고 행복이 무엇인지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찬송가에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으로 인한 진정한 평안을 표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곡은 “내 영혼 평안해(It is well with my soul)”라는 찬송입니다. 이 곡을 작시한 호라티오 스페포드(Horatio Spafford(1828-1888)는 19세기 중반 시카고에서 성공한 변호사 이자 시카고 대학 병리학 교수 였습니다. 그리고 부동산 투자자였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 에나는 1명의 아들과 4명의 딸을 낳고 교회에서 자선 활동과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해에 그들은 성홍열로 네 살 된 아들을 잃으면서 시련이 시작 되었습니다. 몇 달 후 시카고 대화재로 인해 소유 재산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습니다. 그들은 1873년 다시 비극이 닥칠 때까지 2년을 버텼습니다. 처한고통을 만회하려 온 가족이 유럽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스페포드는 가족과 함께 갈 계획이었지만 예기치 않은 사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카고에 머물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어 가족들을 먼저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에 1873년 11월 21일, 프랑스 원양 정기선인 빌 뒤 아브르호(Ville du Harve)가 스패포드 부인과 네 딸을 포함, 313명의 승객을 태우고 미국에서 유럽으로 대서양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른 배와 충돌하여 빠르게 침몰하며 226명의 승객이 침몰 되어 익사하는 대형 사고가 났습니다. 여기에 스페포드의 네 딸은 모두 익사하고 그의 아내 안나(Anna)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녀는 "홀로 구원받았습니다 (Saved alone, what shall I do?"라는 문구가 적힌 잊히지 않을 정도로 짧은 전보를 남편 호라티오 에게 보냈습니다.

소식을 접한 후 사고 선박 회사가 제공한 배를 타고 호라티오는 사고가 난 사흘 후 사고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딸들을 잃은 깊은 슬픔이 그의 정신을 마비 상태로 놓이게 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의 마음이 산산조각 났지만, 그 상실 가운데서도 그는 의심할 여지 없는 하나님의 평강에 영감을 받아 찬송가 "내 영혼 평안해"의 가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많은 비통한 노래와 달리 잃어버린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복음으로 인한 소망, 그리고 ‘내가 아니고 주님이십니다’ 를 되뇌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고 고통을 저항하며 평화를 만들려는 모습이 그의 글에서 역력히 보입니다.

이 찬송시를 쓴 스페포드는 무디 선생님께 보내어졌고 그것이 결국 당시에 유명한 찬송 작곡가 필립 폴 블리스(Philip P. Bliss, 1838-1876) 에게 전달되어 이 유명한 찬송이 만들어져 대중에게 불리게 된 것입니다.

필자는 시편 29편 11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를 통해 찬양시의 저자 스페포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시편29편의 결론으로 자연의 모든 현상을 여호와의 소리로 이해하는 시편저자의 고백을 호라티오 자신도 분명히 믿고 신뢰 하였기에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다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서두에 이야기했던 그 선교사 가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이 전해야 하는 평안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십자가 복음의 외침이 비록 계란을 가지고 바위를 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시 간낭비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날 테레사 수녀에게 한 기자가 찾아와 그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수녀님은 그렇게 선을 베푸는데 세상은 왜 그토록 더 악해져만 가지요? “ 그러자 수녀님은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갠지스강에 한 컵의 물을 떠내면 그만큼 갠지스강의 물은 줄어든 겁니다” 이스라엘 그 선교사 가정이 헌신하고 있는 그 수고가 모든 환경이 복음을 전하기에 사방이 막혀 그 복음의 메시지를 외쳐도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는 허공을 치는 듯한 외침일 지라도 이스라엘 땅에 복음을 바로 알고 있는 한 가족이 살고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그 지역에 기독교 인구가 더해진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환경 속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잃지 않고 사역하는 모습 또한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게 되는 자연의 모든 현상, 주위 환경과 사건들 앞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그 속에 담긴 오묘한 뜻을 바르게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조건에서 참 평안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