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 사랑의교회(노창수 목사)는 11월 27일(월)부터 12월 9일(토)까지 은혜의 대로를 열어 주소서(시편 84:5)라는 주제로 하근수 목사(동탄시온교회), 류응렬 목사(와싱톤중앙장로교회), 김태권 목사(필라델피아 임마누엘교회 은퇴목사, PCM공동대표) 등을 초청해 연말 특별 새벽부흥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연말 특별 새벽 부흥회의 강사와 일정은 다음과 같다. 11/27-28 하근수 목사 ,11/29-30 류응렬 목사, 12/1-2 김태권 목사, 12/4-5 Rev. Joel Kim(웨스트민스터신학교 총장), 12/6-7 Rev. Darin Mcwatters(Fullerton Free Church), 12/8-9 Rev. Alex Choi(Executive Pastor of Imago Dei Church)
부흥회 첫번째 날 27일, 강사로 선 하근수 목사는, 1.4후 때 피난 온 피난민 가정의 장남으로, 중 3때 아버지를 여의고 고등학교 1,2,3 학년 내내 푸줏간 일을 하고, 다른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했지만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대학에 대한 꿈을 접고 청년 백정으로 일하던, 빵점짜리 인생이던 그를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이야기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면 끝난 것이다”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했다. “저는 충청도 안면도라는 섬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북한에서 일사후퇴 때 피난오셨다. 저는 6남매 장남인데 중3 때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피난민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먹고 살기 어려울 때 동네 분들이 우리가 불쌍하다고, 소년 가장된 우리 집에 푸주간을 하나 내어주셨다. 푸줏간은 소 돼지 짐승을 사서 도축해서 직접 파는 곳이었다. 그것을 고1때 어머니와 둘이 했다. 너무 힘들었다.”
그는 한참 이성에 대해서 예민하던 고등학생 시절, 그를 힘들 게 한 것 세 가지-돼지를 싣고 가다 여학생을 마주 치는 것, 몸에서 씻겨지지 않던 돼지 냄새, 새벽 4시,5시에 일어나야 했던 것-에 대해 나누며, 그 고통의 시간도 하나님은 축복으로 바꾸어 놓으셨다고 간증했다.
“가장 힘든 것 세 가지가 있었다. 첫번 째는 돼지를 싣고 갈 때, 우리 반 여학생을 마주치는 것이었다. 돼지가 버둥거리는 바람에, 돼지를 실은 자전거가 시궁창에 빠져 버렸다. 시궁창에 빠진 자전거를 꺼내서 세우려고, 시궁창 물과 범벅이 된 채로 씨름을 하는데 저 앞에서 우리반 여학생이 걸어 왔다. 얼마나 창피한지 나도 함께 시궁창에 빠져버렸다. 사춘기 때 여학생에게 들키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두번 째 힘든 것은 돼지와 씨름하니까, 항상 내 몸에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닦아도 냄새가 배어 있다. 뒤에서, 더러운 백정이라고 비수를 꽂는다. 조선시대 신분제도를 배우는데, 사농공상, 그 중에 가장 천시 받은 직업이 백정이었다. 아이들이, 나를 백정이라고 불러 대인기피증에 걸리고, 학교에 가서 버벅거리고 숨어지냈다. 고 1,2,3 학년이 지옥같은 삶이었다. 몇번 죽고 싶었다.”
“세번 째 힘든 것은 도축을 해 놓고 학교를 가야 해서 새벽 5시,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 엄마도 깨우면서 미안하다며 우셨다. 고등학생 때, 새벽 4시, 5시에 기상하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어느날 기도하는데 문뜩 전율을 느꼈다. 내가 새벽을 통해서 복을 받은 목사다. ‘하나님, 이게 뭐죠? 그러면 고등학교 때 새벽 기상 훈련, 하나님이 시키신 것입니까? 그때는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고난받는 것, 10년 20년 후에 축복 받으시라고 허락하신 것이다.”
친구들이 시험장에 가던 날, 대학은 상상도 할 수 없던 그는, 너무 외롭고 갈 데도 없어 목적지도 없이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다녔다. ‘나는 대학도 못가는 구나’. ‘대학교는 깨끗이 잊어 버리자’,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본격적으로 청년 백정이 된 그를 불쌍히 여긴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이 교회로 인도했다.
하근수 목사의 인생은 그때부터 바뀌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면 끝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를 대학다니듯 열심히 다녔다. 새벽일찍 가고, 미친듯이 예수를 믿고, 차량봉사하고, 속장도 했다. 그가 너무 열심히 하니, 23살에 총각 집사가 되었다. 20대 초반, 서울에 갔다가 내려오는 시외버스를 탄 그의 옆 좌석에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앉았다. 처음 본 사이인데, 이상하게 그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아버지가 하신 두 마디, ‘사람은 인사를 잘해야 한다.’ ‘음식을 나눠 먹어라’ 가 그의 삶을 바꿔 놓았다.
그는 휴게실에 들러 우유와 빵을 사와서도 한참 동안 아가씨에 말을 걸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 생긴 대인기피증 때문이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한 마디를 걸었고, 한마디씩 하다가 교회에 다닌다는 것, 그리고 그 아가씨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정의 눈에 선생님은 너무 고귀한 분으로 보였다.
3년이 흘러 20대 중반이 된 그에게 이상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하나님이 개입할 챈스’가 된다고 말했다.
“시골 안면도에서 태안까지 와서 친구와 서울행 고속버스 표를 끊었는데, 매표소 직원이 떨어진 자리를 줬다. 당연히 친구와 옆에 앉아서 가야 재밌게 얘기도 하고 갈텐데, 대인기피증 때문에 표를 바꾸지도 못했다. 그런데 거기 하나님의 비밀이 숨겨 있었다. 내 옆에 젊은 아가씨가 탔는데, 낯이 익었다. 3년전 만났던 그 자매였다. 하나님께서는 멍청이도 사용하신다. ‘미련한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하나님은 빵점짜리 인생도 가치를 두신다. ‘내가 빵점이다, 배운 게 없다, 나는 약하다, 병들었다’면,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이 개입할 찬스이다.”
“서울까지 가서 자매는 인천 쪽으로, 저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백정의 눈에 선생님은 위대하게 보였다. 시간이 또 흘렀다. 하루는 안면도 푸줏간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선생님이 찾아 오셨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머리 속에 내 이름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 찾아 왔다. 네번째 찾아왔을 때, 청혼했고, 자매가 받아들였다.”
그는 장가 들고 대학에 들어갔다며, “평생 대학교에 못 갈 줄 알았다. 백정, 천민, 냄새나는 놈, 이게 내 별명이었다. 빵점짜리 버림 받은 인생, 하나님 만나고 인생 끝을 냈다. 지금은 제가 너무 바빠서, 교회가 부흥되고, 감리교 감독을 지냈고,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미국에 2번씩 집회를 오고, 올 여름에 미국 감리교 목회자들 세미나 훈련시키고 방송 진행을 한다. 몸이 두개 세개 라도 부족할 정도이다. 하나님이 빵점짜리 인생을 써주신다”고 말했다.
하근수 목사는, “내가 잘나고 명문대 가문이 줗고. 훌륭하면 내가 훌륭해서 쓰임받는 것도 감사하겠지만, 나같이 못난 천민 백성, 공부도 못 했고, 고등학교 공부할 형편이 안되어 꼴찌만 했다. 내가 부족했다고 하는 자들 하나님 만나고 인생 끝장 내시기를 바란다”며 첫날 집회를 마무리했다.
남가수 사랑의교회 연말 특별 부흥회는 온라인 생방송으로도 참여할 수 있으며 주중 4:30분, 토요일 5:30분부터 찬양으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