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건실한 교회의 원로 목사님의 아들 목사가 유학을 마치고 서울의 중견교회 담임 목사가 되었다. 젊은 목사는 성도들의 사랑과 응원 가운데 목회를 잘했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된 지 5년 정도 되었을 때 문제가 생겼다. 건강하게 교회가 성장하던 상황에 맞은 위기는 어처구니없게도 담임 목사가 새벽기도회에 불성실하다는 것이었다.
은퇴 생활 즐기던 아버지 목사님이 화들짝 놀랐다. 아들이 ‘새벽기도회’에 불성실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 목사님은 ‘담임 목사가 새벽기도를 빠진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라며 아들을 꾸짖었다. 아들은 “성경에도 없는 새벽기도에 왜 호들갑인지 모르겠다”라며 시큰둥했다. 최근 일이다.
새벽기도회는 성경에 없다. 하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새벽기도회가 없는 한국(한인)교회는 상상하기 어렵다. 성탄절도 마찬가지다. 성경과 로마역사를 종합하면 예수님 탄생은 12월이 될 수 없고, 9월쯤에 예수님이 탄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예수님 성탄절은 범기독교가 수용한 전통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사순절은 그만한 지지와 수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 일각에서는 사순절은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실제로 사순절을 지키지 말 것을 결의한 교단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주장에 이유가 보인다. 첫째, 사순절이 성경에 언급되지 않았고, 둘째, 천주교의 미신적인 종교 행사 유산이어서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반대했으며, 셋째, 말씀 중심의 신앙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성탄절과 사순절은 4세기에 시작했다. 기독교를 공인(313년)한 콘스탄틴 황제 어머니 헬레나는 70대 후반 노령에 성지순례를 했다. 그녀가 성지순례 중에 발견한 골고다 십자가를 기독교 상징물로 삼았고, 베들레헴에 예수님 탄생교회도 건축했다. 금식과 기도로 준비하던 부활절 세례준비의 강화는 사순절로 발전했다. 4세기 교회의 필요를 충족하는 중요한 신앙문화가 형성되었다.
2세기, 3세기 교회 핵심메시지는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사도와 속사도 교부가 전하는 생생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풍성한 은혜를 공급했다. 그러나 많은 이방인이 기독교로 유입되면서 4세기 교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신입 성도의 양육이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다. 당시 이방 종교와 비교하면 신앙상징과 양육 인프라가 부족했던 기독교는 예수님 탄생과 수난 기사를 신앙 양육과 영성 훈련 재료로 활용하게 되었다.
예수님 탄생에 관심이 없었던 교회가 헬레나의 성지순례와 탄생교회 건축을 통해 4세기에 예수님 탄생 기념을 시작했다. 부활절 세례교육의 강화도 필요했다. 이레네우스는 2세기 후반 기독교의 부활절 세례준비 기간은 2, 3일이었다고 한다. 디오니스우스는 4세기 초반 교회의 부활절 세례준비 기간이 6일간이었단다. 그런데 니케아 종교회의 후 4세기 후반부터 교회의 부활절 세례준비 기간은 40일간으로 편성된 것을 여러 자료가 전한다.
2~3세기에 세례지원자 교육이 비교적 단순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기독교 신자가 되기를 원하던 당시 세례지원자들은 길고 복잡한 준비가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가 공인 된 후 즉 4세기부터는 많은 세례 대상자들에게 좀 더 세밀한 세례준비가 필요하다는데 교회가 공감했다. 그리고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이런 공감이 모든 교회에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
초대 교회의 사순절은 성도들에게 다양한 영적 성장을 제공했다. 부활절 세례준비자에게는 양육의 기간, 신앙으로 돌아온 자들에게는 회개의 기간, 일반 성도에게는 성숙의 기간, 성숙한 성도에게는 사랑의 실천 기간이었다. 모름지기 사순절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돕는 거룩한 기간이었다. 성탄절, 새벽기도가 신앙에 큰 유익을 주는 것처럼 사순절도 우리 영혼에 큰 유익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