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앙인이라면 복음의 핵심을 바로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복음은 그 사람의 성격이 좋으냐? 나쁘냐? 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예수님 만났느냐? 아니냐? 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만난 인생은 강력한 인생입니다. 향유를 깬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의 헌신은 오빠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부활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감당해야 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한 향유를 깨 부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향유를 깬 것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 사함을 위해 당신의 몸이 깨시고 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이 향유이십니다. 당신 자신을 깨어서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는 향유옥합이란 찬양을 쓴 이가 처음에는, 마리아가 옥합 깬 것으로 묘사합니다. 내게 있는 향유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그런데 이어서 이 옥합 깬 것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 발. 흘린 피로 나의 죄를 대속 하셨네, 라고 예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향유를 깬 주인공이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임을 알라는 깊이가 있는 찬양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헌신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을 깬 것에 마리아의 찬송일 뿐입니다. 예수님 만난 사람은 거룩해집니다. 거룩은 말씀이란 밑그림을 가지고, 순종을 통해 드러나는 결과입니다. 밑그림을 토대로 순종해 나가면, 거룩함이 완성되어 갑니다.
우리의 구원은 착한 행실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믿는 자는 영광에 목마르듯이. 영광이라면 뭐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자녀의 기쁨이고. 감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치열하게 착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난 사람은 믿음으로 삽니다. 다니엘은 30일을 기도하지 말라는 말에도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하던 기도를 합니다. 대적의 함정은 피한다고 이것으로 끝날 것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부딪히면 일은 하나님이 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자 굴로 들어가나 걸어 나오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무엇을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하십니다. 우리는 정말 잘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내는 능력은 없습니다. 예수님 만나게 되면 믿게 되고. 믿으니 기도함으로 변화를 맛보게 됩니다. 기독교는 슬로건이 아닙니다. 예수를 만남이 기독교입니다. 만나면 거룩함으로 변하게 됩니다, 믿으라는 말은 메시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영광스러운 삶을 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 거룩해지고.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는 기적의 삶을 살게 됩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