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왕에 대한 기존의 생각 뒤집기는 다양한 면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의 천재성이 다차원적이기 때문에, 첫째로 그가 신명기적 왕의 이상을 지키지 못했다는 차원에서 살펴보았고, 두 번째에서는 왕비와 후궁을 통해서 들어온 이방 종교로 말미암은 우상숭배와 혼합주의의 결과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솔로몬 왕의 종교적 차원의 오류가 어떠한 정치ㆍ경제적 영향을 낳았는가를 살핌으로 ‘솔로몬 뒤집어 보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모든 고등 종교는 사회적, 정치ㆍ경제적 함의가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종종 그 우상숭배가 가진 문화를 용인한다는 것입니다. 몰렉을 섬기는 것은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무자비’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은 ‘풍요를 위한 성적 탐닉’에 참여함으로 성적 거룩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원시 종교나 고대 종교는 예식의 성격이 강하지만, 대부분의 고등 종교는 사회 이데올로기적 차원, 심지어는 정치ㆍ경제적 내용을 가집니다. 이는 마치 한국의 유교가 가족중심주의와 충효의 사회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솔로몬이 타 종교와 타협하면서 상실하기 시작한 것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가진 성품과 그 하나님이 말씀하신 자비로움과 자유로움, 그리고 배려와 나눔의 특성을 가진 희년 사회의 성격입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현저하게 곪아 터진 현상은 백성에게 부과된 “과중한 부역”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정의로운 정치를 이룸이 왕의 의무인데, 솔로몬은 “억압적인 정치”(oppressive politics)를 허용했습니다. 노동력의 차출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별 부정적 평가 없이 소개되지만(왕상 5:13-18, 9:15-22), 사실 이러한 억압은 북쪽 10지파가 분열되는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억압적 정치에 대한 다음의 탄원을 받습니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4). 르호보암 왕의 완고한 통치는 역군의 감독 아도람의 살해와 여로보암의 반역으로 귀결됩니다(왕상 12:18-20).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떠나는 것은 그의 말씀과 계명과 법도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정의로운 통치는 “억압적인 정치”로, 평등의 경제는 “양극화된 경제”(polarized economy)로 귀결됩니다. 솔로몬은 행정 체계를 잘 관리하면서 국가를 중앙집권적 12개의 행정구역으로 개편합니다. 그러나 이는 관리뿐 아니라 과세를 위한 것이며(왕상 4:7), 각각의 행정구역은 한 달 동안 왕궁에 드려지는 음식물, 곧 곡물과 육류의 공급을 책임져야(왕상 4:22-23) 했습니다.
왕의 궁궐에서 호사를 위하여 소모한 음식물은 백성들의 사정으로 볼 때, 항상 넉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솔로몬 왕이 전도서에서 보여주는 극한 사치와 경제적 부요는 솔로몬을 비롯한 지도층의 염세, 포만, 권태, 허무를 낳았습니다. 배고픔과 추위를 이겨내는 간절함이 있던 시대의 역사적 활력과 격정은 점차 사라지고, 풍요가 가져다주는 외견상의 행복은 점차 영적인 느슨함과 나태, 결국은 보수성과 가난한 자에 대한 무관심 속으로 떨어집니다. 낙관주의적 경제 상황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잊는 자기만족으로 떨어집니다.
혼합적, 탐욕적 영성의 타락은 결코 혼자 오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 이후, “내재적 종교”(intrinsic religion)가 되어 ‘자유와 해방의 주권적 하나님’이 다스리는 “외재적”(extrinsic) 종교를 버립니다. 솔로몬의 철권 통치는 양극화된 무자비한 경제를 낳고, 결국 제사장 나라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같은 제국주의적 국가(imperialistic state)로 타락됩니다.